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실제로 제로(0) 수준의 성장으로 겨우 역성장을 피한 것에 비춰보면 2010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는 가히 놀라운 수치다.
새사연
지난해 성장이 멈춘 탓에 2010년에 5퍼센트 이상 성장을 해도 3년 동안 연 평균으로는 2.5퍼센트 안팎의 성장에 그치기 때문에 낙관적 전망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또 2009년의 낮은 성장률에 대한 기저효과에 불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세계 경제를 대침체로 몰아넣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심각한 충격을 고려한다면 놀라운 회복 속도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위기 극복을 넘어 성장세로 돌아서기 시작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2010년을 넘어 2011년에도 5퍼센트 안팎의 성장을 할 것이라는 발표를 봐도 이런 분위기는 분명하다.
특히 한국은 '위기극복의 모범사례'로 꼽히면서 안정적 회복과 성장세로의 전환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으며, 11월 G20정상회의 개최와 맞물리면서 '선진국으로의 진입'을 이야기하는 분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을 정도다. 정부도 2010년 방향을 '성공적인 위기극복'과 '성장기반 확충'으로 잡고 있다. 그렇다면 진정 한국은 금융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킨 최대 수혜국가가 되면서 회복을 넘어 선진국 진입의 기회를 잡은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의 상황은 성장률 지표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든 비관적으로 전망하든 큰 의미가 없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성장률 전망치가 4퍼센트든 5.5퍼센트든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는 뜻이다. 확률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경기가 상승 추세로 갈 요인과 하락으로 빠질 요인을 모두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확률 차이 역시 무수하게 많은, 통제 가능하거나 불가능한 국내외적인 경제 변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예를 들어보자. 대부분의 한국경제 전망치는 세계경제가 2009년 마이너스 성장을 벗어나 2010년에는 대략 3퍼센트 안팎(IMF 3.1퍼센트, OECD 3.4퍼센트) 성장을 한다는 가정 아래 출발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상업용 부동산 부실과 민간소비의 회복 부진, 아시아의 자산버블 위험성, 유럽의 국가부채, 일본의 디플레이션 위협 등 세계경제에는 안정적 회복을 낙관할 수 없는 너무 많은 위험요소들이 산재해 있다. 세계경제의 평균적 회복을 가정하기 위해서는 이들 위험요소들이 현재화되지 않거나 관리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글로벌 경제의 3퍼센트 안팎 성장→ 한국의 수출증가율 두 자리 수 기록→ 한국경제 5퍼센트 성장>이라는 도식이 확립되는 것이다. 그러나 전제가 무너지면 전망치도 당연히 수정되어야 한다.
국내 경제 변수도 마찬가지다. 경제성장에 영향을 주는 주요 변수인 환율은 1000~1200원 사이에서 움직이고 유가는 70~80달러로 예상되며, 주가는 완만하지만 상승세를 유지하고 부동산 가격도 안정화될 것이라는 가정 아래 성장률을 전망하고 있다. 이슈가 되는 기준 금리 역시 현재의 2퍼센트 수준에서 2010년 금융통화위원회가 금리 인상을 단행하더라도 대략 +1퍼센트포인트 범위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라는 기대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이나 전망은 2009년 하반기 추세를 단순하게 연장한 것에 불과할 뿐 과학적으로 계산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특히 2009년 하반기의 각종 지표들은 시장의 자연스런 균형에 의해 형성된 수치가 아니라 각국 정부의 인위적 개입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지난 2년간 원-달러 환율은 900~1600원 사이를 큰 폭으로 움직였고 유가 역시 30~145달러를 오가는 엄청난 진폭을 보인 바 있다. 주가도 마찬가지다. 저점일 때 주가는 1000포인트 밑으로 떨어졌으며 고점 기준으로 1800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지난 2년간의 경험으로 볼 때 2010년의 각종 기초 지표들이 안정적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예상은 문자 그대로 '기대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정부를 포함해서 각 기관들이 내놓는 2010년 성장률 전망치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경험적인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불확실성과 변동성이 큰 시기에는 시장의 균형을 가정하여 추산하는 주류 경제학의 전망치들이 전망이라고 부르기에 무색할 정도로 예측을 빗나갔던 사례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당장 2008년 경제 전망들은 평균 2.8퍼센트(포인트) 이상 실제 결과와 편차가 생겼고, 2009년에는 무려 3.5퍼센트 정도의 편차가 발생했다. 이 정도면 '하나마나한 전망'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 2010년 경제 성장률 전망치도 기관에 따라 최소 4.3퍼센트에서 최대 5.5퍼센트로 전망하고 있어 편차가 무려 1.2퍼센트에 이르고 있는 지경이다. 일부 민간 연구자들은 3퍼센트 정도를 예측하고 있으니 이를 포함한 편차는 2퍼센트를 넘어 버린다.
결국 2010년 한국 경제를 전망하는 데서 확실한 것이 있다면 오로지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뿐이다. 따라서 2010년 우리 경제를 전망하는 첫 번째 핵심은 성장률, 소비, 투자, 수출 증가율이 얼마인가에 경마 내기 걸듯 '점을 치는' 것이 아니라, 과연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은 무엇이며 그 불확실성을 통제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철저히 분석하는 것이다. 보수는 경제 성장을 낙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진보는 비관적으로 인식한다는 따위의 단순 도식에 얽매일 시기는 더욱 아니다.
즉, 2010년 한국경제는 '선진국 진입'은 고사하고 단순히 '위기 탈출 후 성장궤도 진입'도 아니며, 정확히는 불확실성을 통제와 관리가 가능한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위기관리 체제'의 연장이며, 구조개혁을 통해 '위기의 구조적 해결을 모색'해야 하는 시기라고 보아야 한다.
언제까지 시장 추이를 지켜봐야 할 것인가그렇다면 이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해 볼 수 있다. 어째서 경제성장을 전망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로 심각한 불확실성이 경제를 지배하고 있을까. 경기 변동기의 불가피한 경제의 내재적 특성인가. 그렇지 않다. 경제 역시 사람들이 행하는 생활과 사회적 활동의 산물이며 당연히 경제활동 주체인 사람들의 예측범위와 통제 범위 안에 들어와야 한다. 불확실한 경제 현상이 사람들의 활동을 지배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근본원인은 '시장의 추이'를 도대체 알 수 없다는 데 있다. 경제의 주요한 결과가 시장에 의해 결정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시장이 사람들의 기대와 달리 전혀 합리적으로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신자유주의 자유화, 개방화로 인해 글로벌 시장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단순히 국내시장의 불확실성을 넘어 글로벌 시장 불확실성이 예측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몇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우선 자본시장이 그렇다. 흔히 주식시장은 실물경제, 또는 기업실적을 반영한다고 알려졌고 실물경기를 앞서서 반영하여 주가가 움직인다고 믿었다. 때문에 경기 전망을 할 때에는 늘 주식시장 동향을 주시하게 되고 주가 전망이 대단히 중요한 경제 예측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의 현실은 전혀 달랐다.
2009년 한국의 증시는 연초 대비 50퍼센트 이상 급등했다. 물론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엘지 등 시가총액 비중이 높은 유력 대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선전한 덕분에 이들 주가가 신고점을 갱신하면서 주가 상승을 주도한 측면은 있다.
그러나 한국의 증시가 온전히 한국의 실물경제 회복을 반영하여 움직였다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변수는 연간 32조 원을 순 매수한 외국인의 매매 동향이었다. 반대로 국내 투자자들은 이어지는 펀드 자금 유출로 기관들이 26조6000억 원 이상 순 매도를 지속했고, 개미들의 매수 여력도 극히 부진한 상황에서 거래량이 반토막 난 가운데 외국인 매매 동향이 한국 증시에 절대적인 영향을 준 것이다. 한국의 자본시장은 국내 자본시장 자체의 불확실성은 물론 세계화된 자본시장에서 외국인이라는 예측하기 어려운 외부 변수가 시장 동향의 결정적 요인이었던 셈이다.
2010년 역시 10조 원 규모의 생명보험사 신규 상장을 포함하여 대규모 기업 공개가 예정되어 있고, FTSE지수 편입에 이은 MSCI 선진 지수 편입 등의 요인들이 있지만 여전히 결정적 변수는 외국인의 매수 추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의 매수 추이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의 경제 상황에 비추어 거의 불가능에 가깝지만 실제 이들의 움직임은 한국 자본시장 자체의 판도를 뒤흔들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하다. 한국경제를 전망하는 데서 글로벌 달러 캐리 트레이드의 급격한 청산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는 것도 이것이 외국인들으로 하여금 한국의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에서 급격히 자본 유출을 감행할 핵심 동기가 되기 때문이다.
상품 판매시장은 또 어떤가. 한국경제는 내수에 비해 수출에 의존하는 경향이 외환위기 이후 더욱 커졌다. 2008년 기준 무역 의존도(상품교역량/경상GDP) 92.3퍼센트는 중국의 58퍼센트는 물론 독일의 74.8퍼센트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내수에 의한 기초적인 국민경제 안정성을 보장 받는 측면은 극히 취약한 반면, 글로벌 수출시장의 동향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글로벌 경기침체와 소비 위축으로 글로벌 판매시장을 예측하는 것 역시 대단히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나마 2009년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 충격을 받지 않은 한국의 유력 대기업들이 환율 효과를 등에 업고 글로벌 시장에 상대적으로 선전했고, 자동차 세제 혜택과 같은 각국 정부의 세제 지원에 힘입어 매출을 확대할 수 있었기 때문에 -20퍼센트 수준으로 추락하던 수출을 2009년 11월부터 플러스로 돌려세울 수 있었다. 특히 끝까지 마이너스 증가에 머문 미국, 일본, 유럽 수출 부진을 단번에 만회한 대 중국 수출 호조는 중국 수출 비중이 24퍼센트까지 늘어난 덕분이었다.
그러나 2010년은 대부분 국가에서 세제 지원이 종료될 전망이고 글로벌 금융위기 충격을 받았던 경쟁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다시 시장 경쟁에 뛰어들고 있으며, 한국 기업들의 우호적 수출 환경에 결정적 영향을 준 환율효과는 크게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제대로 된 경쟁 구도가 펼쳐질 2010년 상품 판매시장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글로벌 소비 위축과 과잉생산 체제 사이의 간격을 한국 기업들이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를 예측하는 것은 어려울 수밖에 없다.
더욱 심각한 것은 한국 증시가 외국인들에 의해 움직이다 보니 주가 추이를 전망하는 것은 일부 대량 주식 보유자들에게는 자산가치 상승 여부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가 될 수는 있으나 국내의 실물경제를 선행적으로 알아보는 지표가 되기는 어렵다는 사실이다. 또한 수출 추이를 분석하는 것 역시 일부 대기업과 직간접 하청 기업 실적을 예상하는 지표로 활용될 수는 있으나 내수와 고용 동향과의 관련성이 갈수록 줄어들고 있어 가계와 중소기업 등 국내 주요 경제 주체들의 전망과는 점점 더 큰 괴리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심각한 문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 전망들은 이처럼 확실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시장 추세'를 분석하고 예측하는 데 힘을 쏟는다. "시장이 결국은 다시 균형을 찾을 것이고 경기가 회복세를 타게 되면 시장의 선순환 구조가 형성될 것"이라는 시장 지상주의 패러다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에 대한 신뢰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장 추세를 여러 가지로 분석하고 그에 기초하여 경제정책을 운용하려는 모든 노력들은 시장이 비합리적으로 움직이고 예측 가능하지 않는 범위에서 작동한다면 모두 쓸모없는 행위들이다.
"미국 발 경제위기는 기존 경제학의 기본 가정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음을 보여줬다"며 "시장이 효율적이라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도 수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스티글리츠 교수의 주장에서 문제의 핵심을 찾아야 하는 이유다. 결국 지금은 시장 추이에 대해 끝없이 복잡한 시나리오를 작성하면서 언젠가 시장 기능이 정상적으로 복원되기를 기대할 시점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근원'이 되고 있는 시장을 통제 가능하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한 '시장 개혁'을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장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을 죄악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장에 내맡기는 것을 무책임하다고 비판해야 할 시점인 것이다.
방향 없는 MB노믹스, 말잔치로 끝날 출구전략그렇다면 '불확실성의 시기'인 2010년을 맞아 우리 정부는 어떤 경제정책 운영방향을 가지고 있는지를 짚어봐야 한다. 왜냐하면 2009년에 이어 2010년에도 한국경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경제주체는 당연히 정부가 될 것이기 때문이고 시장을 통제 가능한 범위로 끌어들일 주체도 정부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것처럼, 2009년 경기 추락을 막고 인위적으로 회복세로 돌려세운 것은 정부의 금리 인하와 구제 금융 그리고 대대적인 경기부양책 등이었다. 한국 정부는 2008년 대비 17퍼센트 이상 늘어난 301조 원의 재정과 기금을 동원하여 경기지표를 반전시켜냈고, 경제성장률을 1.5퍼센트 이상 끌어 올림으로써 역성장을 피해갔다.
특히 한국정부는 단기적으로 외형지표를 끌어올릴 수 있는 건설, 소비, 고용 부문에 대해 집중적으로 재정을 투입함으로써 단기실적의 성과(?)를 달성했으며, 여기에 실속 없는 포장에 불과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중도실용 - 친서민' 정책을 적절히 병행하는 민첩성을 보였다. 나아가 국내적 실적을 바탕으로 G20 정상회의 유치와 같은 글로벌 행보를 통해 한국경제의 위상 제고라는 실적을 쌓음으로써 지난해 연말을 기준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 50퍼센트라는 정치적 실적까지 달성하게 된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2009년 시행한 경제회복 정책들은 구조적 차원의 성장기반 확충이라기보다는 대부분 단기 실적주의에 근거한 것이어서 지속성을 갖기 어렵다는 본원적인 문제가 있다. 정부가 발을 빼는 순간 실적은 곧바로 멈추게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지자체 선거가 있는 2010년 6월까지는 2009년 식의 경기 부양 기조를 최대한 연장하려 하고 있다. 2009년 연말에 192조 원의 예산을 강행처리하고 2010년 상반기에 전체 예산의 60퍼센트 이상을 지출하겠다고 발표한 것만 봐도 이는 분명하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경제운용 기조는 두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첫째는 정부가 2010년 상반기에도 2009년과 같은 단기실적 위주의 경제 운용을 한다고 하더라도 2009년 하반기와 같은 성장 탄력을 유지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사실이다. 2009년 2분기부터 V자 회복곡선을 보이며 빠르게 반전하던 경기 회복기조는 4분기에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상당히 둔화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점이 이를 예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