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국대전>에는 도성과 그 사방 십리에 무덤을 쓰지 못하도록 규정했다. 당시 성저십리의 범위는 동쪽으로 양주 송계원(지금의 중랑천변) 및 대현, 서쪽으로는 양화나루와 고양 덕수원(지금의 창릉천변), 남쪽으로는 한강 및 노랑나루였다. 조선후기에 금장구역을 표시한 '사산금표도'와 <속대전>(1746년, 영조 22년)을 보면 우이천과 중랑천, 남쪽으로는 중랑천에서 한강, 북쪽으로는 북한산 보현봉에서 시작해서 불광동-대조동-역촌동, 그리고 서쪽으로는 역촌동-연신내-북가좌동-성산동을 잇는 구역 안에는 무덤을 못 쓰게 했다.
-<은평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 설명 중에서
오늘날 서울에 무덤이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은 이유는 개발과정에서 많이 없어진 이유도 있겠지만, 조선시대 도성 밖 십리까지 무덤을 쓰지 못하게 법으로 규제한 이와 같은 '성저십리금장제도' 때문이다. 이제도는 오늘날의 개발제한구역 같은 것으로 도성인 한양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성저십리의 범위는 시대에 따라 다소 변화되었지만, 이 제도는 조선후기까지 이어졌다. 은평 뉴타운 지역인 진관내·외동은 금장지역의 바로 바깥에 위치, 무악재와 박석고개 등에 의해 격리되어 있어 조선 전기부터 매장지로서 각광받았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은평 뉴타운 발굴지에는 조선시대 무덤들이 많은 것이다.
그렇다면 은평에는 주로 어떤 사람들이 묻혔을까? 2지구 C공구 385 토광묘의 주인은 무당으로 추정한다. 굿을 할 때 쓰는 방울과 대신칼 등의 무구들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굿을 할 때 방울은 소리로 신령을 불러들일 때 쓰이고 대신칼은 망자를 천도하는 굿에서 쓰이는데 무당의 조상으로 알려진 바리공주가 지녔던 무구라고 전해진다.
하지만 대부분의 무덤들은 그 주인을 알 수 없다고 한다. 그러나 은평 뉴타운 인접 이말산에는 수많은 무덤들이 남아있는데 이중 80여기의 비석은 성씨를 확인할 수 있다고 한다. 무덤들의 주인은 왕족에서부터 양반, 중인, 상민 등 다양한데, 특히 왕족, 내시나 상궁 등 왕실과 관계되는 무덤이 많다고 한다.
현재 은평 뉴타운을 인접하여 북한산을 향하다보면 석상이나 상석, 혼유석, 망주석 등의 석물부재로 보이는 것들과 계체석 등이 보이기도 한다. 하루빨리 발굴조사를 마쳐 좀 더 명확한 발굴성과가 제시되었으면 좋겠다.
▲척추후만증과 종양 등을 앓았던 흔적이 있는 인골도 전시되고 있다김현자
▲ 척추후만증과 종양 등을 앓았던 흔적이 있는 인골도 전시되고 있다
ⓒ 김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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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골들도 많이 출토되었는데 분석한 결과, 뼈의 염증, 척추이분증, 머리뼈 골종앙,골절,골다공증,척추후만증,퇴행성 관절염 등과 같은 질병들을 앓은 흔적들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척추후만증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척추와 종양을 앓았을 것으로 추정하는 두개골이 전시되고 있다. 당시 사람들이 어떤 병을 앓았었는지를 알 수 있느지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자료 같다.
전시유물 중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몇 백 년 동안 땅속에서 거의 온전한 모습으로 묻혀 있었던 3개의 달걀이다. 이 달걀이 출토된 무덤은 15~16세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경주 천마총에서도 확인되었다고 한다. 껍질 일부분이 조금 변했지만 모양은 거의 온전한 상태로 현재 우리가 시중에서 살 수 있는 가장 작은 달걀보다 조금 더 작아보였다.
외에도 조개가 담긴 항아리, 청동거울, 커다란 꽃이 장식된 분청자, 자루가 긴 수저, 김자근동 묘 출토품, 다양한 모양의 백자, 동전과 별전 등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 고유 상장례 유물들을 통해 오늘날의 상장례를 만나다
▲가운데 하얀 내용물이 담긴 것이 조개가 담긴 도기 항아리이다.김현자
▲ 가운데 하얀 내용물이 담긴 것이 조개가 담긴 도기 항아리이다.
ⓒ 김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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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지구 C공구 IV-1구역 222호 토광묘에서는 특이하게도 도기항아리 안에 조개가 담겨 출토되었다. 조개를 넣는 것은 '반함'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 반함은 고인의 입안을 차마 비어 있게 할 수 없는 효심에서 비롯된 절차로서, 이때 가공하지 않은 쌀이나 조개, 옥 등을 입에 넣어 주어 다시 소생하기를 바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전시설명
'반함'은 우리 고유 상장례 용어중 하나이다. <은평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의 주인공은 무덤이다. 무덤에는 상장례가 관련되어 있는 만큼 전시유물 설명을 하자면 이처럼 상장례 관련 설명을 해야만 이해가 쉽다. 때문인지 우리 옛 상장례 절차와 오늘날의 상장례에 대한 설명, <주자가례><국조오례의> 등과 같은 상장례 관련 유물들까지 함께 전시하고 있다.
1934년 '의례준칙'에 혼례나 상례를 공회당 등에서 치를 수 있도록 법으로 정했다. 그럼에도 상례만큼은 집에서 치르는 것을 고집했다. 운명이 가까워지면 평소 거처하던 곳으로 옮기는 천거정침을 해야 초혼을 하여 고인을 조상신으로 승화시켜 4대봉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우리 조상들에게 비명횡사하는 객사는 그만큼 두려운 일이었다.
이런지라 병원에서의 운명도 객사로 여겼다. 그러나 이제 우리에게 '천거정침'보다는 '천거병원'이 더 자연스럽고 당연하다. 이제 대부분 병원이나 전문 장례식장에서 상장례를 치른다. 1994년에 병원영안실에서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허가한 이후 많은 장례식장이 만들어지고 전문장례식장들이 등장하면서 상조회사까지 생겨나 오늘날 서비스 경쟁이 심하다. 이런 실정에 이번 전시는 우리의 상장례를 정리해보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리라.
외에도 은평뉴타운 발굴지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가마터, 청담사명 기와출토 건물지. 신라가 이 지역을 점령한 후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지방관리의 석실분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또한 창릉천과 맞닿아 있는 3지구 B공구에는 금암참터와 금암기적비(서울시 유형문화재 제38호)가 서 있다. 이번 전시회에서 함께 다룬다.
▲조선시대 상장례 절차김현자
▲ 조선시대 상장례 절차
ⓒ 김현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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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평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는 '지난 역사 속 은평'과 함께 어떤 절차로 장례를 치렀을까? 오늘날의 상장례 그 바탕이 되는 옛 상장례 절차는 언제부터 어떻게 우리나라에 도입된 걸까? 회곽묘는 어떻게 만들었으며 부장품은 왜, 어떻게 넣었을까? 명기들은 왜 일반 물건들보다 훨씬 작은 걸까? 무덤 속에서 출토되는 수저들은 왜 모두 길까? 조개와 달걀같은 음식물들은 왜 넣어주는 걸까? 부장품의 위치는 무덤마다 왜 다른 걸까? 등, 무덤관련 유물들을 접할 때마다 사사로이 궁금해 했던 것들을 알 수 있는 전시회이기도 했다.
최근 몇 년째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이 뉴타운이나 신도시 등의 개발로 파헤쳐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문제들도 많아 한편 씁쓸하지만, 은평 뉴타운 발굴전은 유물사적으로 썩 중요한 사례 같다. 은평 뉴타운처럼 개발이란 목적으로 파헤쳐진 또 다른 지역의 유물들도 궁금하다. 그 유물들은 어디에 있을까? <은평발굴 그 특별한 이야기>는 오는 12월 13일까지 서울 역사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서울 역사박물관에서는 <세계박람회 한국 순회전시>(2009.11.20~12.20)도 함께 열리고 있다. 이 전시는 세계박람회의 중요성과 인식을 높이고자 국제박람회기구(BIE)가 주최, 지난 2008년부터 밀라노, 마드리드, 브뤼셀, 나고야, 오사카 등 전 세계 주요 도시에서 순회 개최되고 있다. 박람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발전가능성, 박람회의 효과와 목적 등 박람회 관련 다양한 것들을 한자리에서 접할 수 있는 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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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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