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읍 마동리에 있는 마동교
서정일
벌교읍 전동리에 있는 일명 도마교는 1645년 현지 주민이었던 정창락, 장선용씨에 의해서 처음 설치됐다. 지역의 형세를 본떠 도마교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고 이후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쳤으며 1990년도에는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173호로 지정됐다.
이 다리는 약 370여년의 세월 동안 신작로가 나기 전까지 전동재 저수지로부터 흘러내려오는 물로 인해 갈라졌던 초지마을 들녘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다리가 됐다.
벌교읍 마동리의 일명 마동교는 일제강점기 시절에 마동, 월전, 군지마을 주민들이 물이 조금이라도 불어나면 내를 건너지 못하고 네 배나 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마동주민 임정화씨가 사비를 들여 건설해 놓은 석조다리다.
이후 1984년 그 다리가 있던 곳에 새로운 다리를 만들었는데 약 60여년의 세월동안 300여 가구 주민들의 삶의 흔적이 묻어 있고 먼 길을 돌아오는 수고까지 덜어주면서 벌교읍내 주민들과의 마음의 소통까지 이뤄냈던 소중한 다리였다.
▲표지판이 훼손 된 벌교읍 전동리의 도마교
서정일
▲광양 목포간 고속화 도로 공사로 인해 흙먼지를 뒤집어 쓰고 잡초에 묻혀있는 마동교를 최초로 만든 임정화씨를 기리는 비석의 모습
서정일
지난 30일, 찾아간 도마교와 마동교의 모습은 실망스러운 것을 넘어서 지역을 위해 개인을 희생한 사람들을 대하는 현대인의 자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가 됐다. 그들의 숭고한 정신이 남아 있어야 할 자리에는 훼손되고 공사장 흙먼지와 잡초에 쌓여 있었다.
도마교는 도 지정 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안내판은 뜯겨져 나가 백지상태로 남아 있고 마동교를 세운 임정화씨의 뜻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만들어 세웠다는 비석은 인근 광양 목포간 고속도로 공사의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길가 잡초 속에 묻혀 있었다.
도마교를 "정창락, 장선용교"로 개명하거나 마동교를 "임정화교"로 개명치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의 정신만큼은 소중히 다뤄 안내판에 새기고 후세에 뜻을 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방치해 놓는 것은 개인의 이득에만 눈이 먼 현대인들의 자화상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역사적 교훈을 배우고 인물들의 뜻을 이어받고자 하는 것은 후세들이 만들어 갈 세상이 좀 더 아름다운 것이기를 바라는 마음일진대 이런 자세는 역으로 공공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이득을 위해 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는 내내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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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손되고 사라지는 현장, 벌교 도마교와 마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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