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대성동고분군 일부 모습대성동고분군 내의 노출전시관의 모습. 이곳에 출토된 유물들을 바탕으로 금관가야가 번성하던 당시의 모습을 유추해 볼 수 있다.(사적 341호)
오은석
금관가야는 광개토태왕의 남정 이후 급속도로 쇠퇴하게 된다. 광개토태왕의 군대는 신라의 구원요청을 받고 백제와 왜, 그리고 가야의 연합군을 공격하기 위해 신라로 온다. 그리고 이들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며 종벌성에 이르러 항복을 받게 된다.
이 사건 등으로 인하여 한반도의 정세는 급변하게 된다. 고구려의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백제는 전쟁에 국력을 쏟아 부었음에도 불구하고 패배를 함으로써 경쟁구도에서 더 뒤처지게 된다. 그리고 신라는 고구려에게 간접적인 통치를 받게 된다. 하지만 고구려의 직접적인 공격이 없었고, 문화 전파의 계기가 되었기에 이를 통하여 자신들이 성장할 만한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
가야제국의 상황은 또 달랐다. 직접적인 피해를 본 금관가야는 쉽게 복구하기 힘든 타격을 받게 된다. 반면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은 대가야와 아라가야는 자신들의 세력을 확장시키면서 후기 가야연맹체를 주도하게 된다. 여기에서 철산지와 농경지를 확보한 대가야의 활약이 두드러지며, 나중엔 가야제국을 대표하는 맹주국으로 부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