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 먹이기, 애 낳는 것만큼 힘들었어요

직장맘의 모유수유기... 정책자들은 어떻게 애 키웠나 궁금하네

등록 2009.12.07 12:59수정 2009.12.0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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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심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지만 우선 결심이 중요하다."


세상 일이 다 그럴 텐데 선배 엄마들은 모유수유 성공 비법의 첫 손으로 '마음먹기'를 꼽더군요. 세상 일에 바빠 정작 뱃속일 나 몰라라 하며 임신 기간을 보낸 '날라리' 임산부는 출산을 앞두고 결심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꼭 젖을 먹이리라.'

신문, 방송에서 소리 높여 외치는 '모유의 중요성'에 혹하기도 하고, 분유값이 만만찮다는 현실론에 고개 끄덕이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모유가 끊어진 탯줄을 대신해서 아이와 나를 잇는 또 다른 다리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아이에게 선물을 줌으로써 느끼는 충만감을 만끽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육아책과 다른 병원 조치, 엄마만 갈팡질팡

 아이가 설소대가 짧아 젖 빠는 걸 힘들어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설소대 단축증은 혀와 구강 바닥의 연결부위인 설소대가 짧은 질환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아이가 엄마 젖을 잘 못 빨거나, 모유 수유시 젖꼭지가 아프거나, 발음이 또래 아이들보다 좋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이비인후과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아이가 설소대가 짧아 젖 빠는 걸 힘들어 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설소대 단축증은 혀와 구강 바닥의 연결부위인 설소대가 짧은 질환으로 선천적으로 타고난다. 아이가 엄마 젖을 잘 못 빨거나, 모유 수유시 젖꼭지가 아프거나, 발음이 또래 아이들보다 좋지 못하다고 느낄 때는 이비인후과에 문의해 보는 것이 좋다. 낮은표현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만 준비하기엔 부족해 보여 보건소에서 하는 모유수유특강도 들었습니다. 젖이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수유 자세는 어떤 게 있는지 등 배울 때는 다 알 것만 같았죠. 실전에서도 문제없어 보였습니다.


그랬던 자신감은 실전 첫날부터 여지없이 무너졌습니다. 정확히 말해서는 아이를 낳은 그 순간부터죠. 육아책이나 모유수유 강의에서는 모유수유를 하기 위해선 출산 후 1시간 내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를 낳은 서울의 한 개인 산부인과에서는 아이가 태어나자 8시간 동안 금식을 시키라는 겁니다.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이상이 없는지 확인을 한다던가요? 모유 수유하기에 좋은 모자 동실이 있긴 했지만 모유 수유를 권하는 다른 장치들은 부족한 병원이었지요. 병원에서 이러니 처음에 가졌던 마음은 어디로 갔는지 1시간 내 젖을 물리는 것이 아니라 금식을 시키게 되더군요.


'아, 내가 이러면 안 되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병원에서 준 포도당, 분유를 거부하고 아이에게 젖먹이기를 시도했습니다. 산후조리 초기에는 안아서 먹이는 요람자세가 힘드니 누워서 먹이라고 배웠지만 그 역시 배운 대로 자세잡기가 힘들더군요. 안아서 먹이는 데도 혹시 아이가 젖을 빨지 않으면 어쩌나 어찌나 조바심이 나던지…. 다행히 아이는 용케 엄마젖을 찾아 물었습니다.

황달로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입원

 아이는 황달로 태어난 지 1주일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모유를 먹는 아기의 경우, 모유양이 부족해 황달증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생후 7일 이후에도 황달 수치가 높을 때는 진찰을 받아야 한다. 신생아 황달은 특수형광등을 켠 인큐베이터 안에서 광선치료로 진행된다.
아이는 황달로 태어난 지 1주일만에 병원에 입원했다. 모유를 먹는 아기의 경우, 모유양이 부족해 황달증상이 나타나곤 하는데 생후 7일 이후에도 황달 수치가 높을 때는 진찰을 받아야 한다. 신생아 황달은 특수형광등을 켠 인큐베이터 안에서 광선치료로 진행된다. 낮은표현

이대로 모유수유가 바로 성공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뒤로도 저의 모유수유 도전엔 수많은 난관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초반에는 아이가 원할 때마다 젖을 물리라고는 배웠지만 우리 아이는 젖을 물고 돌아서면 도로 젖을 찾나싶을 정도로 밥 먹는 간격이 짧았지요.

그렇게 제 몸만 힘들었으면 됐을 텐데 아이도 아팠습니다. 태어난 지 1주일 만에 황달수치가 높아 병원에 입원을 합니다. 초보엄마는 젖 먹는 아이의 경우 잘 먹나 안 먹나를 소변량으로 체크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거죠.

아이는 자주만 빨았을 뿐 많이는 먹지 못하고 있었던 겁니다. 영하의 찬바람 불던 날 아이를 신생아중환자실에 맡기고 돌아와 흘러내리는 눈물을 훔치며 미련한 엄마라고 자책하던 그때가 1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르네요.

아이의 본능은 엄마의 예상을 뛰어넘는 법. 병원에서 치료받는 동안 아이는 분유를 먹었습니다. 육아서에는 한 번 분유에 맛 들이고 젖병을 물리면 아이가 엄마젖보다 달콤한 분유에 사로잡히고 엄마젖과 젖병 젖꼭지를 혼동한다고 적혀있지요. 그런데 우리 아이는 입원 3박4일만에 퇴원하면서 집으로 오는 자동차 안에서 엄마젖을 잘 빨아먹더군요. 아이가 엄마젖을 기억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 많은 의료진 "설소대 짧다" 말 안 해

 모유수유, 마음먹기가 힘든 이유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여건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모유수유, 마음먹기가 힘든 이유는 그를 뒷받침해주는 사회여건이 제대로 만들어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낮은표현
그런데 퇴원하고 나서도 아이는 젖 빠는 횟수만큼 많이 먹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계속 배고파하는 걸 그냥 둘 것인가 그냥 분유를 먹일 것인가 초보엄마는 괴롭게 갈등했지요. 다른 선배 엄마들의 경험담을 검색하다가 모유수유클리닉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마침 집 근처 병원에 모유수유클리닉이 있어서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아이가 젖 빨기 힘들었던 이유를 알게 됐습니다. 모유수유전문가선생님은 수유자세를 바로 잡기 위해 아이 입안을 보자마자 "설소대가 짧네요"라고 말씀하시더군요. 혀와 구강 바닥의 연결부위가 짧다는 거였지요.

그래서 아이가 혀를 내밀고 싶어도 내밀 수 없었던 건데 그것도 모르고 초보엄마는 아이가 젖을 힘 있게 빨지 못한다고만 하고 있었던 거죠. 초보엄마도 초보엄마지만 아이를 낳았던 산부인과나 아이가 입원했던 대학병원에서 많은 의사, 간호사들이 아이를 봤는데 왜 그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까요.

설소대를 자르는 간단한 수술을 하고 수유자세를 달리하니 아이가 젖을 한결 편하게 먹더군요. 물론 밤을 비롯해 때맞춰 젖을 먹이는 엄마의 수고로움은 여전히 계속됐지요. 이렇게 젖먹이기와 씨름하다보니 출산휴가 3달이 언제 끝났나싶게 금방 지나가더군요.

직장맘 유축할 곳 찾기 하늘에서 별따기

직장에 복귀해 모유수유 도전을 계속하기 위해선 또 다른 장애물들을 넘어야 했습니다. 직장에 모유수유실이 따로 없어서 회의실 앞에 '유축중'이라는 종이를 붙이고선 하루 두 번씩 유축을 해야 했지요. 회의실을 쓸 땐 사무실 한 쪽에 가름막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사무실에서 유축하는 건 그래도 나은 편이었지요. 인터뷰하러 갈 때면 유축할 곳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한 번은 1박2일 출장을 갔습니다. 인터뷰한 곳 사무실 구석방을 빌려 모유를 짜기도 하고 건너건너 소개받은 숙소를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돌아오는 길 KTX안에서 유축할 곳을 찾으니 승무원이 모유수유실을 안내해 주더군요.

KTX는 좀 낫나 했는데, 모유수유실이란 곳엔 전기콘센트가 없었습니다. 혹시 아이와 함께라면 가능할까, 주위를 둘러보니 너무 좁아서 아이를 제대로 안고 앉아서 모유를 먹일 수 없겠더군요. 초보엄마가 딱 봐도 생색내기용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유축한 모유를 갖고 다니는 것도 일이었지요. 식당을 가든 사무실을 가든 냉장고부터 찾았습니다. 직장맘으로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동안 참 많이 뻔뻔해졌습니다. 아니 당당해졌지요.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니까요. 그런데 불편한 일이긴 하더군요. 정부는 저출산대책으로 아이들 학교 가는 나이를 낮춘다고 합니다.

그 뉴스를 보고선 초보엄마는 생각합니다. 엄마젖도 이렇게 아등바등해야 겨우 먹일 수 있는 정도의 사회여건인데 별 대책없이 무작정 초등학교 입학 나이만 줄인다고 아이를 많이 낳을까. 정책자들은 애를 어떻게 키웠나 궁금하네.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끝에 얼마 전에 아이는 첫 번째 생일을 맞았습니다. 사실 현재의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앞이야기가 길어져 뒤편으로 넘깁니다. 대신 아이의 육아일기 중 하나를 덧붙입니다. 위에 계신 정책자님들께도 엄마의 마음을 들려주고 싶네요.

 내가 젖 먹이기를 고집한 이유는 아이와 내 자신에게 쉽지 않은 길이지만 잘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내가 젖 먹이기를 고집한 이유는 아이와 내 자신에게 쉽지 않은 길이지만 잘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낮은표현

내가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이유

팔목이 시큰거립니다. 목을 돌리는데 우두둑 소리가 납니다. 어깻죽지 힘줄이 당겨옵니다. 허리 통증도 나타납니다.

이 모든 증상들이 아이 젖을 40일간 물리고 나타난 결과입니다. 여자는 몸조리를 잘하면 몸의 안 좋았던 부분들이 좋아진다고 하던데 이건 병이 낫는 게 아니라 새로운 병이 생기지 않을까 걱정스러울 지경입니다. 좀 지나면 괜찮아질까요?

낮에 젖을 물리는데 또 팔목이 시큰거렸습니다. 도대체 이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내가 모유수유를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곰곰 생각해봤습니다. 그랬더니 이런 결론이 나오더군요. 아이와 내 자신에게 우리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걸 확인시키고 싶어서라고.

아이는 하루에도 열 번이 넘도록 젖병을 무는 것보다 60배나 힘든 엄마젖 빨기를 하고 있고, 엄마도 여기저기 아프다고 징징대면서도 아이에게 엄마젖 물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육아책에서는 모유수유는 1년 이상 하는 게 좋다고 하지만 직장도 복귀하니 그렇게 못할 수도 있겠지요. 다만 한결이가 크면 이렇게 전해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았고, 힘든 길을 잘 걷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었다고요. 앞으로도 한결이가 손쉽게 남의 것을 탐하지 않고 나의 땀이 녹아있지 않으면 나의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쉽지 않은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덧붙이렵니다.

모유수유는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한결이가 엄마의 선물을 잘 받아줄까요. 그 속에 담긴 엄마의 마음도 함께 받아주면 좋겠습니다.

2008. 12. 21. 일. 한결이 탄생 42일째
#모유수유 #황달 #설소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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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삶엔 이야기가 있다는 믿음으로 삶의 이야기를 찾아 기록하는 기록자. 스키마언어교육연구소 연구원으로 아이들과 즐겁게 책을 읽고 글쓰는 법도 찾고 있다. 제21회 전태일문학상 생활/기록문 부문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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