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K연쇄살인] 외세의존세력이 가장 폭력적이었다

김갑수 통일추리소설 BK연쇄살인사건(46회) 야합한 범인

등록 2009.12.23 12:59수정 2009.12.23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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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경은 희생자 8명의 공통점을 생각해 보았다. 그들은 모두 남북한의 지식인 겸 특권층이었다. 그들은 법을 어기지는 않았지만, 일면 부도덕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무엇보다 남한과 북한에 대하여 각각 잘 모르면서도 잘 안다고 확신하고 주장해 왔던 사람들이었다. 범인은 이 사람들을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에 장애를 주는 사람들이라고 간주하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범인은 이들에 대한 테러가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에 긍정적인 효과를 내리라고 생각할 정도로 단순한 자는 아닐 터였다. 역사적으로 볼 때 남북관계는 언제나 역풍을 불러왔다는 사실에 견주면 그것은 쉬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범인이 1차적으로 노리는 것은 오히려 그 반대일 가능성이 높았다.

조수경은 남한에서 연쇄테러가 터졌을 때의 일을 생각했다. 그때 대북 관용론자들은 곤경에 처했었다. 순식간에 사회 분위기가 냉전적으로 바뀌었기 때문이었다. 안동준의 귀띔에 의하면 북한에서도 사건이 소문으로 알려지면서 냉전주의자들이 다시 목소리를 높이게 되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범인은 냉전을 원하는 자란 말인가?'

그것 역시 단순한 논리일 수 있었다. 남한의 전직 대통령 김대중이 남북정상회담을 총선 직전에 발표하여 오히려 역풍을 맞은 적이 있었다. 김영삼도 북한에 대규모의 원조 계획을 발표했다가 직후 선거에서 크게 손해 본 일이 있었다. 이제껏 남북관계의 바람은 누가 일으키느냐에 따라 예상과 반대 방향으로 분 것이 사실이었다.

따라서 사건을 단순하게 보았다가는 낭패하기 십상이었다. 자칫하면 수사진마저 범인의 의도에 말려들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배후 범인이 어떤 인물이냐에 따라 범행의 의도는 달라질 수 있는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누가 말하느냐가 중요하다.'


조수경의 판단으로 범인은 미친(mad) 인간은 아니었다. 미친 인간은 합리적이지 않다. 범인은 나쁜(bad) 인간이다. 나쁜 인간은 합리적이다.

합리는 단순에 지고,
단순은 최고의 합리에 지며,
최고의 합리는 최고의 단순에 진다.


조수경은 '최고의 단순'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었다.

커피를 만들어 마신 조수경은 범인이 희생자 8명을 통해 보인 메시지들을 마태복음의 산상수훈과 대조적으로 맞춰 보았다.

마음이 가난한 자 : 탐욕
애통하는 자 : 독선
온유한 자 : 극좌, 극우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무지
긍휼히 여기는 자 : 수구
마음이 청결한 자 : 위선
화평케 하는 자 : 전체주의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 위선, 탐욕

모든 항목의 개념이 뚜렷하게 반대되는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극우나 극좌와 같은 근대적 개념을 예수의 시대와 꿰맞출 수는 없었다. 다만 범인이 8명의 악인을 선정했다는 점에서 예수가 제시한 8명의 선인(善人)과 대칭될 수는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범인을 기독교와 관련된 자라고 곧장 추정할 수는 없었다. 이미 마태복음에 있는 산상수훈은 하나의 고전처럼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아포리즘이다. 어떻든 범인의 의도대로 이 여덟 부류의 사람들이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을 방해하는 무리들이라면, 반대로 범인은 남북 화해와 민족 통일의 정신적 지침으로서 산상수훈을 교시하고 있다고는 해석해 볼 수 있었다.

다음 날 저녁 김인철은 커피 두 잔을 만들어 가지고 조수경의 방으로 건너왔다. 그는 조사한 내용을 정리한 A4 용지를 조수경 앞으로 내밀었다.

"흔히 통일 문제를 놓고 남남 갈등이 새로 생겼다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조사에서 남남 갈등 못지않게 북북 갈등도 심하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남한 사람들은 이북이라면 일사분란하게 똘똘 뭉쳐 있는 것으로 아는데…."
"그렇습니다."
"나는 주로 들을 테니 후배가 조사한 것을 설명해 줄래?"
"알겠습니다."

김인철은 커피 잔을 입으로 가져가면서 조수경에게도 마시라는 손짓을 했다. 조수경은 고맙다는 말을 하며 커피 잔을 들었다.

"남남 갈등은 지금보다 해방 직후에 극심했습니다. 그것이 최근 남북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나타난 겁니다.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의 의식에 잠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조수경은 구스타프 융의 집단 무의식 이론을 잠깐 떠올렸다.

'해방과 분단 문제는 이미 한국인의 원형(原型)이 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조수경은 김인철의 눈을 보며 계속 말하라는 뜻의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학자들은 남남 갈등을 대북 갈등, 대미 갈등, 지역 갈등, 빈부 갈등, 세대 갈등 등으로 구체화시켜 말하는데, 사실 대북 갈등과 대미 갈등을 제외한 나머지는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는 겁니다. 그러니 남남 갈등은 대북 갈등과 대미 갈등뿐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대미 문제로 인한 갈등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겪고 있습니다.

미국은 지구 군사비의 40%를 지출하는 나라입니다. 옛날 로마제국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초강대국입니다. 게다가 다른 강대국들에 비해 더 부도덕하지 않다는 점이 미국의 또 다른 강점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나라에서든지 대미관이나 대미정책에 있어 이견과 갈등이 생기는 것이지요. 그런데 한국의 대미 갈등이라는 것은 대북 갈등과 맞물려 있습니다. 진부한 비유로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지요. 결국 한국의 남남 갈등이라는 것은 대북 문제로 인한 갈등뿐입니다. 이것은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북한의 갈등, 즉 북북 갈등이라는 것은 대남 문제로 인한 것입니다."

김인철의 말에 의하면 해방 정국에서 북한은 소련의 영향력이 압도적이어서 남한의 대미 갈등과 같은 성격의 대소(對蘇) 갈등이 극심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대남 갈등과 맞물려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잠재되어 있다가 남북 대화가 이루어지면서 다시 부상했다고 했다. 지금은 중국의 영향력이 더 커져서 대중(對中) 갈등으로 변모했다고 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남 갈등과 함수적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남한은 물론 북한의 화해 세력도 머뭇거리고 있는 겁니다. 다시 말해 북한에도 중국이라는 외세를 업고 힘을 쓰는 세력이 엄존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구한말 이래 외세와 결탁한 세력은 민족의 해방과 통합을 저해해 왔습니다. 놀라운 것은 남한이든 북한이든 외세를 믿고 설치는 세력이, 아마도 믿는 구석이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가장 많은 폭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입니다. 왜냐 하면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외국이 보호해 줄 것이고 정 안되더라도 외국으로 도망칠 수는 있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은 2세들을 대부분 외국에 보내 놓고 있습니다. 그것까지도 남·북한이 비슷한 양상을 보입니다. 갑신정변 때 자객을 시켜 비열한 테러로 대신들을 암살한 후, 정권 장악에 실패하자 일본으로 도망친 김옥균, 박영효, 서재필 등의 개화당 세력을 보면 아는 일입니다. 그들은 일본 공사관과 결탁하고 음모를 꾸몄지 않습니까? 한국의 역사에서 외세 결탁 세력은 개화당처럼 언제나 기회주의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그것은 남과 북이 똑같았습니다."
#남남갈등 #외세의존 #북북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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