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아, 신종플루에 당당하게 맞서라

두 번씩이나 신종플루 증세를 보였던 아들

등록 2009.11.20 20:35수정 2009.11.20 2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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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집 아이들 등굣길
우리집 아이들 등굣길송성영

중학생인 우리 집 아이들은 이른 아침 6시쯤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6시면 여전히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꾸벅 꾸벅 아침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겨 7시쯤 등굣길에 나섭니다. 작은 아이 인상이는 친구의 아빠 차 신세를 지기로 하여 인효 녀석이 먼저 나섭니다. 신종플루 예방 마스크에 점퍼까지 껴입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아침 산책을 겸해서 녀석들 등굣길에 동행합니다.

"학교에 가면 니들 교실에 몇 명이나 있냐?"
"한두 명쯤."
"걔들도 너처럼 멀리서 오는 촌놈들이지?"
"그려."

"너, 버스 시간 늦추면 안돼냐? 날씨도 추워지고, 다음 차 타고 가믄 안뎌?"
"그럼 지각 혀, 여덟시 삼십분까지 교실에 도착해야 하는 디, 뒤차 타고 가믄 오 분이나 십분 쯤 늦게 돼."
"지각하는 애들도 있냐?"
"지각하는 애들은 대부분 학교 근처에 사는 애들여."

녀석이 마스크를 벗고 교복 넥타이를 풀어 점퍼 주머니에 넣습니다.

"마스크는 왜 안써?"
"버스 안에서 쓰면 돼."
"그려, 신종플루 같은 거 너무 겁내지 마라 잉."
"겁 안나."
"뭐든지 당당하게 맞서야 이겨 낼 수 있는 겨. 겁내면 당하게 되는 겨."


녀석은 얼마 전 학교에서 신종플루 예방 접종 통지서를 보내왔는데 과감하게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잘못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접종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냥 접종하라 일렀습니다. 그럼에도 녀석 스스로가 당당하게 거부했던 것입니다.

녀석 나름대로 신종플루에 당당하게 맞설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그동안 두 번씩이나 신종플루 증세를 보여 학교에서 조퇴 맡고 결석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콧물 기침에 두통으로 열이 38도 이상 올랐었고 거기다가 설사 증세까지 있었습니다. 영락없는 신종플루 증세를 한 몸에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 확진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때마다 하루 이틀 정도 인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연히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평소 감기 증세를 보였을 때처럼 병원에 가지 않고 마스크도 없이 한 방에서 자고 밥상도 함께 했습니다. 녀석은 두통과 고열로 하루 이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거뜬하게 일어섰습니다.

신종플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 무모할 수가 있느냐구요? 녀석의 증세는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두 번씩 일어났던 증세였으니까요.

두 번째 증세는 설사를 동반했는데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녀석은 입맛이 워낙 까다로워 스님네들처럼 비린내 나는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님들처럼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육고기는 아주 잘 먹습니다. 하지만 어쩌다가 생선을 맛본 젓가락이 다른 음식에 닿기라도 하면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비위가 약한 녀석입니다.

그렇게 밥상 앞에서 입맛 까다롭게 구니 장이 좋지 않을 수밖에요. 거기다가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눈꺼풀로 꾸벅꾸벅 억지 밥을 먹고, 머리통이 굵어질수록 체벌과 단체 기합이 난무하는 부조리한 학교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녀석이었기에 소화기관이 온전하겠습니까? 나는 녀석의 설사를 신종플루보다는 약한 소화기관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종플루 확진 검사장보다는 한의원으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한의사는 녀석의 장이 약해 설사를 자주 하는 것이라 검진하고 한약 한 첩을 지어 줬습니다. 그 한약을 복용하고는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입맛 까다로운 큰 아이 인효와 반찬없이 맹물에 밥 말아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은 먹돌이 작은 아이 인상이는 신종플루에 무관심하다
입맛 까다로운 큰 아이 인효와 반찬없이 맹물에 밥 말아 먹을 정도로 먹성이 좋은 먹돌이 작은 아이 인상이는 신종플루에 무관심하다송성영

작은 아이 인상이요? 녀석은 늘 놀 시간이 부족하고 없어서 못먹습니다.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잘 먹고 잘 노는 건강체질 밥돌이라서 아직까지 끄떡없습니다. 형이 옆댕이서 쿨럭 거려도 끄덕없습니다. 자신이 다니는 학교에 신종플루 환자가 있는지 없는지 관심조차 없으니 두려움도 없지요.

신종플루에 대한 두려움은 마누라 자식 친구 이웃들을 경계하게 합니다. 두려움은 없던 병도 생기게 만듭니다. 감기 증세라도 보이면 신종플루에 걸릴 수 있다고 두려워하다보면 신종플루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먹고 자고 입는 문제도 그런 거 같습니다. 좀더 소유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추잡한 자본가들에게 질질 끌려 다니게 됩니다. 노예가 됩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개발사업 정책이 그렇습니다. 4대강을 개발하면 좀더 먹고 좀더 누릴 수 있다 선전하고 있습니다. 4대강 개발이 마치 삶의 질을 높이는 백신이라도 되는 듯 선전선동하고 있습니다.

신종플루가 어디에서 왔겠습니까? 좀더 많이 먹고 많이 누리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에서 나온 것입니다. 4대강 개발사업은 삶의 질을 높이는 백신이 아니라 결과적으로는 신종플루처럼 우리의 삶을 두려움 속에 처박아 놓게 될 무서운 질병으로 돌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게 어디 4대강 개발 사업에만 해당되겠습니까?

"너 머리 많이 길었다 잉. 선생님한티 안 걸려?"
"걸리면 걸리는 거지 뭐. 내 머리 내 맘대로 못하고. 머리 좀 긴 게 죄인가 뭐." 

녀석은 교칙에 목숨 걸거나 단체기합의 편리성에 젖어 있는 선생님들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려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는 반 아이들이 아침 자습시간에 떠들었다는 이유로 떠들었거나 떠들지 않았던 아이들 모두 허벅지가 시퍼렇게 멍들 정도로 단체 매질을 당했는데 그조차 예사로 넘기고 있었습니다. 부조리한 학교 환경에 자포자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신종플루의 두려움에 맞서 병원에 가지 않았던 것처럼 당당하게 맞서보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녀석의 생각처럼 그게 잘 될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얼마 전 '동학농민전쟁 우금티 기념 사업회'에서 문학상 공모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거기에 학교에서 쓴 시를 다듬어 보냈는데 그게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머리까락 -송인효

바닥에 널부러진 나의 자유들아
정말 미안해
너희는 나였었지
나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게 미안해

무거운 아침의 저 태양보다 일찍 일어나
씻기고 말려 보살폈는데
너희들을 보니 슬퍼져
강제로 잘려버린 너희처럼
교칙의 가위 앞에 나의 자유도 잘려나갔어

내가 너희를 지키지 못한 것처럼
나와 같은 길을 걷는 친구들도 지키지 못했어
잘려버린 너희들이 다시 붙을 수 없는 것처럼
굴욕감도 지워지지 않아

그러나, 잘릴수록 너희가 다시 자라듯이
나와 같은 길을 걷는 모든 친구들도 성장하여
자유의 행진을 할 거야
하지만 행진이 두려워, 왜 그럴까?

녀석은 나름대로 부조리한 학교 환경에 당당하려 애를 쓰고 있었던 것입니다. 녀석과 두런두런 얘기하다보면 추위도 잊고 버스 정류장이 눈앞에 보입니다.

"아빠, 재미난 얘기 하나 해줄까?"
"뭔 얘긴디?"
"1학년 때 이명박 대통령 좋아한다는 애가 딱 한 명 있었다고 했잖아."
"그래 기억난다. 그 애 2학년 때는 같은 반이 아니라고 했잖어."

"학교에서 우연히 만났거든, 그런데 그 애가 억울하다며 그러더라구, 선생님이 존경하는 인물을 써내라고 해서 이명박이라고 썼는디 글쎄..."
"그랬는데."
"선생님이 장난치지 말라고 교실 밖으로 나가라 했대..."
"그 녀석 억울하겠다. 잉."

"그리고 더 웃기는 것은 그 애하고 같이 쫓겨 난 애가 있었는데..."
"그 애는 존경하는 인물을 누구라고 썼다는 디"
"그 애는 히틀러라고 썼대."
"그럼 이명박하고 히틀러만 쫓겨 났네, 정말 웃긴다."

이른 아침 추위가 저 만큼 물러날 만큼 우리는 신나게 웃었습니다.

녀석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뒤돌아 오는데 노란 봉고차가 휭 하니 바람을 날리며 동네 안으로 들어섭니다. 유아원 차입니다. 또 다른 유아원 차가 뒤를 이어 경쟁하듯 급하게 달려옵니다. 저 유아원 차를 타고 갈 어린 아이들은 무엇 때문에 일곱 시 삼십분도 채 안된 이른 아침에 엄마 아빠 품에서 떨어져만 하는 것일까요.
#신종플루 #4대강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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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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