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참사범대위는 30일 낮 용산구 남일당 빌딩앞에서 긴급기자회견을 열어 '용산 참사 유가족이 정부와 협상을 사실상 타결했다' '철거민 희생자들의 장례식은 1월 9일 치르고, 정운찬 총리가 책임을 인정하고 유가족에게 유감을 표명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기자회견이 진행되는 동안 사망한 남편의 영정사진을 껴안고 있는 유가족들이 오열하고 있다.
권우성
그들은 얼마나 추웠을까?미흡한 결과를 두고 유가족들은 '반쪽의 합의'라고 평가했습니다. 맞습니다. 용산참사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산 중에 우리는 장례를 지내기 위한 첫 번째 작은 산을 넘었을 뿐입니다. 유가족들이 사계절 동안 상복을 입고 지내는 일은 끝내야 하는 상황을 맞아 부족하기 이를 데 없지만 장례를 지내야 할 때입니다. 이제 고인들을 평안히 쉴 수 있도록 보내 드리고 남은 과제들일랑 산 자들이 자신의 몫으로 짊어지고 나가야 합니다.
용산참사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허상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국가폭력은 가난한 사람들, 힘없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소수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진행되는 재개발을 포함한 개발에 우리가 저항해야만 한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에는 공분하고 애도하지만, 살인적인 재개발 사업에는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는 이중적인 태도를 갖는 대한민국의 현실은 마음 놓고 용산참사로 돌아가신 분들을 애도할 수 없도록 해왔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진상규명-책임자 처벌과 더불어 잘못된 개발정책에 저항하면서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공동체를 건설할 과제를 짊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용산참사는 용산만의 문제가 아니고, 철거민들만의 문제가 아닌 보편적인 과제로 등장했던 것이고, 그런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종교인들과 문화예술인들, 시민들을 모아냈던 것이라 봅니다.
지난 1년 가까운 세월, 우리는 절망하기도 했지만 희망을 보기도 했습니다. 용산범대위는 조직적 역량은 많이 부족했지만, 진보운동이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전쟁 같은 현장을 지키면서, 추모제도 삼보일배도 일인시위조차도 불법화하고 탄압하는 정권에 맞선 힘겨운 투쟁을 지속해왔습니다. 신부님들조차도 폭행당하는 폭력상황이 이어졌지만, 우리는 이겨냈습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가 있기에 가능했습니다. 성금과 물품을 보내주고, 현장을 찾아주고, 미사와 추모제에 참석해주었던 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너무도 감동적인 아름다운 연대를 만들어냈습니다. 정부의 공안탄압으로 위축된 조직운동, 그리고 촛불마저도 희미한 불꽃을 이어가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었던 용산의 힘은 이름 없는 이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신부님들을 비롯한 종교인들은 사람 생명이 죽어간 현장에서 생명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성찰의 장으로 바꾸었고, 문화예술인들은 참혹한 죽음의 현장을 저항의 문화예술공간으로 바꾸어냈습니다.
이런 힘들이 흩어지도록 놔둘 게 아니라 이후에도 같이 힘을 모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내야 합니다. 장례를 지내는 것으로 용산참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라는 점을 우리는 이번 장례에서 같이 확인하고, 결의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지 끝을 보겠다는 의지를 갖고 국가폭력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진상규명-책임자 처벌을 이뤄내야 합니다.
재개발 문제에 대한 연구와 정책과 담론의 개발을 통해 제도와 법을 바꾸어내는 일도 우리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내야 합니다.
발이 묶인 저의 마지막 부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