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 가서 뭘 해 먹고 살 건데?"

[새 터 찾아 삼 만리 ①] 3년 헤맨 끝에 고흥 바닷가에 서다

등록 2009.11.06 13:49수정 2010.09.06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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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뜬구름처럼 살고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뜬구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숨겨져 있다.
뜬구름처럼 살고지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뜬구름에는 수많은 우여곡절이 숨겨져 있다.송성영

3년을 헤맨 끝에 얼마 전 전남 고흥 바닷가에 새 터를 마련했다. 거기에 집을 짓게 되면 죽을 때까지 살게 될 것이다. 산전을 겪었으니 이제 수전을 겪어 볼 차례다. 수전을 겪고 나면 공중전이 있다. 그날은 세상 떠나는 날이다. 산전수전 공중전, 사람의 일생은 뻔하다. 단순하다. 더하고 뺄 것도 없이 태어나서 죽는다. 그럼에도 움켜 쥘 것이 너무나 많다.


적게 벌어먹고 사는 것을 무슨 지상 과제처럼 여기는 덜떨어진 남편 덕에 아내는 10년 가까이 한 달에 60만 원의 생활비로 네 식구가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을 자급자족에 가깝게 해결해 왔다. 그 과정에 남몰래 3천만 원이 넘는 거금을 모았다. 그 돈을 움켜 지고 새 터를 찾아 나선 것은 3년 전부터다. 지금 살고 있는 시골집을 찾아 나섰을 때처럼 적당히 밭 딸린 빈집을 찾아 다녔다.

아내가 돈을 모아 놓은 만큼 내게도 욕심이 생긴 것이다. 돈이 없었으면 그래왔던 것처럼 적당한 빈집 구해 남의 농토 얻어 살면 그만인데 이제는 평생 지어먹을 밭이 필요했던 것이다.

시골 살이 10여 년 동안 터득한 것 중에 하나가 농약은 물론이고 화학비료를 넣지 않은 자연 농을 하기 위해서는 평생 갈아먹을 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동안 농약에 찌들려 있는 밭을 몇 년에 걸쳐 포슬포슬하게 살려놓으면 땅주인이 꼬박꼬박 손을 내밀곤 했기 때문이다.

너른 평수가 필요한 논은 지금처럼 소작 하면 될 일이었다. 때마침 목조 주택을 짓는 일을 하던 막내 동생이 머나 먼 인도로 떠나면서 트럭으로 한대 분량이나 되는 온갖 집 짓는 장비를 건네줬다. 그 장비로 빈집을 수리해 생활하면 될 것이었고 좀더 욕심내서 집 옆댕이에 흙과 나무로 작은 공간을 한 채 더 지어 볼 작정이었다. 집 짓는 기간이 몇 년이 걸린다 하여도.

그렇게 개발과는 상관없는 지역, 빈집이 딸린 5백 평 정도의 농토를 찾아 헤맸다. 하지만 농토는 고사하고 빈집 구하는 일도 만만치 않았다. 적당히 텃밭 딸린 빈집이라 하여도 2~3천만 원으로는 쉽게 넘볼 수 없었다.


평생을 살아가야 할 터전이었기에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쓸만한 땅을 찾아 나선 것이었는데 그 놈의 쓸만한 땅은 있었지만 턱 없이 비쌌다. 도시에서 한 시간 거리 안쪽에는 우리 형편에 맞는 적당한 터를 찾을 수 없었다. 평당 3~4만 원대에 해당하는 땅은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었다. 보통 10만 원이 넘었다.

그 무렵 또 다른 거금이 생겼다. 시골에 들어오기 전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면서 형님에게 빌려줬던 거금 2천만 원이 생긴 것이었다. 갑자기 큰 부자가 되었다. 그동안 통장에 찍혀 있는 1~2백만 원을 전부로 알고 살아왔던 내게는 분명 엄청난 거금이었다. 욕심이 눈앞을 가렸다. 그 거금으로 농사지을 땅과 몸뚱아리 굴려 삼 칸짜리 작은 흙집을 지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직접 집을 지어 보면 되겠네, 수세식 화장실 딸린 세면장에서 뜨거운 물로 목욕도 할 수 있는 그런 집을 지어도 되겠다. 이제 재래식 화장실은 싫어. 근데 한 번도 집 지어 본 일이  없는 사람이 집을 지을 수 있겠어?"
"까짓 거, 집 지어본 경험 있는 주변 사람들 도움 받아가며 죽어라 몸땡이 굴리면 되지, 못 할게 뭐 있어."
"그래, 까짓 거 못할게 뭐 있어."

아내는 꿈에 부풀어 맞장구를 쳤다. 땅 구하는 조건 또한 한결 수월할 것만 같았다. 차를 몰고 시골 길을 내달리면서 산세 좋은 마을을 무작정 찾아 들어갔다. 공주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부여 외산면, 궁벽 진 곳에서 우연찮게 평당 6만 원 짜리 땅을 찾아냈다.

터 앞으로 농업용 전기를 위한 전신주가 들어서 있고 농로가 있었다. 생수가 나올 정도로 물이 좋고 좌우로 개울이 있어 물이 풍부했다. 거기다가 뒤편에 좌우 청룡백호가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는 남향의 땅이었다.

터 앞으로는 널찍하니 수십 마지기의 논이 펼쳐져 있었다. 자손 없이 한 세상 살다간 후덕한 누군가가 마을 사람들을 위해 내놓은 논이라고 한다. 후덕한 사람의 농토라는 것이 더욱더 맘에 들었다. 동네 사람들에게 적당한 마지기 논을 얻어 소작을 하면 될 것이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문전옥답이 따로 없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평생 살고지고 할만한 땅이었다.

팔겠다고 내 놓은 땅은 천 평이 넘었지만 청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글쟁이 최은숙 선생이 고맙게도 함께 집을 짓고 살고 지고자 했기에 큰 문제가 되질 않았다. 하지만 아내는 또 다른 고민을 안고 있었다.

"공주에서 너무 멀지 않어?"
"공주 주변에 그만한 땅이 없어."
"거기서 뭘 할 건데?"
"농사 져야지."
"농사만 짓고 어떻게 먹고 살어? 거기 들어가면 당신 방송 원고 쓰는 일 그만 둘 거 아냐?  뭘 해서 먹고 살 건데."

그동안 밭농사를 지어 야채 배달까지 해 본 경험이 있었기에 아내는 농사짓고 생활한다는 것에 믿음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자연학교 같은 것도 하고."
"너무 멀어서 그게 쉽겠어?"
"그 옆에 자연 휴양림도 있고, 또 한 이삼십분 가면 까치내 라는 유명한 계곡도 있으니께 여러모로 잘될 껴. 농사 지어가며 아이들 신나게 놀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해 가고…."
"아무튼 나는 이제 농사는 싫어, 그 거 농사 져서 수입이 얼마나 된다고 그래. 민박집 같은 걸 하면 몰라도."
"민박? 민박집은 무슨 민박집여! 그람 손님들 찾아오면 돈 받고 재워 준다는 거여!"
"그럼 민박집이 돈 받아야지, 다른 사람들보다 적게 받으면 되잖아."
"하참, 거기서는 민박집 안돼!"

"그럼 나도 거기 못 들어가! 애들도 크고 그러는데 어떻게 생활하려구 그래."
"다 살게 되어 있다니께. 그동안 땅 한 평 없이 살았어도 잘 먹고 잘 살아왔잖어, 목돈까지 모아 놓구선."
"거기는 도시하고 떨어져 있어서 농사짓는 일 말고는 할만한 것이 없잖어."
"다 살게 되어 있다니께 그러네"
"하늘이 다 먹여 살려 준다고? 또 그 소리."
"거기는 청정지역이라서 표고버섯 같은 것을 재배하면 된다니께."
"그동안 농사지어 야채 배달 같은 거 해봐서 잘 알잖아, 농사지어서 생활이 될 거 같어? 민박집이라도 하면 모를까."

나만큼이나 세상 물정 어두운 아내는 궁벽 진 곳에서의 민박집을 고집했다. 궁벽 진 곳이든 사람들이 들끓는 유원지든 간에 돈을 받고 사람을 재워 준다는 일이 내겐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그 무렵 아내는 갱년기 증상을 보이고 있어 점점 신경이 날카로워 지고 있었다. 더 이상 그 터를 고집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뒷산에 땅굴을 파고 기어 나와, 그것도 부족해 손이 갈라지도록 4년에 걸쳐 일군 밭을 밀어붙이고 또 옆 산까지 왕창 까뭉개 가며 초고속으로 내달린다는 호남 고속 철도의 착공 예정일은 점점 눈앞으로 다가와 내 목을 옥죄어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안면도에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배 한 척 구입 했는디 한번 놀러오슈."
"배를 사요? 그거 꽤 비쌀틴디?"
"작은 배유, 중고로 샀는디 얼마 안 해유."
"얼마나 하는디유?"
"5백만 원 정도 줬슈."

안면도 주변에 살 만한 땅도 알아볼 겸 그 길로 내달렸다. 안면도는 그냥 섬이 아니었다. 뭍으로 연결된 섬이라고 하지만 땅값이 금값이었다. 농사지을 땅을 구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다. 바닷가는 평당 백만 원대가 넘었고 보통 수십만 원 대였다.

안면도에서 보일러 수리공을 하면서 바닷가에 바닷물 절임김치 사업을 벌이고 있는 김 선생이 그랬다.

"농사보다유, 바닷 일이 나유, 중고 배 한 척 사가지고 낚시 배 안내 같은 거 하고 꼼장어 잡어다가 팔면 먹고 사는디는 지장 없을규."

고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업권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중고 배 한 척 값하고 맘먹었다. 그래도 가진 돈을 다 털어 바닷가에서 아내가 그토록 고집하는 민박집을 꾸려나가고 나는 농사를 지어가며 꼬막을 캐거나 고기잡이로 생활하면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안면도에서는 꿈에 불과했다.

땅값 비싼 안면도를 포기하고 공주에서 가까운 보령 서천 등을 비롯한 서해안 지역의 해변을 수없이 기웃거렸지만 땅 값 시세는 안면도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가 가진 돈은 거금이 아니었다. 바닷가에서는 농토는 엄두도 낼 수 없는 보잘 것 없는 자금에 불과했다. 세상 돌아가는 시세를 몰라도 너무나 몰랐다.

결국 고향 대전과 제2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공주에서 아주 멀리 벗어난 바닷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싼 땅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었다. 정신 나간 소리라 하겠지만 개고생 길로 접어든 것은 그놈의 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놈이 없었다면 비싼 땅이고 싼 땅이고 찾아 나설 이유가 없었다. 정든 사람들로부터 멀리 멀리 떠날 이유도 없었다.

돈이 없었다면 그냥 적당히 빈집을 구해서 살 수 있는데 까짓 거 살고지면 그만이었다. 돈이라는 게 인간을 얼마나 구속하고 속박하는지를 뼈저리게 느끼면서 또다시 그 돈을 업보처럼 들쳐메고 가능한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교통 불편한 곳을 찾아 나섰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풍경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풍경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새터 찾아 삼만리 #자연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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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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