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 없애야 말 된다 (270) 이론적

'이론적 잘못', '이론적 지침서' 다듬기

등록 2009.11.19 13:42수정 2009.11.19 1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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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이론적 잘못

 

.. 우리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를 단지 세대적 차원에서 관찰하고 이들을 해결하려 했다는 점에 큰 이론적 잘못이 있었고 .. <현실과 이상>(송건호,정우사,1979) 224쪽

 

 "우리 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문제"는 "우리 나라 정치ㆍ경제 문제"나 "우리 나라 정치와 경제에 얽힌 문제"로 다듬고, '단지(但只)'는 '다만'이나 '그저'로 다듬습니다. "세대적(世代的) 차원(次元)에서 관찰(觀察)하고"는 "세대라는 테두리에서만 바라보고"나 "나이때에 따라서만 들여다보고"로 손질하고, "해결(解決)하려 했다는 점(點)에"는 "풀려 했다는 대목에서"나 "풀려 했기에"나 "풀려 했기 때문에"로 손질해 봅니다.

 

 ┌ 이론적(理論的)

 │  (1)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가 논리적으로 정연한

 │   - 이론적 근거 / 이론적 접근 / 이론적인 공격 /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다

 │  (2) 실증성이 희박하고 순 관념적으로 조직된

 │   - 이론적 지식 / 이론적 이상으로서의 주장 /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 이론(理論)

 │  (1) 사물의 이치나 지식 따위를 해명하기 위하여 논리적으로 정연하게

 │      일반화한 명제의 체계

 │   - 경제 이론 / 빛의 입자 이론 / 이론을 세우다 / 이론을 전개하다

 │  (2) 실증성이 희박한, 순 관념적으로 조직된 논리

 │   - 칸트의 철학 이론 / 실천이 따르지 않는 이론은 탁상공론

 │

 ├ 큰 이론적 잘못이 있었고

 │→ 이론으로 크게 잘못되었고

 │→ 이론은 크게 잘못되었고

 │→ 크게 잘못된 이론이었고

 │→ 크게 잘못된 생각이었고

 │→ 더없이 잘못되어 있었고

 └ …

 

 '이론'과 '논리' 같은 낱말은 따로 한자말이라고 여기기보다, 그저 우리가 쓸 낱말이라고 여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곤 합니다. 다만, '이론 (2)' 쓰임새에서는, "실천이 따르지 않는 이론"을 "실천이 따르지 않는 생각"으로 손질하면서, 때와 곳에 따라 '이론'을 다른 우리 말로 알맞게 다듬어 낼 수 있다고 느낍니다.

 

 '이론 (1)'에서도, "이론을 세우다"와 "이론을 전개하다"는 "생각을 세우다"와 "생각틀을 세우다"와 "생각을 펼치다"와 "생각틀을 펼치다"로 다듬어 보면 퍽 잘 어울립니다.

 

 써야 할 때에는 쓰지만, 안 써도 괜찮을 뿐더러 여러모로 우리 생각을 키울 수 있을 때에는, 이모저모 다른 낱말을 헤아려 보면 한결 낫습니다.

 

 ┌ 이론적 근거 → 이론 근거 / 생각하는 바탕 / 생각바탕

 ├ 이론적 접근 → 이론 접근 / 이론으로 다가서기 / 생각하며 다가서기

 ├ 이론적인 공격 → 이론을 앞세운 공격

 └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다 → 이론으로 뒷받침하다 / 짜임새있는 생각으로 뒷받침하다

 

 '-적'을 붙인 '이론적'은 어떠한가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먼저, '-적'만 덜어내어 "이론 근거"나 "이론 접근"이나 "이론으로 뒷받침하다"로 적어 봅니다. 이렇게 적어 볼 때와 '-적'이 붙을 때와 뜻이나 느낌이 조금도 다르지 않습니다. '-적'을 붙이는 분들은 뜻이나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이론 근거"와 "이론적 근거"란 얼마나 크게 벌어지거나 다른 말씀씀이가 될까요? "이론으로 뒷받침하다"와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다"는 어느 대목에서 서로 다른 글월이 될까요?

 

 곰곰이 살피면, '이론'이라고만 쓰는 자리에서는 이 말마디를 그대로 둘 때가 더 낫다 싶곤 하지만, '-적'을 붙인 '이론적'일 때에는 아예 이 말마디를 털어낼 때가 한결 낫다고 느낍니다.

 

 ┌ 이론적 지식 → 이론뿐인 지식 / 말뿐인 지식 / 허울좋은 지식 / 껍데기 지식

 ├ 이론적 이상으로서의 주장 → 꿈 같은 주장 / 말만 앞세운 꿈 같은 주장

 └ 이론적으로는 가능하다 → 이론으로는 된다 / 말로는 된다 / 생각으로는 된다

 

 한 번 더 살펴봅니다. 우리가 '이론'이라는 말마디를 받아들인다면, 어느 한편으로는 우리 생각과 느낌을 담아낼 말마디가 하나 더 있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말마디를 받아들이면서, 우리 깜냥껏 이모저모 다르게 써 오던 우리 말투와 말결과 말매무새는 온통 잊혀지거나 밀려나거나 스러지거나 짓눌립니다. 낱말 하나를 새로 받아들이며 우리 말살림이 북돋우거나 살찌운다기보다, 바깥말 하나가 우리 말 여러 마디를 내치거나 밀친다고 할까요.

 

 '1 + 1 = 2'가 아닌, '1 + 1 = 0'이 되거나, 외려 '1 + 1 = -2'가 되어 버리기도 합니다. 말삶에서는 그렇습니다. 글삶에서는 사뭇 다릅니다. 이야기삶에서는 우리 스스로 생각줄기를 열고 생각밭을 가꾸지 않는다면, '1 + 1 = 1'조차 되기 어렵습니다.

 

ㄴ. 이론적 지침서

 

.. 일본에게 조선 침략, 나아가 대륙 지배의 길을 열어준 이론적 지침서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다 .. <후쿠자와 유키치>(정일성,지식산업사,2001) 45쪽

 

 "조선 침략(侵略)"은 "조선을 쳐들어가는"이나 "조선을 치는"으로 다듬고, "대륙 지배(支配)의 길을"은 "대륙을 지배할 길을"이나 "대륙을 다스릴 길을"로 다듬습니다. "지침서(指針書)라는 사실(事實)을"은 "길잡이라는 대목을"이나 "길잡이였음을"이나 "길잡이 노릇을 했음을"로 손질해 줍니다.

 

 ┌ 이론적 지침서

 │

 │→ 이론이 된 길잡이

 │→ 이론을 보여준 길잡이

 │→ 이론이자 길잡이

 │→ 이론이요 길잡이

 └ …

 

 이 보기글에서는 '이론'이나 '길잡이' 가운데 어느 한쪽 낱말만 쓸 때가 한결 잘 어울리며 매끄럽다고 느낍니다. 어쩌면, 좀더 힘주어 말하려는 생각으로 두 낱말을 잇달아 적었다고 할 텐데, '길잡이'란 바로 '이론이 되는 바탕이자 길'이므로, 이렇게 잇달아 적으면 겹말입니다. 차라리, "이론이자 길잡이"라든지 "이론이요 길잡이"처럼 적는다면, 그나마 덜 겹말 느낌이 나고, 이렇게 적어 본다면 어느 만큼 글느낌도 살릴 수 있습니다.

 

 ┌ 길을 열어 준 길잡이였음을

 ├ 길을 열어 준 열쇠요 길잡이였음을

 ├ 길을 열어 준 무시무시한 길잡이였음을

 ├ 길을 열어 준 끔찍한 길잡이였음을

 └ …

 

 한편, '이론적'을 털어내고 '무시무시한'이나 '끔찍한' 같은 꾸밈말을 넣어 봅니다. 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이 내놓은 어느 '생각'이 바탕이 되어, 일본 군국주의자는 군대를 크게 키워 이웃나라를 쳐들어갈 구실을 삼았다고 한다면, 이와 같은 '생각'은 참으로 무시무시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더없이 끔찍하고, 참으로 모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지없이 섬뜩하고, 몹시 섬찟하다고 할 수 있어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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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2009.11.19 13:42ⓒ 2009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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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 #적的 #우리말 #한글 #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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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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