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을 없애는 상판현재 열려 있는 상판이 내려오면 비어있는 카트리지 위쪽의 공간까지 완벽하게 밀봉되어 버립니다.
김인성
이 시점에서 저는 고민을 했습니다. 현재까지는 본체를 손대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A/S를 받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중고로 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상태로는 프린터를 제대로 쓸 수가 없습니다. 개조하지 않으면 비싼 정품 잉크를 사용해야 하는데 차라리 안 쓰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재생이나 직접 리필한 카트리지로는 안정적인 출력을 할 수가 없고 리필 과정이 너무나 고생스러웠습니다.
이제 과감한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중고로 팔고 무한 잉크 잘 되는 제품으로 사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그때는 무한 잉크 가능한 제품과 안 되는 제품에 대한 식별력이 없었습니다. 잉크젯은 다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잉크젯 중고로 팔아봐야 반값도 받기 힘듭니다. 다른 제품 살 돈도 건지지 못할 것입니다.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뭔가 절박하고 급할수록 그 문제에서 떨어져 차분히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프로그래밍은 화장실에서 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모니터에서 떠나 딴 짓하고 있을 때 반짝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그 것이 결정적인 해결책이 된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저는 그 날 그러지 못했습니다. 마음은 급했고 손은 벌써 잉크 범벅이었으며 방은 이미 난장판이 되어 있었습니다. 빨리 끝내고 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단순하고 간단한 해결책을 생각해 냈습니다. 아니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군요. 단순한 해결책이란 문제 해결에 있어 가장 완벽한 해결책일 수 있으니까요. 오캄의 면도날에 관한 이야기도 있지요?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자면 제가 생각해낸 것은 가장 안이한 해결책이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