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서민 행보를 벌이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9월 4일 경기도 구리 수택동 구리시장을 방문해 상인과 악수하고 있다.
청와대
사실 이들 정부나 정치권, 언론 모두에 앞서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 게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현대건설 사장 출신이다. 이 대통령이 턴키입찰 담합 구조의 비밀을 모르겠는가. 전혀 그럴 리 없다. 오히려 이미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에도 턴키사업을 남발해 재벌 건설업체들에게 현금다발을 푸짐하게 안겨준 전력이 있다. 청계천사업, 동남권 유통단지(가든파이브),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과 지하철 3호선 연장구간 등을 모두 턴키로 발주했다. 심지어 일반 주택단지를 만드는 은평뉴타운사업조차 턴키로 발주했다.
그 결과 부작용도 심각했다. 7000억 원에 할 수 있었던 가든파이브에 1조 원 이상이 들어간 결과 고분양가 때문에 상가 입점이 극히 부진한 상태다. 은평뉴타운은 과다한 토지보상금과 더불어 턴키 입찰을 통한 사업비 과용으로 후임자였던 오세훈 시장 초기 고분양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렇게 진행됐던 지하철 9호선, 지하철 7호선 연장구간 등에서는 업체들간 담합이 드러났고, 청계천사업과 가든파이브 사업에서는 각종 비리 사건이 불거지기도 했다.
심지어 청계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현 정부 들어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사면으로 풀려난 뒤 장관급 대우를 받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됐다)이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과정에서 낭비된 예산만 줄잡아 1조 원 가량은 될 것이다. 그렇기에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예산을 절감했다는 주장을 들으면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명박 대통령은 서울시장 시절 행태를 이제 전국 단위에서 되풀이하고 있다. 당장 이번 4대강 정비사업뿐만 아니라 이보다 먼저 착공한 경인운하사업, 새만금사업, 호남고속철도, 이른바 '형님 예산'으로 분류되는 울산‐포항간 고속도로 등 대규모 토목사업 대부분이 턴키 공사로 진행되고 있다. 고분양가 사태를 불러왔던 은평뉴타운에 이어 현 정부가 기존의 공공임대주택 물량을 대폭 줄여 분양용, 매매용 주택을 잔뜩 짓고 있는 보금자리 주택도 턴키 방식으로 추진중이다.
(옆으로 얘기가 새지만 이렇게 턴키 방식으로 짓는다면서 이 정부는 '반값 아파트' 운운하고 있으니 정말 낯이 두껍다는 생각이 든다. 세곡, 우면 등의 주변 강남 집값이 워낙 비싸니 상대적으로 싸 보일 뿐이지만 사실은 매우 고비용구조로 짓고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 구조라면 공사비가 늘어나 분양가는 앞으로 계속 뛸 것이고 몇 년 후 집값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면 입주 시점에도 '반값 아파트'라고 떠벌릴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이 같은 턴키 입찰 공사의 남발로 필자는 현 정부 임기 안에 중앙 및 지방 정부 예산 가운데 수십조원이 낭비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 때문에 재벌건설업체들은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다. 고분양가로 마구잡이 주택사업을 벌였다가 미분양에 물려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던 건설업체들이 시장의 채찍질은커녕 정부의 퍼주기 예산으로 희희낙락하고 있는 것이다.
MB의 '삽질경제' 이면은 부패경제, 반칙경제, 불공정경제현 정부가 말로는 '경제강국'이니 '4대강 살리기'니 '서민경기 부양'이니 '일자리 창출'이니 내세우지만, 결국 건설업계 출신 대통령의 진두지휘 아래 세금으로 재벌건설업체들을 위해 차리는 푸짐한 잔칫상이라는 것을 건설업계는 너무나 잘 안다. 이처럼 현 정부 '삽질경제'의 이면은 바로 부패경제, 반칙경제, 불공정경제인 것이다.
여기까지 필자가 말하고 싶은 핵심 내용은 다 말했다. 바쁜 분들은 여기까지만 읽어도 좋다. 아래에서는 필자가 왜 턴키입찰 공사가 거의 대부분 담합이라고 주장하는지, 그리고 담합만 분쇄하면 얼마나 예산을 아낄 수 있는지를 몇 개의 사례를 통해 보여줄 것이다. 다소 딱딱하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사안은 정말 중요한 문제다. 따라서 다소 길더라도 이 글의 끝까지 읽어보기를 간절히 바란다.
가능하다면 이 글에 이어 턴키담합과 관련된 건설부패가 왜 근절되지 못하고 확대 재생산되는지, 그리고 이 같은 턴키입찰을 사용한 4대강사업과 경인운하 등의 사업이 왜 서민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과는 거리가 먼 사업인지에 관한 기고문도 읽어주기를 바란다. 이 글들은 며칠 사이에 차례로 연재될 것이다.
당신 호주머니에서 빼내간 돈들이 우리 아이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는 데 사용되지는 않고 2000년대 내내 고분양가 거품 파티를 벌여온 재벌건설업체들의 배를 더욱 불리는 데 사용된다고 생각해 보라. 이게 '건설족의 나라'이지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겠는가. 대한민국 국민이 건설업체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태어난 것은 아니지 않는가. 민간에서는 고분양가 거품으로, 공공발주사업에서는 '예산 퍼주기'로 말이다.
3000억 원이 낭비된 서울지하철 9호선 1단계 공사이제 서울시 지하철 공사 사례들을 통해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살펴보자. 2001년 서울시는 지하철 9호선 건설공사 7개 공구를 모두 턴키 방식으로 발주했다. 7개 공구 가운데 5개 공구에는 2개 업체군, 나머지 2개 공구에는 3개 업체군만이 응찰했다. 참여 업체들은 대표입찰자가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공구에 공동도급자로 참여해 사실상 모두 한 건씩은 공사를 수주했다.
이처럼 7개 공구에서 20개 미만의 대형 건설업체들만이 참가한 가운데 진행된 이 공사의 평균낙찰률은 98.3%였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이 모두 1000억~1600억 원대에 이르는 대형공사들이었다. 만약 이들 공사들을 1000억 원 이상 대형 공사에 적용된 최저가 경쟁입찰 방식으로 진행했다면 어땠을까?
2001년 당시 경쟁입찰제의 평균 낙찰률이 65%였으므로 낙찰률이 33% 이상 낮아졌다고 볼 수 있다. 업체간 담합이 성행하기 전 같은 턴키 방식으로 진행된 서울시 2기 지하철 6~8호선의 평균 낙찰률도 68% 정도였던 것에 비춰 봐도 30% 이상 높았다. 따라서 어떤 경우든 공사 예정가격의 30% 이상이 사실상 담합에 의해 낭비된 예산이라고 할 수 있다. 7개 공구의 예정가격 총합이 9400억 원 정도이므로 3000억 원 이상이 7개 공구 입찰에서만 낭비된 셈이다.
이렇게 낙찰률이 높아진 이유는 사실상 담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1>에서 보는 것처럼 실제 각 공구별 입찰가격을 보면 서로 담합하지 않았다면 도저히 불가능할 정도로 금액 차이가 적다.
공구 |
903 |
904 |
907 |
909 |
910 |
911 |
912 |
업체별 입찰 가격 |
103,965 |
112,203 |
126,300 |
160,216 |
144,728 |
131,276 |
135,923 |
105,134 |
112,100 |
119,150 |
161,300 |
144,874 |
131,270 |
136,915 |
|
112,158 |
|
|
144,8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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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듬해인 2002년 7월 903, 909공구에서 현대산업개발과 두산건설 등 두 업체가 '들러리 교차입찰' 방식으로 담합한 사실을 밝혀내고 33억여 원의 과징금을 물렸다. 하지만 33억 원은 두 업체가 해당 공사 입찰에서 담합을 통해 추가로 얻은 추정 이익 약 795억 원(=2650억×30%)에 비하면 새발의피다.
업체들은 담합이 매번 적발된다고 해도 이 정도 과징금을 무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인 셈이다. 현재 수준의 공정위 과징금으로는 이들 업체들의 담합 유인을 절대 없애지 못함을 알 수 있다. 더구나 이들 업체들의 담합 사실은 적발되지 않는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과징금의 실효성은 훨씬 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재벌건설업체에 수조원 퍼주는 4대강 사업은 범죄행위이제 이 글의 종착지인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공사 사례를 보자. 지난해 3월 입찰이 이뤄진 이 사업은 용산구청이 서울시 지원을 받아 1260억 원의 사업비를 책정해 발주한 사업이다. 이 사업은 용산구 이태원동 34‐87번지 일대 1만3497㎡의 대지 위에 지하5~지상10층, 연면적 5만6069㎡ 규모의 용산구청사를 짓는 사업이다.
그런데 아래 <도표2>를 보면, 이 공사에 입찰한 삼성과 현대 컨소시엄의 입찰금액이 불과 0.02%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예산금액 1200억 원대 공사에 두 업체의 입찰금액이 불과 2500만 원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것이다. 담합을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지만, "담합을 입증할 수가 없다"며 관련 당국들은 손을 놓고 있다. 개발업체 사장 출신인 박 구청장이 이런 메커니즘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입찰자 |
설계점수 (A) |
입찰금액 |
조정점수 [(A) X 추정금액]/(B) |
입찰금액(천원) (B) |
추청금액대비투찰율(%) |
현대건설(주) |
84.99 |
119,586,600 |
94.91 |
89.55 |
삼성물산(주) |
84.53 |
119,561,433 |
94.89 |
89.08 |
이쯤에서 재벌 건설업체 직원들은 초기 투입비가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가니 원래 턴키입찰 공사는 그럴 수밖에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과연 그럴까. <도표 3>을 참조로 용산구 종합행정타운 사업에 한 달 앞서 발주됐던 지하철 9호선 2단계 915~917공구 건설사업을 보자. 필자가 서울시에 재직할 때 업체들의 담합을 깨기 위해 나름대로 상당한 공을 들였던 사업이기도 하다. 아래 도표를 보면, 낙찰률이 각각 60%와 72%, 86%로 9호선 1단계 때에 비해 매우 낮아졌다. 지하철 9호선 1단계 사업의 평균 낙찰률 98.3%에 비하면 약 12~38% 가량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업체간 담합 여지를 최대한 없애고 실질적 경쟁을 유도한 효과다. 사실 916공구의 경우에는 사실 막판에 담합이 이뤄졌다는 것이 업계에 퍼진 소문이다. 그런데도 이 3개 공구에서만 9호선 1단계 때와 비교할 때 약 950억 원의 예산을 절감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쟁입찰이라는 공정한 게임의 룰만 적용해도 이만큼 거액의 예산을 아낄 수 있는 것이다.
공구별 |
입찰자 |
입찰금액 |
입찰금액(백만원) (B) |
추청금액대비낙찰율(%) |
915 |
경남기업(주) |
89,020 |
60.0 |
현대건설(주) |
110,682 |
74.6 |
(주)대우건설 |
123,145 |
83.0 |
916 |
현대산업개발(주) |
135,658 |
86.0 |
SK건설(주) |
140,250 |
88.9 |
삼성물산(주) |
141,021 |
89.4 |
917 |
GS건설(주) |
98,750 |
72.0 |
(주)한진중공업 |
99,461 |
72.5 |
대림산업(주) |
117,700 |
85.8 |
|
위에서 본 것처럼 재벌 건설업체들과 '건설족' 정부와 정치인들은 이같은 이권들을 주고 받으며 강고하게 결합돼 있다. 이들은 시민들의 세금으로 흥청망청 파티를 벌인다. 그러면서도 건설족 정권과 정치인들은 내가 무슨 무슨 개발을 했네 떠벌리고, 시민들은 속사정은 전혀 모르고 그런 정치인들이 내 집값 올려주니 좋다며 선거에서 연거푸 찍어준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를 포함해 전국 곳곳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