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150배 차별..."그래도 우리대학 강사는 최고 수준?"

[보따리강사 이야기 25] 영남대 시간강사 파업 20일, 무얼 남겼나

등록 2010.01.13 11:23수정 2010.01.13 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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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탄압에도 성적입력거부 단체행동에 함께하신 동지들 정말 고맙습니다. 2010년 1월 11일 9시에 영남대학교 교섭이 타결됐습니다."

영남대 시간강사들의 파업이 20일 만에 마무리됐음을 알리는 이 대학 비정규교수노조 측의 공지문이다. 11일 영남대와 이 대학 비정규교수노조 측은 시간강사들의 강의준비금(교재연구비)을 기존 5만원에서 8만원으로 인상, 교내 공동연구실 추가 확보, 강의료 동결 등에 합의함으로써 강사들의 성적입력 거부사태는 일단 마무리됐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 영남대분회(분회장 하재철)는 이날 "2009년 단체협상에 합의, 체결식을 가졌다"며 "체결식 후 곧바로 성적을 입력하기 시작해 오후 4시 현재 입력이 완료되었다"고 밝혔다. 이어 12일에는 "천막농성투쟁 해단식을 했다"는 내용을 노조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영남대 시간강사들, '성적입력 거부' 초유카드 내걸고 파업... 왜?

파업 출정식에 앞서...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가 지난해 12월 8일 파업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파업 출정식에 앞서...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가 지난해 12월 8일 파업에 앞서 기자회견을 가졌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

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는 지난해 12월 총 조합원 398명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 결과 217명이 투표에 참가, 207명(95.39%)이 파업에 찬성해 단체행동을 벌여 왔다. 이 대학 시간강사들은 크리스마스 직전인 지난해 12월 23일 초유의 '성적입력 거부'라는 카드를 꺼내 들고 파업에 돌입했다.

학기 내내 강단을 지켜왔던 강사들이 학교에 천막을 치고 풍찬노숙하며 파업을 벌인 것이다. 조합원들은 학생들 채점과 성적입력을 중단해 곱지 않은 주변의 시선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하재철 분회장은 "19차례에 걸친 교섭에서 노조 측의 많은 양보에도 불구, 학교 측이 임금동결을 고수하며 불성실하게 협상에 임해 파업을 결의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말이 20일이지 학교 측과 팽팽히 맞선 채 살얼음 걷듯 한 해를 넘긴 2년여에 걸친 긴 투쟁 기간이었다. 이 대학 강사들에겐 다시 없이 소중하고도 힘든 시간이었을 것이다. "단체행동을 벌여 온 20일 동안 학교와, 학생들의 따가운 눈총, 주변의 냉소가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존재였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는 한 강사의 푸념에서 대학사회의 비정함이 묻어난다.


이 대학 강사들에겐 방학 노이로제가 유독 심하다. 지난해 여름방학, 강사 100명을 해고해 시간강사들의 1인 시위로 주목을 받았던 영남대가 다시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시간강사들이 세찬 눈보라 속에서 파업을 함으로써 거듭 진통을 겪고 있다. 

일단 사태가 수습됐지만 후유증은 아직도 곳곳에 남아 있는 듯하다.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는 지난해 6월부터 대학 측과 끈질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을 벌여온 터다. 협상은 이뤄졌지만 시간당 강의료 1만1천원 인상, 강의준비금 5만원 인상 등 노조의 요구를 대학이 번번이 거부해 온 때문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대학 측과 긴 시간 동안 임단협을 벌여 온 강사들의 결연한 의지가 돋보였다.


강사들, 교수와 150배 차별... "그래도 우리대학 강사는 최고 수준?"

"수고들 하셨습니다" 영남대 강사들이 11일 총파업 투쟁을 마무리하고 천막농성 해단식을 가졌다.
"수고들 하셨습니다"영남대 강사들이 11일 총파업 투쟁을 마무리하고 천막농성 해단식을 가졌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영남대분회

대학사회에서 교수와 강사들의 주종관계가 얼마나 심각한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강사들이다. 교수로 불리는 교원과 비교원인 강사의 '신분벽'이 얼마나 높은지는 임금과 근로조건 등을 비교해 보면 금세 숨이 막힐 정도다. 그럼에도 대학 강의의 절반을 짊어지고 있는 강사들의 교원지위 회복은 요원한 상태다.

그래서 늘 대학과 강사들의 관계는 유령계약으로 통한다. 한 한기 강의 시작 직전 전화 한 통화로 계약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면 영남대 강사들의 용기 있는 행동에 박수를 보낼 만하다. 사실 많은 우려와 걱정이 교차했었다. 강사들 사이엔 "과연 영남대 강사들이 어려운 문제를 극복해낼 수 있을까"라는 의문도 많았다. 

그러나 해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지금도 강사들과 대학 간 앙금의 불씨가 상존해 있다. 영남대 비정규교수노조가 파업 출정식에 앞서 파업유도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에서 밝힌 "연구비 150배 이상 차별, 임금 15배 이상 차별,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구호에서 잘 읽힌다.

오죽했으면 지난해 경북지방노동위원회가 '강의료는 동결하되 강좌 당 강의준비금을 8만5천원 인상하라'는 중재안을 낸 바 있다. 하지만 대학 측은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았다. 그 간 대학 측은 "학생 등록금 동결로 교직원 임금이 동결됐는데 현재 전국 지방대 중 최고 수준인 시간강사 강의료 등을 인상할 명분이 없다"고 일축해 왔다.

이에 대해 노조 측은 "교직원 호봉승급분과 연금보험 가입비 등을 합치면 적잖은 임금 인상 효과가 있기 때문에 임금 동결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고 주장해 팽팽한 대립국면이 지속돼 왔다. 그러다 파업으로 이어지면서 사태가 수습은 됐지만 이는 비단 영남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시간강사들을 최저임금에도 훨씬 못 미치는 싼 값에 고용하고 있는 전국 모든 대학에 해당되는 문제다.

대학사회에서 '차별' 대우를 받으며 존재 가치가 너무 미약한 시간강사들의 파업으로 사태가 봉합되긴 했지만 이 같은 상황은 다른 모든 대학들이 안고 있는 너무나 현실적인, 너무나 처절한 문제라는 점에서 영남대의 이번 사태가 시사해 주는 의미는 크다.  

비록 20일간의 파업이 마무리 됐지만 "대학 측은 강의료가 높다고 주장만 말고 총액으로 한 달에 100만원도 되지 않는 비정규직 강사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생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 영남대 시간강사들의 처절한 절규가 지금도 귓전을 맴돌고 있다.
#시간강사 #영남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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