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바위. 뗏목팔러 하동으로 떠난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소원바위에 한 관광객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붙이고 있다.
오문수
사람이 죽으면 49일 동안 육도 중 어디에서 업보를 받아야 할지 몰라 이곳저곳 떠돌다가 49일 째에 자리를 잡는다는 것이 불교의 사후 세계관이다. 보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위해 사성암에서 49재를 지내고 있다.
스님이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는 동안 어머니의 영면을 빌며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원한과 증오심, 사랑과 부귀영화가 다 부질없는 것인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눈으로 보이는 세상 만물은 마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인 뿐 아무것도 아닌 공(空)이라는 데 부족한 나는 집착에 시달린다.
어머니를 모신 곳은 지장전. 지장이란 모태가 아기를 잉태하듯이 땅이 만물을 길러내는 힘을 지니고 있는 존재를 뜻한다. 지장보살은 석가가 입멸한 뒤에 미래불인 미륵불이 출현하기 전까지 온 세상의 번뇌와 죄업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제도하는 것을 임무로 삼는 보살이다.
사성암의 온화한 지장보살의 오른쪽에는 현왕탱화가 있다. 현왕탱화는 흔치않다. 죽은 사람의 운명을 재판하는 시왕탱을 보면 갖가지 지옥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다. 어느 장면이나 지옥의 현장에는 이곳에서 구제하려는 지장보살이 있다.
망자를 철판에 뉘여 놓고 쇠못으로 박는 철상지옥, 죄인을 판자에 묶어 세워놓고 창자를 뽑아내는 박피지옥, 혀를 길게 늘여놓고 옥졸들이 쟁기질하는 발설지옥, 끓는 가마솥에 넣는 확탕지옥, 날카로운 칼로 된 산에 던져 넣는 도산지옥, 죄인을 양쪽에서 톱으로 써는 거해지옥, 철판사이에 끼인 죄인을 올라타는 중합지옥, 빙산에 갇혀 추위에 떠는 한빙지옥, 재판이 끝난 죄인들은 육도윤회의 길로 떠나기 위해 머리에서 육도를 뽑아 올리는 옥졸 주변에 모여 다음 길을 준비하는 흑암지옥이 있다.
지옥도는 지옥을 보여 주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런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행동을 바르게 하여 지옥의 고통을 맛보지 않도록 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이다. 선행을 하고 나아가 윤회를 깨뜨리고 해탈을 이루어야 하겠다는 다짐이 지장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윤회는 근본적으로 마음 곧 인간 의식의 문제이며 인간의 내부에서 파악되는 문제이다. 그러므로 의식의 변혁을 통해 고통의 세계인 현실은 곧바로 열반이라는 이상 세계로 바뀔 수 있다. 종무소에서 일하는 보살이 전하는 말이다.
"윤회는 생명의 무한성을 상징하는 것인데 마음은 찰나적으로 바뀝니다. 얼마 전 여기 오신 한 신도가 무너진 삼풍백화점 바로 뒤에 살았습니다. 사고 당시 필요한 물건을 사고 2층 식품부에 가기 위해 에스컬레이터를 타려는 순간 짐이 무겁게 느껴져 '에이 그만 집에 가자' 하고 나온 뒤 채 2분도 안 돼 백화점이 와르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마음은 찰나 순간의 맘먹기에 달려있습니다. 불교에서 나 자신을 낮추라는 것은 깨닫는다는 뜻이 아니라, 나를 낮추면 주변 사람들이 높아져 사람들과의 관계가 원만해진다는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