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발자유화 하면 유흥업소로 달려간다?

학생답게 머리를 자르라고?...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등록 2009.12.30 14:34수정 2009.12.30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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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속 여학생은 모두 몇 명일까? 지난 8월 여름 방학 때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마칭 밴드 드럼라인이 마칭 연습 도중, 잠시 쉬고 있다. 정답) 한 명 ^^
사진 속 여학생은 모두 몇 명일까? 지난 8월 여름 방학 때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해리슨버그 고등학교 마칭 밴드 드럼라인이 마칭 연습 도중, 잠시 쉬고 있다. 정답) 한 명 ^^존 몬로

"살면서 가슴 후련한 일 별로 못 겪어 봤는데 기자님 글 보고 속이 확 트이네요. 그런데 이게 교육청에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이런 기사 많이 써주세요. 그럼 교육청이나 학교도 긍정적으로 바뀔 거예요. 당신 같은 사람이 많이 있으면 좋겠네요."

"님, 우리 학교 와 주셈. 저는 OO고 3학년 8반 OOO임당. 님 좀 짱인듯!"

두발 단속에 관한 내 기사가 이렇게 뜨거운 반향을 불러 일으킬 줄 몰랐다.

조회수 59만7279, 댓글 4768개, 쪽지 20건(30일 현재).

중고등학생들과 부모들의 불만도 많고, 두발단속과 관련해 명백하게 '인권침해'라고 볼 만한 학교 측의 처사를 고발하는 학생들의 증언도 줄을 잇는다. 어떻게 21세기, OECD에 가입한 선진국 대한민국에서 이런 야만적인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놀랍기만 하다. 


"저는 공부 잘 하는데도 머리 자르라는 선생님 말씀에 반항하다가 눈썹까지 밀렸습니다. 눈썹도 안 자라고 있어 속상합니다…. 머리 자르라고 해서 아예 삭발을 하면 또 삭발했다고 징계 먹입니다. 길어도 난리, 짧아도 난리입니다."

"중학교 때는 두발이 거의 자유였는데 현재 재학중인 ㅎ고등학교는 두발 제한이 있습니다. 저는 중3 때 염색을 해서 머리가 갈색이었고 길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등교 첫날, 담임선생님께 불려가 머리를 자르고 검은색으로 염색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다음 날까지 그렇게 안 하면 엄마를 학교에 불러 오랍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너 머리 꼬라지를 보니 중학교 때 어떻게 생활했는지 불 보듯 뻔하다'고 하시더군요. 또 '머리 자르기 싫으면 자퇴를 하라'는 말씀도 하셨죠. 대체 머리와 공부가 무슨 상관이죠? 저는 중학교 때 반에서 5등을 벗어나 본 적이 없습니다.

결국 집에서 울면서 머리를 잘랐습니다(야자를 빼주지 않아 늦게 끝나는 바람에 모든 미용실이 문 닫음). 태어나서 그때만큼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머리를 자르지 않으면 부모님을 소환한다고 해서 입학하자 마자 이런 일로 부모님을 오시게 하는 게 너무 싫어 속상해 하실 엄마 얼굴을 떠올리며 집에서 가위로 잘랐어요.

다음 날, 담임선생님께서는 머리를 잘랐으니 이번에는 야자를 빼줄 테니 검은색으로 염색하고 오라고 했습니다. 미용실에 가서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죠. 고등학교는 어떨까, 선생님은 어떤 분일까, 이런 설렌 마음으로 등교했던 제가 멍청했던 거 같습니다. 이런 지옥 같은 곳엘 오면서 설레는 마음을 가졌었다니….(고1 여고생)"

눈썹을 자른 선생님, 검정색 염색을 강요한 선생님. 기다릴 수는 없었을까? 어떻게 학교에서 이런 야만적인 행동이 벌어질 수 있었을까? 

학생은 학생답게 머리를 자르라고?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한 고등학생. 학교 주차장에서.
독특한 머리 모양을 한 고등학생. 학교 주차장에서.한나영

내 기사에 대한 댓글이나 쪽지를 보면 두발 단속을 반대하는 독자가 훨씬 많다. 하지만 찬성한 독자들도 적지 않았다.  

"제 생각은 어른은 어른다워야 하고 학생은 학생다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어느 정도 규제는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23살 대학생입니다. 중학교는 가운데 중(中), 고등학교는 높을 고(高)를 쓰고 있는데 중고등학생들은 이제 어른이 되어 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학교에 염색을 하고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니면 뭐라고 하겠습니까? 다른 나라랑 비교하지 말고 여긴 우리나라입니다. 우리나라 법에 따라야죠. 그리고 요즈음 두발자유화가 거의 되어서 여자들도 길고 남자들도 길던데 단정하게 잘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학생들은 한눈에 봐도 학생인 것을 알아야 담배를 안 팔던가, 술을 못 마시게 하던가 보호를 해줄 수 있는 거 아냐. 그리고 학생시기에 학교에서 규칙으로 정한 것도 지키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 커서 뭘 할 수 있겠냐."

이들의 주장은 학생은 '학생답게' '단정하게' 머리를 잘라야 한다는 것이다. 한 눈에 학생 표시가 나도록 말이다. 또, 머리를 자유화하면 학생들이 파마나 염색을 해서 결국 탈선이 늘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하고 있다.

과연 그럴까. 여기서 잠시 의문이 생긴다. 이들이 주장하는 '학생답게' '단정하게'라는 말은 무슨 뜻일가. 무엇이 '학생다운' 모습일까. 머리가 길면 학생답지 않은가. 파마를 하면, 염색을 하면 학생다워 보이지 않는가. 단정하게 보이지 않는가. 머리에 대한 편견일 뿐이다.

그나마 착한 우리나라 학생들은 파마나 염색 따위를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길이만 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소박한 요구를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마저 못 들어준다고?

선생님들이여. 당신들의 청소년 시절, 자와 가위를 들이대던 교사에 대한 분노와 굴욕을 기억하는가. 그 분노와 굴욕을 수십 년 지난 오늘날까지 학생들에게 대물림하고 싶은가. 제발 그러지 마시라.

머리 자유화= 탈선의 온상? 천만에

두발 단속을 찬성하는 사람들의 논리는 이것이다. "두발 자유화를 하게 되면 아이들과 어른들의 구분이 없어져 아이들이 유흥업소에 마음대로 출입하게 될 것이고 이는 결국 청소년 탈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과연 그럴까. 두발 자유화가 되었다고 우리 청소년들이 모두 머리를 기르고 유흥업소로 달려갈까.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가 될 것 같은가. 그렇게 생각할 만큼 우리 아이들을 믿지 못하는가.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듯 그렇게 허약하지 않다. 아이들? 믿는 만큼 자란다. 

생활지도 외에 두발 단속의 또 다른 명분인 공부만 해도 그렇다. 머리가 길면 왜 공부를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가. 학생들 얘기에서도 나오듯 일부 외고나 예고에서는 이미 두발 자유화가 실시되고 있다. 그런데 그런 학교에 탈선 학생이 많았다는 근거 있는 자료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학생들의 숨통을 막으려고 하는가. 저들이 그토록 두발 자유를 원하고 있는데 말이다. 제발 학생들 머리 좀 내버려 두면 안 될까.

외제차를 수입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외제차 굴리고 다니지 않듯 두발 자유화를 실시한다고 해서 모든 학생들이 지금 어른들이 우려하고 있는대로 요란한 머리를 하고 탈선 현장으로 나가지는 않는다.

유흥업소 출입은 신분증을 철저히 조사하면 된다. 이곳 미국에서도 월마트 등에서 술을 사려고 할 때, 또는 나이트 클럽 등에 들어가려고 할 때 사진이 붙은 신분증을 요구한다. 그래서 미성년자에게는 절대로 술을 팔지 않고 클럽에도 들여보내지 않는다.

저마다 다른 아이들 개성 존중해 줘야

 지난 번 미국 동부에 눈이 많이 왔을 때 작은딸 친구가 만든 눈사람. 양 팔로 머리를 들어올린 모습이 특이하다. 나라면 이런 눈사람 절대 만들지 못할 것이다. 교육은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것!
지난 번 미국 동부에 눈이 많이 왔을 때 작은딸 친구가 만든 눈사람. 양 팔로 머리를 들어올린 모습이 특이하다. 나라면 이런 눈사람 절대 만들지 못할 것이다. 교육은 다양성을 존중해 주는 것!한나영

한국에서 문제아로 찍혔던 한 여학생을 잘 안다. 그 아이는 그림을 전공하고 싶어했다.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이는 남들과는 좀 다르게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규율이 있었지만 그 규율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 머리 모양도 좀 다르게 하고 싶었다. 억지로 입어야 했던 교복도 그렇고. 바로 이 점 때문에 아이는 문제아로 낙인 찍혔다. 

학교에서 문제아가 되어버린 아이는 선생님한테 관심을 받지 못했고 부모로부터도 눈총을 받았다. 아이의 얼굴은 늘 어두웠고 눈빛도 반항기가 가득했다.

학교와 가정에서 모두 천덕꾸러기 취급을 당했던 아이는 마지막 탈출구로 유학을 생각했다. 다행히 경제적인 여력이 있었던 부모는 문제아 딸을 미국으로 보냈다. 이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아이는 머리 모양도 제 마음대로, 옷도 제 취향대로 고쳐서 입었다. 활활 날개를 단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마친 아이는 디자인으로 명성이 높은 한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지고 태어난다. 똑같은 모양의 쿠키를 찍어내는 쿠키 커터로 빚어진 게 결코 아니다. 각자 다른 개성을 가진 아이들, 이들 하나 하나를 존중해 줄 수는 없을까. 천편일률적인 '귀 밑 몇 센티' 따위 강요하지 말고 말이다. 아이들은 우리의 미래다. 가능성이고.
#학생인권조례 #두발단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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