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어떻게 '잃어버린 15년'을 탈출했나

[서평] 리처드 C. 쿠 <대침체의 교훈>을 통해 일본 사례 분석

등록 2010.02.02 14:37수정 2010.02.02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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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중국을 두루 겪은 한 고위 외교관 출신의 한 선배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의 존재는 우리나라보다 약했어요. 하지만 미국은 여러 가지 목적으로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어갔지. 지금은 미국에게 중국이 그런 나라야. 그런데 유독 일본만은 중국을 무시하지. 아마도 중국의 실체를 은근히 깔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런 결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모르지만 일본의 중국에 대한 무시는 분명한 사실이야."


일견 타당하면서 꼭 맞지만은 않다. 지난 5년간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에 많은 공을 들였고, 지금은 상당 부분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현재 중국인들의 나라별 호감도를 보면 결코 우리에 비해 일본이 낮지 않다.

2010년에 들어오면서 세계 역학 관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두는 '중국과 인도는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미 중국의 기침에 세계가 감기에 걸리는 것은 물론이고, 기침을 한다는 엄포만 놓아도 세계 금융시장이 출렁이기 때문이다. G7 등 다자간 회담은 물론이고 다보스 포럼 등에서도 중국은 이미 세계의 맹주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그런데 중국을 무시하던 일본의 모양새가 별로다. 아니 국제무대에서 지난 수십 년간 누려오던 선도국의 반열에서 탈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들고 있다. 가장 가까운 우방으로 믿었던 미국조차도 심심하면 일본을 무시해서 심기를 불편하게 한다.

a 일본 도시 주거지 지가 추이 90년을 정점으로 붕괴해 2005년부터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

일본 도시 주거지 지가 추이 90년을 정점으로 붕괴해 2005년부터야 숨을 쉬기 시작했다 ⓒ 일본부동산연구소

널리 알려졌듯이 일본은 잃어버린 15년을 겪었다. 1990년부터 2005년 사이 일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87%가 하락했다. 1985년부터 급등한 부동산 가격은 5년 만에 원상으로 회복했고, 완만한 하강곡선을 지속해 오고 있다. 95년을 기점으로 둔다고 해도 잃어버린 15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일본 정부는 어떻게 대처했으며, 그 결과와 교훈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간의 대처는 과연 현명했던 것일까. 아니면 다시 더 큰 수렁을 불러오는 처절한 실패였을까.


최근 촉발된 도요타의 '와타나베의 저주'나 소니 등 가전사들의 무기력 등의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또 일본은 잃어버린 시간을 딛고 새로운 도약을 이룰 수 있는 것일까. 지난 몇 년간 일본의 위기를 불러왔던 부동산 거품을 만들어온 우리나라에게 일본의 케이스는 정말 중요한 케이스 스터디의 의미를 갖고 있다.

a 대침체의 교훈 일본 침체의 전반을 분석하는 한편 대차대조표 논리를 폈다

대침체의 교훈 일본 침체의 전반을 분석하는 한편 대차대조표 논리를 폈다 ⓒ 더난출판

이런 가운데 출간된 리처드 C. 쿠의 <대침체의 교훈>(더난출판 간)은 타산지석의 교훈을 줄 수 있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은 지난 일본 정책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핵심 브레인의 책이라는 점을 염두해 두고 읽어야 한다. 고로 저자는 지난 위기의 시간(1990년~현재)에 일본 정부가 잘 대처해 왔다는 판단과 더불어 그 정책들을 옹호하는 입장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이런 점을 염두하고 이 책을 읽어야 한다.


우선 저자는 일본이 위기를 통과한 시점을 두고 대차대조표라는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설명한다. 즉 90년부터 시작된 침체로 5년 만에 부동산의 자산가치가 기존의 12~13%까지 추락한 것을 염두해 둔다. 상식적으로 말해도 100조엔의 가치를 가졌던 기업이 갑자기 12조엔으로 재산이 폭락한 것이다. 물론 이 속에는 상당량의 부채가 있고, 그 이자를 갚아야 하는 처지다.

상식적으로 말할 때 이 정도 상황이라면 부동산 담보대출을 해준 은행은 경매 등으로 자산을 정리해야 할 처지에 빠진다. 물론 경매로 조달할 수 있는 대출금은 터무니 없이 떨어져 은행들도 연쇄로 파산해야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일본은 어떻든 붕괴의 도미노를 피했다. 그 비결을 쿠는 정부의 재정정책으로 본다. 즉 금리를 낮추어 이자 비용을 줄이고, 과감한 적자 재정을 편성해 민간 부분이 생명을 유지할 수 있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본의1990년 세수는 60조엔이었지만, 명목GDP가 13% 상승했고, 기업부문의 경상이익이 48% 상승한 2005년의 세수는 49조엔에 불과했다.(책 118페이지)

이렇듯 이 기간 동안 기업들은 큰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열심히 돈을 벌었고, 그 돈으로 빚을 갚아나갔다는 것이다. 물론 수많은 사람이 말하던 체질 개선까지는 진행되지 못했다.

쿠는 이런 시간이 지나서 기업들이 부채비율을 줄이면서 세상에 대한 자신감을 갖기 시작했고, 2000년대 후반부터는 서서히 융자에도 관심을 돌린다고 분석한다. 물론 그전에는 은행금리가 1~2%임에도 불구하고 차입은 상상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이다. 저자는 이런 상황에 대해 "미국의 대공황과 일본의 대침체는 기업이 자산 가격 하락에 부채 최소화로 반응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이 두 경우에 모두 미디어는 우발적인 신용 경색이 불경기의 주요 원인이라고 오해했고, 대중의 관심을 은행 부분에 집중시켰다"(256페이지)라고 본다.

물론 대공황이나 대침체의 원인 분석에 대한 난해함을 기존의 입장들과 같다. 어떻든 저자는 대차대조표를 말하면서 총체적인 침체를 양과 음으로 구분한다. 말 그대로 양은 경제적 호황기이고, 음은 대공황이나 대침체 같은 초대형 불황기를 말한다. 그런데 기존 경제학은 양의 정책과 음의 정책을 헷갈리면서 실패를 반복한다고 보면서 그는 어떻든 음의 시간에 정부는 과감한 적자 재정으로 민간 부문의 붕괴를 막아야하는 것을 역설한다.

또 그는 일본이 가졌던 부동산의 거품 문제의 뿌리도 분석한다. 15년 미만의 생명을 가진 주택들의 가치는 매년 15분의 1씩 소멸되는데 이는 새로 건설되는 주택가치에 상응하는 20조~30조엔이라고 본다.(505페이지) 이는 일본 GDP의 6%에 해당한다.

이를 바탕으로 저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국가들은 너무 늦기 전에 자산 가격 거품을 다스림으로써 금융 자본주의의 변덕에서 경제를 격려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509페이지)고 경고한다.

책의 후반부에서 그는 대침체의 교훈은 물론이고 미국 경제 부활의 어려움, 중국의 문제 등도 오지랖 넓게 설명해 준다.

자 책을 덮었다면 다시 지금의 흐름을 복기해 본다. 문제는 일본 정부의 재정 적자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라는 것이다. 지난해 재정적자는 예상치보다 3배가 많은 34조엔에 달했다. 이는 GDP의 10.5%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고, 누적적자는 GDP의 200%가 넘는다. 그러니 이제 정부가 하는 재정정책이 금융시장에서 먹히지 않을 만큼 거대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문제가 터지고 있다. 도요타, 소니 등 기업들은 지난 15년 동안 세계는 물론이고 일본 자국민들에 대한 신뢰까지 잃었다. 이런 기업들은 우리로 보면 삼성이나 현대자동차 같은 회사들로 일본의 GDP를 들었다 놓았다하는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이 큰 위기를 맞으니 일본 국민들이 갖는 위기감을 상상을 초월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결과를 놓고, 쿠의 견해가 옳았다거나 잘못됐다는 것을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이 주는 교훈들은 상당히 많다.

우선 1990년 일본이 가졌던 부동산 시장의 버블을 우리가 갖지 않았나 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제고다. 2000년 넘어 우리 부동산 시장에서 아파트의 분양가는 3배 이상 급등했다. 물론 아파트 수요자가 3배 이상 급등하지 않았음은 말할 필요도 없고, 아파트 소비 인구가 어떠했는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와중에 2005년 동시 분양 물량의 입주가 닥쳐오고, 2010년은 갖가지 이유로 분양 폭주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몇 년 전 시작된 미분양을 정부가 미봉책으로 막았지만 잠재적인 부동산 문제는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정부의 갈등이 시작된다. 이전처럼 자연적인 부동산 시장의 추락을 막는 것이 일본과 같은 대침체를 불러오지 않는 비결일까. 아니면 일단 버블을 터트리고, 다음 일을 생각하는 게 옳을 것이다. 사실 어느쪽도 쉽지 않다. 또 정부가 인위적으로 컨트롤하는 것도 분명한 한계가 있다. 또 우리와 일본의 재정 규모는 달라서 우리 정부가 GDP의 몇%에 달하는 적자를 감내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국제통화기금 등도 최근에는 국가별로 재정 수지에 대한 컨트롤을 요청하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대침체의 교훈 - 재정 정책 VS 금융 정책

리처드 C. 쿠 지음, 김석중 옮김,
더난출판사, 2010


#일본 #쿠 #대침체 #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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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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