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처용문화제에서 처용무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박석철
지난 대통령 선거를 전후해 기독교 단체가 외설로 규정하며 논란을 빚었던 울산의 대표적 설화 처용이 최근 처용무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로 부활했다.
처용 설화를 바탕으로 한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 처용무는 지난 9월 30일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 대표목록에 등재돼 처용무의 역사성과 예술성을 세계가 인정한 것.
한국문화원연합회 울산지회는 11일 세계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기념 처용무 학술발표회와 고유제를 열고 "울산을 바탕으로 하는 처용설화는 문학, 음악, 무용 등 예술 전반에 걸쳐 유구한 세월동안 우리민족과 함께해 온 소중한 자산"이라며 "앞으로도 우리가 보존하고 전승해야 할 자랑스러운 전통문화유산"이라고 밝혔다.
처용설화, 기독교단체는 '외설' 규정처용설화는 삼국유사 2권 처용량 망해사조 기록으로 남아 있다. 신라 49대 헌강왕이 신하과 함께 개운포(현재 울산 남구 황성동)에 놀러갔다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길을 잃었다.
신하는 왕에게 "동해의 용이 부린 변괴"라고 전하고 왕은 신하의 말에 "근처에 절을 세우라"고 명령했다. 그러자 구름이 걷히고 안개가 사라졌다. 동해용이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거느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 왕의 덕을 찬양하고 춤추며 노래했고, 그 아들 중 하나가 처용이다.
<처용가> 서울 밝은 달밤에 밤늦도록 놀고 지내다가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헌강왕은 신라에 남은 처용에게 미인을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이라는 직위도 줬다. 어느날 처용 아내를 흠모한 역신이 사람 모습을 하고 몰래 동침하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에게 발각됐다. 하지만 처용은 화를 내기는커녕 되레 노래하고 춤추면서 스스로 물러나자 역신이 사죄했다는 내용이다. 이 춤이 조선 성종 때 만든 악학궤범에서 전하는 처용무로 이번에 세계무형유산으로 등재된 것.
울산에서는 이 처용설화가 관용과 화합의 정신을 말한다며 지역의 대표축제로 지정, 40여년간 처용문화제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처음 동해용이 나타난 개운포에서는 매년 처용제가 열린다.
울산은 1960년까지만 해도 인구 6만의 농어촌이었는데, 1962년 공업특정지구로 지정되면서 전국에서 모여든 외지인으로 급속도로 인구가 늘어 현재 110만을 넘어섰다. 이 때문에 처용이 보여준 화합이 이런 도시 특성에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 문화계의 처용문화제 옹호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