▲민들레를 쑥이라고 속인 아들의 고충(?)을 어머니는 어쩌면 알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김수복
그리고 나흘째 되는 날 아침, 어머니는 갑자기 쑥을 캐러 간다고 바구니를 달라고 하신다. 이 가을에 무슨 쑥을 캔다는 것이냐고 바보 같이 중얼거리는 내게 어머니는 칼도 달라고 하신다. 칼 소리에 나는 은근 긴장이 되어 어머니를 보는데, 어머니는 진지하면서도 이상하게 즐거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바구니와 칼을 재촉하신다.
지금은 쑥을 캐는 계절이 아니라고, 나는 그렇게 연거푸 바보 같은 소리나 해대다가 하는 수 없이 바구니와 과도를 챙겼다. 그렇다고 없는 쑥을 찾으러 다닐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런저런 궁리 끝에 민들레를 생각해내고는 그것이나 캐자고 어머니를 설득하고 나섰다. 그러나 어머니는 굳이 설득할 필요도 없이 민들레를 쑥이라 생각하고 열심히 만지작거린다.
"맞어, 이것이 쑥이여, 아따 고놈들 참 연하기도 하다."
"아니 그런데 쑥은 왜 캐려고 해요?"
"아따 도련님도 참, 아 도련님 장개 가시잖어요. 쑥떡이라도 해야지요."
그 목소리의 정겨움이 정말로 한참 나이 어린 시동생을 대하는 자상한 형수 같다. 아들을 배려하는 마음과 시동생을 배려하는 마음의 색깔은 확실히 다른가보다. 정겨우면서도 어떤 의무감이 느껴지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어이없게도 내가 누구인지 잠시 헷갈리기조차 했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나는 어머니의 오빠에서 다시 시동생이 되었다. 그 시동생이 장가를 가신다. 형수로서 달리 해드릴 만한 것은 없고, 쑥떡이라도 하고자 한다는 게 아마 어머니의 생각인 것 같았다.
덕분에 그날 밤은 온통 민들레 향기로 가득 채워졌다. 한나절내 캔 민들레를 데치고 무치고 볶고 된장국까지 끓여서 차린 민들레밥상으로 저녁을 마치고 설거지를 끝낸 다음 습관적으로 텔레비전을 켰다. 아홉 시 뉴스 시간이다. 한참을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갑자기 중얼거린다.
"이상스럽네. 으째 저 사람이 대통령이까?"
나로서는 소스라치게 놀랄 발언이었다. 지난 일 년여 동안 어머니는 텔레비전을 보면서 뭐라고 논평을 한 적이 없었다. 시시각각 바뀌는 화면이나 그저 쳐다볼 뿐 내용에 대한 이해나 감흥이 전혀 없었다. 내가 옆에서 뭐라고 자꾸 말문을 열어보고자 해도 귀찮다는 듯 "몰라" 하실 뿐이었다. 그랬던 어머니의 입에서 대통령이라는 아주 어려운 단어가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어쩔 것인가. 나는 얼떨결에 그냥 "대통령 알아요?" 한 마디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노무현 찍었는디, 이상스럽네."
어머니는 연거푸 고개를 갸웃갸웃 하신다. 그러는 동안에도 뉴스는 계속되고, 여덟 살 여자아이를 성폭행한 남자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어머니가 노여움이 가득한 소리로 한 마디 하신다.
"저런 도둑놈."
이제 더 이상 느긋하게 앉아 있을 수가 없다. 벌떡 일어나서 어머니의 곁으로 바싹 붙어 앉았다. 이렇게 보고 저렇게 보고, 손도 만져보고 얼굴도 만져보고 온갖 별별 짓을 하고 있는데도 어머니는 별 반응이 없다. 내가 뭘 잘못 들었는가? 아니다. 그럴 리가 없다. 긍정적인 변화가 진행 중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지?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어떻게 해야 어머니의 돌아오고 있는 기억을 온전하게 붙잡을 수 있는 거지? 그런저런 생각으로 나는 아마 흥분했던 모양이다. 그 바람에 어머니가 밖으로 나간 줄도 모르고 있었다. 어느 순간 어머니가 안 보인다는 것을 발견하고 부엌으로 나가 보니 어머니는 장의자에 새우처럼 구부린 채 잠들어 있었다. 깨워서 방으로 모셨지만 십 분이 채 안 되어 도로 나가신다.
그날부터 어머니와의 새로운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낮에도 가능한 한 방에는 안 들어가려 하시고, 밤이면 어김없이 크지도 넓지도 않은 장의자에 구부리고 누운 채로 잠을 청하신다. 방으로 들어가자 하면 여기도 방이라고 뿌리치고, 강제로 어떻게 방으로 모시고 나서 깜빡 잠이 들었다가 눈을 떠 보면 어느새 밖으로 나와 새우처럼 구부리고 있다. 어떤 때 보면 주무시는 것이 아니라 잠이 든 척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