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콩 타작하는 모습
이형기
손자들에게 새총 만들어주기, 고추밭에 약치러 가기, 벼베기, 텃밭에서 가지따기, 마당에서 콩타작하기, 냇가에서 벼 말리기, 감 따서 곶감 만들기, 배추 묶기, 시래기 엮기 등 소소한 일상들이 전개되며 지금은 물에 잠긴 그곳에도 사람이 살았었다는 무언의 항변을 하고 있다.
그리고 잠깐 현재 모습을 교차시켜 보여주기도 한다. "배운 것도 많고 편안하게 살았다면 달랐겠지만 시골 생활은 고생하며 일만해서 너무 질려 생각하기 싫다. 도시 생활은 농촌과 달리 먹고 살기 바빠서 고향 사람들 만나기가 쉽지 않다. 서울에서 살아보니 대도시는 부지런만하면 농촌보다 먹고 살기가 더 나은 것 같다"는 남편 이우일씨의 고백이 아련함을 더한다.
부인 김부순씨의 마지막 말은 가슴에 더욱 새겨진다.
"우리 자식들 여기서 잘 키워서 나간다. 이곳 생활은 말도 못하게 힘들었다. 이것은 종자씨앗이다. 농사꾼은 죽어도 씨앗을 베고 죽으란다고 이렇게 골고루 준비했다. 이 가랑팥씨는 둘째 아들집 앞 아주 작은 터밭에 뿌릴려고 한다. 어머니는 와서 소일거리로 해요 하는데 뿌려만 주면 알아서 할테지. 흙도 좀 파가야 하는데 내일 조금 파서 솥단지 가져갈 때 함께 챙겨야겠다." 덤덤한 말투지만, 그래서 더욱 깊이 다가온다.
영화 제목도 재밌다. '말이 물을 마시면 사람은 떠난다.' 대체 무슨 말인가. 전북 진안군 용담면 말뫼산 아래 황산마을. 이 마을에 살던 노부부의 이야기라 그렇다. 진안에 용담댐이 들어서며 말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뫼산에 물이 들어차니, 그 아래 마을에 살던 사람들은 그곳을 떠날 수밖에.
감독은 건축학을 전공, 건축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영화쪽은 문외한이었다. 그러던 1994년, 댐 공사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라져 갈 그 고향 풍경을 담아보자는 생각에 비디오카메라를 구입해 취미삼아 촬영을 시작한다.
그때부터 책을 구입해 기본적인 것을 공부해가며 고향 동네와 부모님의 일상을 찍기 시작, 1994년 여름부터 1997년 집을 정리하며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꼼꼼히 기록으로 남겼다. 당시는 이것으로 무엇을 해보겠다는 생각보다 지금 이것을 기록하지 않으면 나중에는 이곳을 기억할 수 없을 거라는 아쉬움이 더 컸다고 한다.
그러다 서울에 거주하던 1999년, 이 영상을 작품으로 남겨보자는 생각에서 방송통신대학교 미디어 영상학과에 편입해 체계적으로 영상을 공부했고, 2002년부터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영상 일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이후 6년 동안 영화 메이킹 필름을 담당한다. 동갑내기 과외하기, 첫사랑사수궐기대회, 위대한 유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늑대의 유혹, 마파도, 간 큰 가족, 야수와 미녀, 파랑주의보, 각설탕, 아랑, 내 생애 최악의 남자, 가면, 허밍, 더게임 등의 작품을 통해 자신의 입지를 굳힌다. 그러나 메이킹 작업 역시 자신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갈증과 함께 2007년 접게 되며, 꾸준히 작품을 구상하다 이번 작품을 내놓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