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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금융감독원·국세청·은행 등을 사칭하는 금융사기 사건을 뉴스로 많이 접합니다. 이런 사건 뉴스를 볼 때마다 참 어리석은 사람들이라고 생각들 합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리석다고 생각한 사람이 바로 나였습니다. 아니 나였을 뻔하였습니다.
지난 2008년 3월 17일입니다. 전화가 왔는데 ARS 음성 전화였습니다. 우체국 택배와 등기가 반송되었다면서 "우편물 반송물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0번'을 누르세요."라고 했습니다. 아무 생각없이 0번을 눌렀는데 "'서울지방경찰청지능수사팀'"이라고 했습니다. 이후 어떻게 되었는지는 지난 2008년 3월 17일에 쓴 <완벽하게 당할 뻔 한 공무원 사칭 금융사기>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억 7천여만원 사기에 연루되었다는 말 한 마디에 정신을 놓았고, 급기야는 농협 현금지급기에서 열심히 상대방 통장번호와 내 통장 비밀번호를 눌렀습니다. 분명 '공무원사칭 금융사기 조심'이라는 문구를 보고서도 끊임없이 눌렀지요. 남편이 정신을 놓는 것은 본 아내까지 덩달아 정신을 놓았습니다. 모든 일에 나보다 철저하고 냉정한 사람인 아내가 조금만 냉정했다면 그렇게 허망한 일은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뒤에서 어떤 아저씨가 금융사기라고 귀뜸을 해주셔지만 아내와 나는 아니라고 우기기까지 했습니다.
다행히 통장이 입출금이 자유로운 통장이 아니라 적립식 통장이었고, 비밀번호를 잘못 눌렀기 때문입니다. 통장에 돈도 얼마 없었지만 당시 그 돈은 우리 집 전 재산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마 그 때 돈이 다 빠져나갔다면 몇 달 동안 우리 아이들은 주린 배를 움켜잡고 금융사기를 당한 엄마 아빠를 원망했을 것입니다.
통장이나 인터넷뱅킹 같은 비밀번호는 집 전화번호와 주민번호로 하지 말라고 해도 사람들은 합니다. 아마 외우기 쉽기 때문에 위험성은 알지만 사람들은 비밀번호를 자기에게 익숙한 숫자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설마 내가 금융사기나, 비밀번호 노출로 피해를 당할 것이라는 생각은 잘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당합니다.
다음 날 은행이 문을 열자마자 비밀번호 변경을 하고, 카드 거래 정지를 하였습니다. 주민번화 집 전화 번호는 애초에 하지 않았고, 1234를 단순 조합하면 안 되는 것을 알고 대학 다닐 때 자취방 주소와 전화번호, 학교 학번 따위로 조합한 비밀번호를 만들었습니다. 정말 복잡한 숫자로 만든 비밀번호가 탄생했습니다.
그런데 통장을 확인해보니 여러 은행이었습니다. 통장이 많다고 돈이 많은 것은 아닙니다. 정말 필요없는 통장이 많습니다. 통장마다 비밀번호가 다르니 통장이 많으면 많을 수록 비밀번호만 늘어날 뿐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통장을 없애는 것이 가장 먼저해야 할 일었습니다.
결국 몇 만 원 정도 들어있는 통장은 없애고, 신용카드 거래 통장 하나와 적립식 통장 하나, 아이들 학교 스쿨뱅킹 통장만 두고 정리했습니다. 그런데 불필요한 통장을 없애도 통장은 3~4개였습니다. 워낙 외우는 것을 하지 못하는 머리라 비밀번호를 다 외울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수첩에 적어 놓을 수도 없습니다. 이유는 수첩을 2년에 한 번 정도쯤은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억력이 좋은 것도 아닙니다. 결국 아내 머리를 빌렸습니다.
"여보 이제 우리 집 비밀번호는 당신이 다 기억하세요."
"나 보고 다 외우라고요."
"몇 개 되지도 않는데 뭘."
"수첩에 적어두면 되잖아요."
"내가 수첩 자주 잃어버리는 것 알잖아요."
"당신 물건 잃어버리는 재주는 우리나라에서 아마 열 손가락 안에 들어갈 거예요."
"비밀번호 같은 것 잘 외워 두면 당신 머리에도 좋아요. 전호번호와 비밀번호 같은 것 자주 외우면 치매 예방에도 좋아요. 통장도 3~개인데 이 정도는 당신이 외울 수 있잖아요."
"모든 것을 다 나에게 지우는 습관 빨리 고치세요."
바깥에 나갈 때마다 아내는 꼭 아이들을 바깥에 혼자 내 보내는 마음이라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행여 어떤 일이 벌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합니다. 나를 아는 아내가 결국 통장 비밀번호를 외우기로 했습니다. 통장에 들어 있는 돈은 얼마 없지만 통장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통장 비밀번호는 그래도 아내 머리를 빌려 외울 수 있는데 인터넷 사이트 비밀번호가 문제였습니다. 포털 비밀번호는 숫자 조합이 아니라 특수문자나 영어 알파벳을 써야하기 때문에 더 복잡합니다. 머리에 외우는 것은 불가능한 일지요.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나가 방법을 하나 찾아냈습니다.
여기저기 돌아다니지 말자는 것입니다. 몇 군데만 정해서 인터넷을 합니다. 이상한 곳에 가지 않기, 이벤트에 참여하지 않기 따위입니다. 이벤트 유혹에 한 두 번 넘어가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이벤트에 참여하려면 반드시 회원가입을 원합니다. 나 역시 이벤트 유혹에 넘어가 내 정보를 고스란히 바친 일이 있습니다. 믿을 수 있는 사이트도 있지만 이벤트 유혹에 빠져 가입하면 가입 한 번 하고 다시는 그 사이트에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한 두 번 이벤트에 참여해 본 후 당첨도 되지 않는데 참여하지 말자고 다짐했습니다. 유혹을 벗어나는 순간 내 정보 유출도 막을 수 있고, 비밀번호도 새로 만들이 않아도 됩니다. 일석이조입니다. 그리고 한 번 가입했다가 잘 찾지 않는 사이트는 회원탈퇴를 합니다. 자주 가는 사이트는 비밀번호를 그냥 외워집니다. 물론 한 번씩 비밀번호를 변경하는 것은 잊지 말아야 합니다.
완벽하게 당할 뻔 했던 금융사기 덕(?)에 비밀번호 관리는 철저합니다. 하지만 사람인지라 언제든지 비밀번호는 노출될 수 있습니다. 결국 내가 노력할 수밖에 없습니다. 통장 많다고 돈 많은 것 아니니 불필요한 통장 정리를 합니다. 수첩 같은 곳에 적어두면 잃어버릴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외웁니다. 수첩을 잃어버린 순간 내 비밀번호는 공개됩니다. 그러므로 쉽지 않겠지만 비밀번호를 외우는 것 만큼 머리에도 좋습니다. 외우고 외우는데 비밀번호 몇 개 외우지 못하겠습니까. 옛날 중고등학교 다닐 때 영어사전을 통째로 외우겠다는 각오와 다짐 10%만 있어도 가능합니다.
금융사기 문턱까지 넘어간 사람으로 조언드립니다. 공공기관과 금융기관은 절대로 전화 ARS로 금융정보를 묻지 않습니다. 저같은 경험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세상은 자꾸만 외워야 할 비밀번호만 늘어가게 만들고 있습니다. 비밀번호 없는 세상이 참 좋은 세상인데 그런 날이 오기를 바라지만 불가능한 것같아 답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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