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키메라 만주국의 초상>
소명출판
박정희와 최규하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전직 대통령에다 만주국에서 활동했다. 한 사람은 만주국 군인으로, 또 한 사람은 만주국 관료로 활동했다. 이와 같은 행적이 있었기에 두 전직 대통령 모두 친일인물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을 친일인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한 반발 또한 만만치 않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우, 아들 박지만씨가 직접 나서서 "아버지는 일본군과 무관한 만주국군 용병에 불과했고, 마오쩌뚱 부대를 주적으로 활동했으니 독립군에 위해를 가한 적이 없다"며 <친일 인명사전>에 실어서는 안 된다고 가처분신청을 냈다.
최규하 전 대통령의 경우, 원주 지역을 중심으로 기념관 건립이 추진되면서 친일 행적을 둘러싼 갈등이 빚어졌다. "그의 친일 행적이라는 것이 조선 총독부와 무관한 만주국 관료였기 때문에 친일 인물로 분류하는 건 지나친 일"이라며 기념관 건립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야마무로 신이치가 저술한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을 통해 그 답을 찾아보자.
국민 없는 병영 국가1932년 3월 1일 홀연히 등장해서 1945년 8월 18일 황제 푸이의 퇴위 선언과 함께 사라진 만주국 존재 기간은 13년 5개월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 기간 만주국 내부에서는 생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처참한 상황이 지속됐다. 만주국의 '비적 토벌'을 노래했던 일본인들의 글은 그 참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끝까지 쫓아가 찌른 토비의 피 솟구치는 얼굴아직 어린 티가 눈 속 깊이 남아 있네. 선연한 피에 젖은 손으로 모래를쥐고 있구나. 죽어가는 지나 병사 비적 토벌 재미있다는 편지 보내온전장의 친구에게 마음이 미치네. (책 속에서)
아직 어린 티가 가시지도 않은 소년의 국적은 어디였을까. 만주국 영역에 살고 있지만 만주국 통치에 저항하다 죽어갔다. 중국인이었을까. 만주족이었을까. 아니면 조선인이었을까. 그들은 무엇 때문에 저항했을까. 자신들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싸웠던 것일까. 아니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것일까. 그들의 국적이 어디였던 간에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자신의 삶의 터전을 빼앗은 일본에 저항, 즉 항일 투쟁을 했다는 점이다.
일본은 그들 모두를 '비적' 또는 '토비'라 불렀다. 그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모두 죽여 없애야 하는 토벌의 대상일 뿐이었다. 만주국에서 그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던 군대가 만주군이었다.
삼광 정책을 통해 유지되던 만주국중국에서는 만주국이 채택한 정책을 총괄해서 삼광(三光)정책이라 표현한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살광(殺光 : 다 죽인다), 창광(搶光 : 다 빼앗는다), 소광(燒光 : 다 태운다)이고, 경제적 측면에서는 수광(搜光 : 다 찾는다), 괄광(刮光 : 다 짠다), 창광(搶光 : 다 빼앗는다)란 뜻이다.
일제의 지배를 강조하기 위한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만주국에서 생활했던 일본인의 눈에 비친 주민들의 삶은 삼광 정책이 과장된 표현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관동 지역 헌병대 헌병이었던 쓰치야 요시오의 증언을 살펴보자.
돌아오는 길에 캉안(庚安) 경찰서에서 일제 경찰관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그런 건 여기서는 조금도 드문 일이 아니에요. 이 근처 마을에서는 갓 태어난 아기를 소쿠리 속에서 발가벗겨서 키우고 있지요. 그것도 한두 사람이 아니죠. 많아요 … 조사 결과 그 땅은 그나마 적은 편이고 리허성의 장성선(長城線) 부근에서는 주민들 대부분이 벌거숭이나 마찬가지로 생활하고 있지만 손을 댈 수가 없다…. (책 속에서)위 상황이 전개되던 시기가 한 여름 폭염 속이 아니다. 영하 3,40도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사는 사람들 이야기다. 그들이 옷조차 제대로 입지 못하고 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만주국을 지배하던 일본인들의 삼광 정책 때문이었다고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의 저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밝히고 있다.
만주국 군인들이 항일 투쟁을 하던 사람들을 비도로 몰아 토벌하는 데 주력했다면, 만주국 관료들은 만주국 관할 내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의 재물을 샅샅이 뒤져 빼앗아가는 역할을 담당했다.
만주국의 실체, 그리고 친일 인물들저자 야마무로 신이치는 만주국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괴물 키메라에 비유했다. 관동군으로 상징되는 사자 머리, 천황제로 미화되는 양 모습 몸통, 머리와 몸통에 의해 끌려다니는 용 모양(중국 황실) 꼬리.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만주국은 철저히 일본의 의도에 의해 유지된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13년 5개월간 유지되다 사라졌지만 만주국은 동북아 각국에 지울 수 없는 많은 흔적을 남겼다. 731부대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죽어갔던 많은 사람들, 비적이란 이름으로 토벌되어 죽어간 많은 생명들. 강제 동원에 의해 전쟁터로, 광산으로 공장으로 군 위안소로 끌려갔던 사람들….
만주국의 군인으로 관료로 활동했던 사람들도 있다. 박정희, 최규하, 강영훈, 민기식 등등. 이들은 해방 후 대한민국의 정계 요직을 두루 차지했던 인물들이다. 이들도 수탈과 토벌의 대상이 되어 희생된 사람들처럼 만주국의 또 다른 피해자들이었을까.
이들의 과거를 냉정히 되짚어보기 위해서 만주국의 실상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왜 그들을 친일 인물로 분류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키메라 만주국의 초상>이 제대로 설명해준다. 일본인의 눈으로 바라본 만주국의 모습이지만, 이 책은 독자들에게 참담하지만 꼭 기억해야할 과거의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