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31일 저녁 광우병위험 미국산쇠고기 수입반대 및 재협상을 촉구하는 24차 촛불문화제가 열릴 예정인 가운데 낮 부터 수천명의 네티즌들이 서울광장에 모여 '이명박 탄핵'을 외치고 있다.
권우성
하지만,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후유증을 안겨줬던 사건의 '변주곡'이 우리와 그다지 멀지않은 대만에서 다시 울려 퍼졌는데 사건이 어떻게 전개됐는지 한번쯤 들여다볼 필요는 있지 않을까?
얘기를 정리하면 이렇다.
작년 10월23일 대만 위생서(우리나라로 치면 보건복지부)는 월령 30개월 미만의 미국 소에서 나오는 뼈 있는 쇠고기와 내장, 척수 등을 수입하는 의정서에 서명했다. 대만 정부는 2006년 이래 미국산 뼈 있는 쇠고기의 수입 금지 방침을 유지해 왔는데, 그러한 방침을 갑자기 바꿔버린 것이다.
여론이 악화된 것은 대만 정부가 2008년 한국이 미국과의 추가협상에서 얻어낸 것보다 못한 조건의 협상을 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 월령 30개월 미만의 쇠고기라도 뇌·눈·척수·머리뼈 등 4개 부위는 수입자가 주문하지 않았다면 검역 과정에서 반송하도록 했지만, 대만의 경우 뇌와 척수까지도 수입을 전면 허용했다. 20개월 미만 뼈 없는 쇠고기만 수입하는 일본의 사례도 대만 정부의 굴욕 협상에 대한 국민감정에 불을 지폈다.
협상 내용보다 국민들을 더 격분시킨 것은 협상 과정이었다. 야당인 민진당은 "2006년 1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조건을 완화하기 전에는 정부가 입법원과 협의하고 재가해야 한다는 결의안이 통과됐다"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작년 11월14일에는 정부의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도 수도 타이페이에서 열렸다. 온라인 사진공유 커뮤니티 사이트 '플리커' 회원들이 시위에 대거 참여한 것은 우리나라 누리꾼들의 오프라인 활약에 비견된다.
대만의 영자일간지 <타이페이 타임즈>가 다음날 조간신문에 보도한 현장의 발언들을 음미해보자.
"정부는 국민이나 야당, 입법원(국회)과 이 문제를 전혀 논의하지 않았다. 우리는 정부가 미국과 합의에 이른 후에야 이런 사실을 알았다. 이는 민주주의와 투명성 원리를 저해하는 것이다. 정부가 재협상을 안 하겠다면 그들이 물러나고 우리가 해야할 것이다." (야당 민진당의 차이잉원 주석)"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도 걱정되지만 정부가 국민들에게 먼저 알리지 않고 의정서에 서명한 것이 더 화가 난다. 정부가 미국으로부터 얻은 반대급부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 (림정첸, 32세)"나는 살만큼 살아서 광우병에 걸리든 말든 상관없다. 하지만 내 손자들을 위해 시위에 참여했다." (익명의 50대 여성)"나는 마잉쥬 총통의 열렬한 지지자다. 하지만 옳고 그른 것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그가 잘못하는 것을 못본 체 할 수 없다." (탕 가오슈안펭)여론이 들끊는 동안 대만 정부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잉쥬 총통은 10월 28일 국민당의 중앙선거단 발족식에서 "국민의 건강 보호가 정부의 가장 중요한 목표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어떤 국가와도 협상하지 않는다"고 말문을 열었는데, 이는 "어느 나라가 자기 국민에게 해로운 고기를 사다 먹이겠냐"(2008년 5월8일)고 한 이명박 대통령의 수사와 놀랄 만큼 흡사하다.
"이미 협의가 완료돼 재협상이 어렵다. 검역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양츠량 대만 위생서장(11월2일 기자회견)은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을 그토록 강조하던 우리나라 관료들의 모습을 그대로 판박이한 것 같다.
마잉쥬 총통과 이명박 대통령 발언이 비슷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