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변협(대한변호사협회)과 관련된 글을 쓴다. 그런데 한 번도 변협이 변호사단체로서 옳을 일을 해서, 그래서 변협의 회원으로서 긍지를 느끼거나 기뻐하면서 글을 써 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필자가 그 단체의 회원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을 뿐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변협을 탈퇴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든 변호사의 가입이 법적으로 강제되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변협 가입을 강제하고 있는 변호사법에 대해 헌법소원이라도 제기하고 싶은 심정이다. 유감스럽게도 이번에도 역시 그런 마음으로 글을 쓰게 되었다.
'위법한 직무행위를 하는 공무원에게 대항하여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
그간 판례와 학설에 의해 확립된 법리이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공무원의 직무행위가 형식적, 절차적, 내용적으로 적법성과 정당성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상식이다. 지난 15일 법원은 이와 같은 당연한 법리에 기초하여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에게 적용된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이 판결을 두고 말들이 많다.
변협이 낸 성명서, 변호사로서 부끄럽다
변협은 지난 18일 저녁 변호사들에게 '서울남부지방법원의 강기갑 의원 사건 관련 판결에 대한 설문조사'라는 제목으로 이메일을 보냈다. 설문조사에서 변협은 위 판결에 대한 여러 부정적 평가가 있음을 전제한 후 ▲무죄판결 이유가 타당하다고 생각하는지 ▲헌법과 법률과 양심에 따라서만 재판하여야 한다는 헌법정신에 부합된다고 보는지 ▲판결이 적정하지 못하다면 그 해결책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질문만 보더라도 위 판결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유도하기 위한 의도가 짙게 배여 있음을 알 수 있다.
각 질문에 대한 보기는 더욱 가관이다. 무죄이유가 타당하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하기 위한 작위적인 면이 엿보인다. 공무집행방해죄에 대한 종전의 판례를 뒤집었다 따위를 답으로 제시하고 있다. 심지어 해결책으로는 법원내의 이념서클인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해야 한다, 선배법관의 후배법관들에 대한 지도와 조언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따위가 제시되어 있다.
판사들도 재판의 공정성을 침해할 우려가 없다면 특정단체에 가입하고 활동할 자유가 있다. 더군다나 이번 판결을 선고한 판사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마치 자기 입맛에 맞지 않는 판결을 선고한 판사는 모두 우리법연구회 소속인냥 호도하고 있다. 이처럼 이번 설문에는 이번 판결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변호사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는 질문과 보기는 전혀 없다.
더 황당한 것은 1월 25일까지 설문조사를 하겠다고 해놓고는 느닷없이 이메일을 돌린 다음날 오전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다. 변협은 성명을 통해 이번 판결이 확립된 법리와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했다. 심지어는 "법관 스스로 자기 자신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한 채 법관 개인의 소신을 관철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득력도 없고 시대정신에도 부합하지 않는 논리를 전개하였다"고 하여 해당 판사에 대한 인격적 비난도 서슴지 않았다. 보수 관변단체의 성명이라면 모를까 이것을 어떻게 법률전문가 단체의 성명이라 할 수 있을까.
변호사의 사명을 저버리고 있는 변협
물론 법원의 판결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인정되어야 한다. 사법부도 판결에 대한 비판을 무조건 사법부 독립 침해라고 반발만 할 것이 아니라 겸허하게 수용할 것은 수용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그것이 민주주의다.
그러나 판결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특정한 정치적 성향이나 이념을 잣대로 해당 법관을 인격적으로 모욕하거나 법원을 정치적으로 압박하기 위한 공격은 구별되어야 한다. 더군다나 특정 이념이나 정치적 성향을 지닌 변호사들로 이루어진 단체가 아닌, 다양한 사상과 생각을 가진 전국 모든 변호사의 가입이 법적으로 강제되는 변협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너무나 부적절하다. 회원들의 다양한 의사를 무시하는 것이고 국민들은 이를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 전체의 법률적 견해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회원들 의견 수렴 과정에 민주적 절차가 없었다는 것은 오히려 부차적인 문제이다.
변협이 이번 판결에 대해 의견을 발표한다면 애초에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무리한 수사와 기소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반성은커녕 오히려 더 목소리를 높이면서 사법부 독립을 위협하는 검찰을 준엄하게 꾸짖는 내용이어야 한다.
물론 변협은 그간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하여 인권과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쓴 소리를 한 적은 전혀 없다. 따라서 변협에게 그걸 기대하지도 않았다. 가만이나 있어주면 고마운 일이다.
검찰이 용산참사 수사기록 공개를 거부하여 철거민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침해할 때, 미네르바를 구속하고 <PD수첩> 제작진을 기소하여 표현의 자유를 짓누를 때, 촛불시위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을 기소하여 집회시위의 자유를 봉쇄할 때 변협은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촛불시위에 대해 색깔론으로 공격하는 성명 따위나 발표하고 인터넷광고불매운동에 대해 형사처벌이 가능하다는 의견 따위나 제시했다.
변호사는 기본적 인권의 옹호화 사회정의 실현을 그 사명으로 한다(변호사법 제1조). 변협의 사명 역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러한 사명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고 법률적 양심도 저버린 변협은 변협이라는 명칭을 쓸 자격도 없다. 제발 변협의 권위를 빙자하여 변협의 명예를 스스로 떨어뜨리는 일이 다시는 없기를 바란다.
※ 이 글을 쓴 지금 법원이 <PD수첩> 사건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다는 속보가 들려온다. 변협이여 제발 이번에는 의견을 내지 말아주시게나.
덧붙이는 글 | 유제성 기자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차장입니다.
2010.01.20 15:41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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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기갑 무죄' 못마땅한 변협의 '황당 설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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