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관, 김균태, 이동연, 마은혁, 박재영 판사의 공통점은

다른 목소리가 허용되지 않는 동토의 나라, 대한민국

등록 2010.01.22 14:06수정 2010.01.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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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성관, 김균태, 이동연, 마은혁, 박재영.

이들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한민국 사법부에 몸담은 판사들이라는 것. 둘째, 그냥 판사가 아니라 감히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중범죄를 저지른 판사들이라는 것. 그리고 셋째, 그 때문에 조선일보를 포함한 주류언론에게 만신창이가 되도록 두들겨 맞은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판사들이라는 거다.

먼저, 문성관 판사는 MBC 피디수첩을 '허위 보도로 나라 어지럽힌 세력'이라고 재단한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에 맞서 감히 '무죄'를 선고한 극악한(?) 죄를 범했다. 그 죄가 얼마나 컸던지 조선일보는 마치 흉악범 보도하듯 21일자 지면에 문 판사의 얼굴까지 공개하면서 <작년 '국보법 위반' 이재천씨에도 "무죄">(A4)를 선고했다고 이죽거렸다. 조선일보는 또 같은 날 사설을 통해 <문 판사, 여중생들 죽기 싫다 울먹일 때 어디 있었나> 하고 손가락질했다.

김균태 판사는 '전교조를 악의 무리'로 단정지은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에 맞서 시국 선언문 발표를 주도한 전교조 간부에게 감히 '무죄'를 선고한 죄를 범했다. 조선일보는 이를 "전교조에 앞으로 마음대로 이런 정치활동에 나서도 된다는 것을 허락한 면허장"이라고 못박고 "이제 대한민국 국민들은 교사들이 좌파든 우파든 정치 사안이 있을 때마다 편을 갈라 떼거리로 거리에 나서서 집단행동을 벌이고 교실을 정치 성명문으로 도배질하며 수업 시간을 자신들의 이념 선전장으로 만드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악담을 퍼부었다.

a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과 '무죄 판결'을 대비시킨 1월 18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강기갑 의원의 '국회 폭력'과 '무죄 판결'을 대비시킨 1월 18일자 조선일보 4면 기사 ⓒ 조선일보


이동연 판사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국회폭력의 아이콘'으로 낙인찍은 강기갑 민노당 대표에게 감히 무죄를 선고한 죄를 범했다. 조선일보는 <법정에서 '공중부양'하면 그것도 無罪라 할 건가>란 제하의 사설에서 "자기 개인의 상식을 국민의 상식으로 오해" "희한한 논리를 어느 법률 책에서 빌려왔나 모를 일" "이 판사는 지금 대한민국 법원이 얼마나 요지경인가를 일목요연하게 국민에게 보여줬다"고 그를 맹비난하면서 "다음 문제는 이런 법원, 이런 판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이다"라고 공갈 협박하기를 마지 않았다.

마은혁 판사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붉은 색을 칠한 민노당 보좌관과 당직자들의 국회점거 행위에 대해 감히 공소기각 판결을 내린 죄를 범했다. 조선일보는 지난 11월 9일과 11일 연속으로 사설을 작성, 마 판사의 판결을 "한쪽 편에 선 독단적 선입관" "편향적인 돌출 판결" 등으로 깍아내리는 한편, 그가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운영하는 민간 연구소 후원의 밤 행사에 참석해 10만원의 후원금을 낸 사실까지 들춰가며 "판사의 양심이 이념적 색채에 물든 것"처럼 몰고갔다.

마지막으로 박재영 판사는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이 가장 혐오하는 촛불시위 주동자에게 온정적인 태도를 보인 죄를 범했다. 조선일보는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제목을 단 사설을 통해 "일반인도 아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모든 판사가 지켜야 할 법관윤리강령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느니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느니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라느니 하며 박 판사를 한껏 조롱했다.


상기한 이들 5인의 판사들의 죄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이명박 정부와 보수언론을 따라 같은 소리를 내지 않고 "법률과 양심에 따라" 소신껏 판결했다는 거다. 이들도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시류에 맞게 그리고 영리하게 처신했다면 이처럼 힘있는 신문들의 언어폭력에 시달릴 일도, 보수단체 회원들의 육체적 폭력에 시달리는 일도 없었을 게다. 그러나 어쩌랴. 대한민국은 이미 정해진 답 외에 '다른 목소리'가 허용되지 않는 동토의 나라가 되고 만 것을.

분명히 말하자. 이 나라는 더이상 법치국가가 아니다. 민주국가도 아니다. 한 분의 뜻이 무오류한 경전이 되고, 그것이 주류언론을 통해 '복음'으로 전파되는 올더스 헉슬리 류의 '멋진 신세계'다. 이런 세상에선 정의와 자유, 법관의 양심 따윈 사치에 불과하다. 


끝으로, 조선일보가 2004년 8월 14일에 작성한 사설 <시민단체가 판사들까지 흔들고 있는 나라>의 몇 대목을 읽어 보시라. 조선일보의 두 얼굴에 아마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판사들의 고충 토로가 예사롭지 않다. 많은 판사들이 시민단체들의 압력에 심리적 동요를 느끼고 있으며 심지어 재판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고 털어놓고 있다...(중략)...

법관은 법률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 헌법 규정이다. 법률의 해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돼 가는 것이지만, 특정 세력이 자신의 정치이념을 시대적 흐름인 듯 포장해 여론의 이름으로 사법부에 강요하게 되면 사법부의 독립과 권위는 설 땅을 잃게 된다.

사법부의 기본적 사명이 정치적 다수 의사로부터 소수자의 권리와 인권을 보호하는 데 있다는 점에서, 집권세력 또는 이와 연계된 세력들이 특정 이념을 시대 정신인 양 사법부에 들이밀게 될 때 재판은 정치 과정으로 변질되고 소수 권리는 억압될 수밖에 없다.

지금 시민단체들이 진보니 보수니 하는 꼬리표를 판사들에게 붙이면서 압력을 넣고 있는 것은 재판정을 정치판으로 만들고 있는 행위이다...(중략)...

이런 시민단체들이 내세우는 사법개혁에 대해 판사들이 올바른 재판의 환경을 만들기 위한 개혁이 아니라 자신들과 같은 이념과 세대를 기준으로 사법부의 인적 물갈이를 시도하자는 것 아닌가 하고 우려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다."
#MBC PD수첩 무죄 판결 #조선일보에 밉보인 판사들 #조선일보 두 얼굴 #강기갑 무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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