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혼낼 것인가

웬수 같은 자식, 마녀 같은 엄마?

등록 2009.12.03 12:17수정 2009.12.03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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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의 일이다. 한 친구가 윤리 교사인 내게 씩씩거리며 따지고 들었다. 도대체 선생들이 학교에서 애들 윤리교육을 어떻게 시키기에 애고 어른이고 그 모양이냐는 것이다.

 

얘긴 즉은 아파트 단지 내에서 걸어가고 있는데 뭔가 머리 위로 떨어지더라는 거다. 갑자기 웬일인가 싶어 올려다보니 저 위 층에서 까만 머리통들이 숨는 게 보였다. 그리고 길바닥에는 침자국들이 남아 있었다. 녀석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장난 삼아 침을 뱉고 있었던 것이다.

 

냉큼 뛰어 올라가서 보니 초등학교 3, 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애 둘이 있었다. 꿀밤을 한 대씩 주고 일장 훈시를 했다. 별로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아, 그 중 대장인 듯 보이는 한 녀석의 손을 잡고 그 애 집으로 데리고 갔다. 그 애 엄마에게 자초지종을 말하는데, 엄마한테 가자는 말에 울먹이던 애가 마침내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얘기를 다 들은 그 애의 젊은 엄마가 도리어 그까짓 일 가지고 왜 남의 애를 때리고 기를 죽이느냐며 오히려 따지고 들더라는 것이다. 

 

자기 아이가 잘나기를 바라는 부모의 욕심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기 아이가 잘못했다고 꾸짖는 사람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품을 수밖에 없다. "잘난 내 아이를 왜 못 났다고 하느냐, 기분 나쁘다"는 얘기다. 그러다 보면 '잘난 자식'이라는 부모의 기대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히지 않기 위해서 부모는 정도에 벗어날 정도로 남들 앞에서 제 자식만을 감싸고 돌거나 아니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아이를 향해 잔인할 정도로 인격적인 공격을 가하거나 하는 편집적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어떤 부모라도 자기 자식이 혼나는 것이 싫을 수밖에 없다. 부모의 입장에서야 당연히 자기 애 기죽이는 것 같아 기분이 좋을 리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작정 애의 기를 살려 준답시고, 아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는 게 득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란 존재가 혼자 사는 게 아니다. 항상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남에 대한 배려와 더불어 사는 삶의 자세를 지킬 줄 모르는 사람은 사회로부터 어떤 형태로든지 불이익(왕따)를 받게 된다. 그러니 혼을 내서 기를 죽여야 할 일은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한다. 그게 아이에게 좋은 일이다.

 

문제는 무엇을 혼낼 것인가 하는데 있다. 대개의 경우 부모는 아이들을 다루는데 있어 객관적인 기준보다는 자기의 감정에 의존하기가 쉽다. 그 아이의 행동이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기에 성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적 불쾌감이 아이를 향하여 표출할 때는 도적적 판단이나 인격적 판단으로 바뀌게 된다.

 

아이가 구멍 나고 해진 청바지를 사 입고 집에 들어왔다. 아버지가 보니 이게 옷이 아니다. 당장 화를 내며 옷 꼬라지가 그게 뭐냐, 그걸 돈 주고 샀냐,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엉뚱한 짓만 한다 등등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아이에게 드러내면서 혼을 낸다. 아이는 주눅이 들어 찍 소리 못하고 섰다. 엄마가 보다 못해 옆에서 끼어든다. 요즘 애들 저게 유행이래요. 지도 입어보고 싶었겠죠. 

 

사실 아버지는 아이의 성적에 불만이 많았던 것이다. 물론 옷 모양새도 맘에 안 들었겠지만 말이다. 자신은 아버지가 안 계신 어려운 환경에서도 나름대로 공부해서 일류 대학 좋은 학과에 입학했고, 이제 어느 정도 사업도 성공해서 돈도 생기고 살 만해졌다. 어려서부터 부모님이 별로 해준 것도 없지만, 학업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은 어려운 형편 중에서도 열심히 공부했던 아주 훌륭한 기억을 가지고 있다.

 

자기가 고생하며 공부한 기억이 있기에 자기 아이에게는 정말 학원에다 과외에다 자신은 해보지도 못했던 것들을 다 해주는데도 아이의 공부는 영 꽝이다. 자기가 고생하며 공부한 것 생각하면 이게 도무지 말이 안 된다. 도대체 뭐가 문젠가, 해달라는 거 다 해주는데 공부는 왜 그 모양인가 말이다. 아들놈이 영 마음에 차지 않는 것이다. 나와는 영 딴판인 아들놈이 몹시도 못마땅했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는 자기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애로 인해 생겨한 불쾌한 감정을 쏟아놓을 통로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이의 옷 입은 모양새를 보며, '그래 네가 그러고 다니는 놈이니까, 성적도 그 모양이지'라고 아이의 인격에 대한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들을 두지 못해서 남 보기도 그렇고 화가 난다는 자신의 감정적 문제를 아이의 인격을 거론함으로써 해결하려 했던 것이다.

 

사실 공부 못하는 것은 혼낼 일이 아니다. 공부 못하는 것은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잘못(남을 배려하지 않거나, 할머니께 무례하게 굴거나)에 대해서야 따끔하게 화를 내고 때로는 매를 들 수도 있는 일이지만, 공부 못하는 거 가지고 괜히 혼을 내서 기죽일 일이 아닌 것이다.

 

모든 사람이 다 공부를 잘해서 모두 1등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 아이만은 1등을 해야 한다고 우긴다면 이는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다. 자신은 과연 아이가 보기에 1등 부모인지를 생각해 보면 알 것 아닌가. 아이가 보기에 세상에는 자신의 부모보다 잘난 부모를 가진 아이들이 너무나 많다. 그런 것 다 따져보자면 아이로서는 나름대로 부모에게 자식도리를 할 만큼 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가 성적이 잘 나오지 않으면 부모로서 화를 내고 꾸짖으며 자신의 감정 풀이를 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아이와 함께 공부 잘 할 수 있는 방법(모르는 것 알아가기)을 모색해 볼 일이다. 그게 아니다 싶으면  아이가 잘 할 수 있는 뭔가 다른 일을 함께 찾아 보던가 할 일이다.

 

그저 학원이나 과외 선생에게 돈 몇 푼 주고 맡겨서 손쉽게 해결 보려다 뜻대로 안되니까 아이에게 화살을 돌릴 일이 아니라는 소리다. 돈을 주는 것보다 세상에 쉬운 부모 짓이 또 어디 있겠는가. 오히려 부모 자신의 시간을 들여가며, 아이의 공부 문제(틀린 것 알아가기)를 해결하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반성해 볼 일이다. 세상에 시간들이지 않고 되는 일이 있던가.

덧붙이는 글 | 뉴스앤조이

2009.12.03 12:17ⓒ 2009 OhmyNews
덧붙이는 글 뉴스앤조이
#자녀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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