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집 아이들 등굣길
송성영
중학생인 우리 집 아이들은 이른 아침 6시쯤 잠자리에서 일어납니다. 6시면 여전히 어둠이 깔려 있습니다. 꾸벅 꾸벅 아침밥을 먹고 세수를 하고 가방을 챙겨 7시쯤 등굣길에 나섭니다. 작은 아이 인상이는 친구의 아빠 차 신세를 지기로 하여 인효 녀석이 먼저 나섭니다. 신종플루 예방 마스크에 점퍼까지 껴입었습니다.
나는 가끔씩 아침 산책을 겸해서 녀석들 등굣길에 동행합니다.
"학교에 가면 니들 교실에 몇 명이나 있냐?""한두 명쯤.""걔들도 너처럼 멀리서 오는 촌놈들이지?""그려.""너, 버스 시간 늦추면 안돼냐? 날씨도 추워지고, 다음 차 타고 가믄 안뎌?""그럼 지각 혀, 여덟시 삼십분까지 교실에 도착해야 하는 디, 뒤차 타고 가믄 오 분이나 십분 쯤 늦게 돼." "지각하는 애들도 있냐?""지각하는 애들은 대부분 학교 근처에 사는 애들여."녀석이 마스크를 벗고 교복 넥타이를 풀어 점퍼 주머니에 넣습니다.
"마스크는 왜 안써?""버스 안에서 쓰면 돼.""그려, 신종플루 같은 거 너무 겁내지 마라 잉.""겁 안나." "뭐든지 당당하게 맞서야 이겨 낼 수 있는 겨. 겁내면 당하게 되는 겨." 녀석은 얼마 전 학교에서 신종플루 예방 접종 통지서를 보내왔는데 과감하게 거부했습니다. 오히려 부작용 때문에 잘못 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접종시킬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그냥 접종하라 일렀습니다. 그럼에도 녀석 스스로가 당당하게 거부했던 것입니다.
녀석 나름대로 신종플루에 당당하게 맞설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녀석은 그동안 두 번씩이나 신종플루 증세를 보여 학교에서 조퇴 맡고 결석하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콧물 기침에 두통으로 열이 38도 이상 올랐었고 거기다가 설사 증세까지 있었습니다. 영락없는 신종플루 증세를 한 몸에 달고 다녔던 것입니다.
학교에서는 병원에 가서 신종플루 확진 검사를 받을 것을 권유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때마다 하루 이틀 정도 인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공연히 아이들에게 두려움을 줄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평소 감기 증세를 보였을 때처럼 병원에 가지 않고 마스크도 없이 한 방에서 자고 밥상도 함께 했습니다. 녀석은 두통과 고열로 하루 이틀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거뜬하게 일어섰습니다.
신종플루가 난무하는 세상에서 어떻게 그리 무모할 수가 있느냐구요? 녀석의 증세는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한두 번씩 일어났던 증세였으니까요.
두 번째 증세는 설사를 동반했는데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갔습니다. 녀석은 입맛이 워낙 까다로워 스님네들처럼 비린내 나는 생선은 입에도 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스님들처럼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 소고기든 돼지고기든 육고기는 아주 잘 먹습니다. 하지만 어쩌다가 생선을 맛본 젓가락이 다른 음식에 닿기라도 하면 고개를 내저을 정도로 비위가 약한 녀석입니다.
그렇게 밥상 앞에서 입맛 까다롭게 구니 장이 좋지 않을 수밖에요. 거기다가 이른 아침부터 무거운 눈꺼풀로 꾸벅꾸벅 억지 밥을 먹고, 머리통이 굵어질수록 체벌과 단체 기합이 난무하는 부조리한 학교환경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녀석이었기에 소화기관이 온전하겠습니까? 나는 녀석의 설사를 신종플루보다는 약한 소화기관에 그 원인이 있을 것이라 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신종플루 확진 검사장보다는 한의원으로 데리고 갔던 것입니다. 예상대로 한의사는 녀석의 장이 약해 설사를 자주 하는 것이라 검진하고 한약 한 첩을 지어 줬습니다. 그 한약을 복용하고는 더 이상 설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