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오미즈데라 입구에 있는 몬제마치(門前町), 절 앞에는 절에 가는 사람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가 늘어서 있습니다.
박현국
기오미즈데라의 창건에 대해서는 군서류종(群書類從)에 실린 기오미즈데라 연기(淸水寺緣起), 금석물어집(今昔物語集), 부상략기(扶桑略記) 등에 전하고 있습니다.
서기 778 년, 야마도국 흥복사의 중으로 고지마데라(子島寺)에서 수행하던 현심(賢心, 뒤에 延鎭으로 바꿈)이 꿈에서 계시한 대로 북쪽으로 가다가 지금의 기오미즈데라가 있는 오도바야마(音羽山)에 이르렀습니다. 금빛 물이 흘러가는 것을 발견한 현심이 그 수원을 찾아가자, 그곳에는 이 산에 틀어박혀 폭포수를 맞으며 천수관음을 외우며 수행하는 흰옷을 입은 수행자 교에이고지(行叡居士)를 만납니다. 나이가 200세라고 하는 이 수행자는 현심에게 '나는 네가 오기를 오랫동안 기다렸다. 나는 이제부터 동국으로 여행을 떠나니, 나머지를 맡긴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습니다. 교에이고지(行叡居士)가 관음의 화신이었다고 깨달은 현심은 교에이고지(行叡居士)가 남기고 간 영목(靈木)으로 천수관음상을 새기고, 교에이고지(行叡居士)가 있던 암자에 안치했습니다.
이것이 기오미즈데라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2 년 뒤 780 년 사슴을 잡으러 오도바야마(音羽山)에 들어온 坂上田村麻呂(사카노우에노타무라마로)가 수행중인 현심을 만납니다. 사카노우에(坂上)는 처인 고자(高子)의 병 치료를 위해서 약으로 사용할 사슴피를 찾아 산으로 사냥을 나온 사실을 알고, 엔진(延鎭)이 살생의 죄를 설법하자, 그가 관음에 귀의하여 관음상을 안치하기 위해서 자신의 집을 혼도(本堂)로 기증했다고 합니다. 뒷날 사카노우에(坂上)는 대장군이 되어 승리하여 무사히 귀가합니다. 그 후 사카노우에(坂上)와 연진이 협력하여 혼도(本堂)를 대규모로 개축하고, 관음상의 협시로서 지장 보살과 비사문천상을 지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오미즈데라에서는 교에이(行叡)를 원조, 엔진(延鎭)을 개산(開山), 사카노우에(坂上)를 혼간(本願)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