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4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열린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KBS 본관 앞마당에 모습을 드러낸 김인규 KBS 사장.
유성호
"따로 또 같이." KBS 노조가 2개로 늘어날 전망이다. MB특보 출신 김인규 KBS 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총파업이 부결됐음에도 노조가 책임지지 않는 태도를 보이자 이에 실망한 50명의 구성원들이 새 노조를 설립하겠다고 나섰다.
개인 연명으로 나선 50명의 KBS 구성원들은 10일 오후 '새 희망 새 노조를 함께 만듭시다'라는 제안문을 사내게시판에 띄우고 새 노조 가입 신청을 받고 있다. 이들은 조만간 노조총회를 열고 정관을 만든 뒤 전국언론노조 KBS지부로 등록할 계획이다.
이들은 "공영방송에 대한 우리의 신념과 헌신, 열정이 다시 흐를 수 있는 물꼬를 트고자 한다"며 "짓밟힌 공영방송인의 자존심과 기상을 다시 세우자"고 밝혔다.
이어 "1990년 4월 관제사장을 거부하고 싸웠던 빛나는 KBS 선배들의 길을 다시 찾자"며 "국민적 비판과 냉소 속에서 버림받는 KBS를 살리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유일한 존립근거와 행동원칙으로 삼는 구심체를 만들지 않고서는 지금의 현실을 감당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권력에 의해 허망하게 무너졌던 최근의 KBS 역사가 던져주는 깨우침"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판단이다.
이들은 "사랑하는 가족에게, 친구에게, 시민들에게 고개 들어 다시 공영방송을 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출발점을 만들어보자"고 조합원들에게 넌지시 물었다. "나는 약하지만 우리는 강하니" 손잡고 함께 가자는 제안이다.
언론노조에 KBS지부로 등록할 계획지난 11월 24일 열린 김인규 KBS 사장의 취임식은 난장판이었다. 강동구 KBS 노조위원장은 출근저지투쟁과 단식농성을 벌여 김 사장의 취임을 막겠다고 했지만 말만큼 행동이 따라주지 못했다. 단식농성도 뒷북이라는 사내 비판이 이어졌다.
김인규 사장이 기자 시절 전두환 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까지 권력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인 보도내용이 연일 터지면서 권력비판과 공정방송이라는 언론의 기본취지에 맞지 않는 인물이라는 비판은 거셌지만, 김 사장을 막아내지는 못했다.
이 가운데 KBS노조에 실망한 많은 구성원들이 새로운 노조 설립에 뜻을 모았으며 이 가운데 50명이 첫발을 뗀 것이다. 이들은 조만간 전국언론노조 KBS지부로 등록한 뒤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활동에 본격 돌입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일단 50명이 먼저 총회를 열고 정관을 만들어 언론노조에 지부신청을 하겠다는 것이다.
언론노조는 10일 중앙위원회의를 열고 KBS지부에 대한 논의를 마칠 계획이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KBS는 현재 사고지부로 분류돼 있다"며 "KBS 구성원 간 합의로 지부 (신청) 결정을 내리면 곧바로 처리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산별노조는 개별 가입, 개별 탈퇴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KBS 안에 두 개의 노조가 생긴다고 해서 법적으로 문제 될 것은 없다. 복수노조가 아니라는 얘기다.
그러나 KBS 안에 두 개의 노동조합이 설립되면 결과적으로 노노갈등을 유발해 사측에 맞서는 데 힘이 빠지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그러나, KBS에서 새 노조를 준비하는 측은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고개를 젓는다.
KBS에서 새 노조를 준비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BBC의 경우엔 이미 저널리스트 노조가 따로 있다"며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잘못된 통합을 하고 있었으며,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건강한 분열이 낫다고 보고 새 노조를 설립한다"고 말했다.
공영방송 KBS는 정치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해 자율성을 갖고 국민이 요구하는 공적 가치를 실현하며 세상에 진실을 알려야 할 의무가 있지만, 현 노조는 이를 실현하기보다는 다른 데 최우선의 가치를 두고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