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플루 검사 및 진료 안내, 일반인은 보건소에서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안내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윤기
대략 1시간 정도 기다린 끝에 아들 순서가 되었습니다. 증상을 확인하고 열을 다시 재었는데 이번에는 38.5도가 나왔습니다. 양쪽 귀를 번갈아 측정하였는데 마찬가지더군요. 담당 선생님은 어느 학교인지 물어보더니, 이미 확진 환자가 나온 학교인지 아닌지 확인 하였습니다. 저희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는 이미 확진 환자가 여럿 있더군요.
뿐만 아니라 동생이 토요일에 신종플루 검사를 받아서 월요일에 확진 판정을 받고 타미플루를 복용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이런 경우에는 검사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열과 감기증상 그리고 확진 판정을 받은 가족이 있기 때문에 검사없이 신종플루로 판단한다는 것입니다.
아들은 감기약과 타미플루 처방전을 받아 거점 약국에서 약을 타 왔습니다. 학교에 들러 보건소에서 발급해 준 자가격리 확인서를 제출하고, 기숙사에서 짐을 챙겨 점심 때쯤 집으로 왔습니다. 거점 병원은 이미 병상이 없기 때문에 고위험군 환자가 아니면 모두 자가 격리 조치를 한다고 하였습니다.
두 아들 녀석은 이번주 내내 꼼짝없이 집에서 자가 격리되어야 합니다. 잠깐이긴 하였지만, 신종플루만 아니면 방학도 아닌 공짜(?) 휴일에 아이들과 함께 여행이나 다녀왔으면 좋겠다하는 태평스런 생각도 해 보았습니다. 주말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를 가도 가을 여행을 하기에 참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였지요.
아이들이 신종플루에 걸렸다고 하니 주변 사람들이 걱정이 많습니다. 하나는 우리 아이 둘이 모두 한꺼번에 신종플루에 걸렸으니 어쩌냐 하는 걱정이고, 또 하나는 가족이 신종플루에 걸렸으니 당신과 접촉하는 우리도 혹시 위험하지 않느냐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보건소에서는 마스크 착용하고 개인위생 철저히 하면 가족들에게 전염되지 않을 거라고 안심시켜주었지만, 불안한 마음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신종플루에 걸리면 어쩌나 하는 불안보다는 내가 신종플루에 걸려서 함께 일하는 실무자들이나 단체 회원들에게 전염되는 상황이 되면 참 곤란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일하는 단체에서 유아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으니 가족 중에 환자가 있다고 하면 학부모들도 불안해하기는 마찬가지일 거구요. 저는 아무 증상이 없지만, 주변 사람들의 염려(?) 때문에 오후에 휴가를 내고 집으로 왔습니다. 아내는 아들 둘이 한꺼번에 신종플루 판정을 받고 약을 먹고 있으니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걱정이 되지 않습니다. 고위험군이 아닌 건강한 사람들은 신종플루로 생명을 잃는 일도 없고, 어차피 한 번 앓고 나면 백신을 맞은 것처럼 항체가 생긴다고 하니 그다지 나쁜 일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생명을 담보로 하는 것만 아니라면 그냥 독감처럼 한 번 앓고 지나가는 것도 괜찮은 일이니까요.
사실, 불과 몇 개월의 짧은 시간에 개발, 공급되는 신종플루 백신의 부작용이 충분히 검증되지도 않았을 것이고, 한 번 백신을 맞으면 항체가 평생 간다는 보장도 없으니 건강할 때 한 번 앓고 항체가 생긴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지요.
맞벌이 부부에게 신종플루보다 더 무서운 것은?이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다보니 아이 둘이 한꺼번에 신종플루를 앓고 있는 것도 어떤 면에서는 오히려 다행스런 일이었습니다. 부부가 모두 직장에 나가야 하는데, 초등학교 다니는 둘째 아이만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는 것보다는 형과 함께 '자가 격리'되어 있는 것이 차라리 잘된 일이다 싶더군요.
아이 둘이 번갈아가며 신종플루에 걸린 것보다 둘이 한꺼번에 앓고 함께 회복되는 것이 아이를 돌봐야 하는 부모로서는 어찌보면 잘 된 일이지요. 고1, 초6인 저희 집 아이들은 이제 혼자서도 지낼 수 있을 만큼 자랐지만, 만약 어린 자녀를 둔 맞벌이 부부라면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을 것입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런 난감한 경험을 많이 해봤기 때문에 저희가 잘 압니다. 아이가 아프니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고(지금 같은 신종플루는 더욱 그렇겠지요), 그렇다고 부모가 마냥 휴가를 내고 아이들을 돌보고만 있을 수도 없고 하는 난감한 상황 말 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두 녀석 모두 아주 어린아이가 아닌 것도 참 다행한 일이더군요.
솔직히 맞벌이 하는 저희 부부는 신종플루도 걱정이긴 하지만, 앞으로 일주일 동안 아들 둘을 집에서 하루 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여야 하는 일도 걱정입니다. 평소에 첫째 아이는 기숙사에서 지내고 둘째 아이도 점심은 학교 급식을 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월하였는데, 앞으로 하루 세끼 환자 둘을 위한 식사준비를 하는 것이 적은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아이 둘은 생애 처음으로 맞이하는 방학도 아니고, 결석도 아닌 공짜(?) 휴가를 즐기고 있습니다. 충분히 쉬고 면역력을 회복해야 한다며 잠깐씩 공부하고 하루 종일 빈둥거리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 말 입니다.
불안한 뉴스를 들으며 조심조심 했지만, 결국 저희 집에도 '신종플루' 그 분이 오셨습니다. 어차피 오셨으니 별일 없이 일주일 동안 푹 쉬었다 아무일 없이 떠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제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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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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