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입학이 마치 공부의 끝인양 느끼던 때가 있었습니다. 사실 진짜 공부는 대학입학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하겠는데, 오직 대학입학이 공부의 최종 목표였던 우리네 고등학생으로서는 대학입학이 확정되는 순간, 지겨운 공부로부터 해방된다는 느낌이 워낙 강해서였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학에 들어가서는 공부를 등한시하고 소위 대학생활의 낭만이라는 것을 맘껏 즐기는 사람도 꽤 많았죠. 한편으로는 사회와 정치에 눈을 돌려 정의와 민주를 부르짖으며 지식인 최후의 보루인양 행세하는 사람도 꽤 많았습니다. 낭만을 즐기는 낭만파이든 사회정의를 위해 싸우는 투쟁파이든 당시에는 대학에서의 공부가 그리 무겁지 않았던 환경의 덕을 본 것은 공통점이라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당시에 느끼던 공부의 짐(?)은 거의 압박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비교적 가벼웠다는 것입니다.
요즘 대학생들은 어떨까요? 당시의 캠퍼스 생활을 얘기하면 아마도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전설로 듣지 않을까 싶네요. 죽어라고 대학입학을 목표로 공부해서 천신만고 끝에 대학에 입학하고 보니 이번엔 취업이라는 더 큰 벽이 앞을 가로막고 나섭니다. 고등학교 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취업공부에 대한 압박감이 몰려옵니다. 기진맥진하며 겨우 고개를 하나 넘었는데, 더 높은 고개가 눈 앞에 버티고 있는 형국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상황은 잠시 휴식을 취할 틈조차 허락하질 않습니다. 또다시 행군만이 있을 뿐이죠.
단지 좁디 좁은 취업에 대한 압박만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습니다만, 거기에 경제적인 부담이 가세합니다. 입학과 동시에 등록금 마련에 대한 심각한 고민으로 머리가 아파오는 것이죠. 부모에게 손을 벌리든 아르바이트로 직접 마련하든 그에 대한 부담감은 결코 녹녹하지 않습니다. 다행히(?)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을 받아 등록금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습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당장의 해결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은 아닙니다. 오히려 장래에 대한 걱정으로 부담감은 높아갑니다. 취업은 할 수 있을지, 늘어나는 빚은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를 않습니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캠퍼스의 낭만을 말하거나 사회정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요즘 대학생들에게는 사치로 느껴질 수 있겠습니다. 대학마저도 철저히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지식인 따위를 운운하는 것도 넌센스가 되었죠. 대학생이야말로 순수하게 사회정의를 부르짖을 수 있는 최후의 보루라는 인식도 사망을 고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촛불시위에서도 나타난 현상입니다만, 요즘 사회정의와 관련된 선언이나 행동을 보면 중고등학생이 많이 눈에 띕니다. 대학생이 못하는 것을 중고생이 대신한다고 해야 할까요? 사회인식에 대한 관심이 대학생으로부터 중고생쪽으로 내려왔다고 해야 할까요? 진실이 무엇이든 간에 사방에서 밀려드는 현실의 압박으로 인해 요즘 대학생들의 위신은 오그라들대로 오그라든 느낌입니다.
이렇듯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대학생들에게 측은지심이 느껴지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캠퍼스에서 저항정신이 완전히 실종되지는 않았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 봅니다. 등록금 투쟁 등 행동으로 보여주는 저항도 살아있고, 정치인들의 본색이나 공약을 확인하는 인식의 확대도 눈에 보입니다. 압박이 심해지면 그만큼 반동도 커지는 게 이치죠. 현실에 짓눌린 정체성이 임계점에 이르면 다시 크게 솟아오를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거기에 희망을 가져볼 밖에요. 대학생들의 순수한 정신이 깨어나 봄날의 들불처럼 확산되기를 빌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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