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남1번가는 통영 근대문학의 산실이다
정용재
통영은 인구 대비 그 어느 지역보다 거장이며 명인인 예술가들 흔적이 많은 곳이다. 통영의 거장 예술인들은 화가, 음악가, 시인, 소설가 등 예술 각 부문에 걸쳐 있으며 통영시내 곳곳에 그 흔적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있다. 예술가들의 흔적 중 찾아보기 쉽고 친숙한 것이 시인들 작품을 새긴 시비(詩碑)이다.
시를 읽는 동선 만들기
문학비와 시비 등을 기점으로 동선을 구성해보는 것은 통영을 찾는 여행객과 답사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통영의 자랑스러운 문화역사를 되새겨 통영시민 스스로의 자긍심을 높이는 길이 될 수 있다.
문학가의 흔적을 쫓아 지금 통영의 지도에 겹쳐보는 '문학지도' 작업으로는 충렬여고 문학동아리 백합 문학기행반의 '통영문학지도' 제작 사례가 있다. 백합 문학기행반 6기 학생들은 통영시 문화관광과 관계자와 강석경 소설가, 청마문학관장 등의 협조로 '통영문학지도'를 제작하는 데에 열성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고장의 문학유산을 찾으며 지도를 제작하는 것과 함께, 시비를 답사하며 시 낭송 모임을 개최하는 것도 좋은 기획이 될 것이다. 시 문화예술당국이 후원해 통영시민들이 시 낭송 답사길을 걸어보는 기획도 생각할 수 있다. 시 곳곳에 분포된 문학비와 시비를 그저 사진만 찍고 가는 대상으로 머무르게 하지 말고, 창조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통영의 문학비와 시비들 중 다수가 중앙동과 항남동에 집중되어 있어, 중앙동 우체국부터 항남 1번가 길은 '시 읽는 거리'라고 불러도 억지는 아니다. 유치환, 김상옥, 박경리, 김춘수... 한국 문학 거장들의 유산이 밀집되어 있는 길이 바로 중앙우체국과 항남 1번가 길이다.
통영중앙동우체국 앞의 청마 유치환 중앙동우체국 정문 계단 옆에는 빨간 우체통과 나란히 청마 유치환의 '행복' 시비가 있다. 유치환과 통영중앙우체국은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유치환이 생전에 여류시인 이영도를 비롯한 지인들에게 무려 5천여통이 넘는 편지를 보낸 곳이 바로 통영중앙우체국이다. 빨간 우체통 옆에 자리한 '행복'이란 시에도 우체국이 등장한다.
'행복'은 시인 이영도와 나눈 정신적인 교감과 순결한 사랑을 담은 글로, 중앙우체국 우체통 옆 자리만큼 이 시가 어울리는 공간도 달리 없다. 청마 유치환은 이영도 시인에게 쓴 연서를 바로 이곳에서 보냈던 것이다. 오늘날 통영중앙동우체국을 '청마우체국'으로 개명하자는 주장에 찬성과 반대가 맞서고 있지만, 중앙동우체국과 우체통 옆 청마시비의 깊은 의미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