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2.03 16:01수정 2010.02.03 16:01
진작에 찾아왔어야 할 곳을 이제서야 찾아내었다. 몇 번이고 찾자고 마음먹었지만 그 때마다 실패한 4전 5기쯤 되는 이 일은 바로 '몰래물 방사탑 찾기'이다. 예전에 찾았던 곳이라고 확신하고 찾아나섰다가 애먼 데서 먼 산만 바라보다 오기를 두어 번, 다시 자료를 뒤적여 위치까지 머리에 입력하고 찾아갔다가 갑자기 다른 볼 일이 생겨 미루기를 한 번, 다음에 또 찾아나섰다가 입력된 것이 지워졌음을 뒤늦게 깨달아 머리에 꿀밤을 넉 대, 진짜 마음먹고 오늘(1월 26일) 찾아 나선 것이다.
용두암에서 서쪽으로 뻗은 해안도로를 따라 계속 바다를 끼고 오면, 이 길은 다끄내를 지나고 어영마을을 거쳐서 도두봉, 이호 쪽으로 이어지는데 '신사수마을'이라는 표석이 있는 곳 옆으로 난 샛길로 들면 된다.
이 쯤 오면 거의 다 온 것인데 그제서야 내 확신이 잘못되었음을 알아챘다. 이 때까지만 해도 '예전에 왔던 곳인데 정말 많이도 변했군'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제주도의 현실이라고 날마다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차를 몰고 갔기 때문에 샛길을 따라 안쪽으로 깊숙한 데까지 천천히 들어가서 멈추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길은 끊겨 있고, 저 너머에선 무슨 공사를 하는지 소리가 요란하다. 그보다 더 너머는 공항이 자리잡은 구역이다. 아무리 봐도 낯설고, 변해도 이리 변했을까 싶어 차로 돌아와 앉았다.
머리를 또 친다. '에잇!'
그리고 다음에 나올 샛길을 기대하며 시동을 켜고 핸들을 돌렸다. 그런데 이미 지나 온, 그러니까 운전석 왼쪽 길에 눈에 띄는 것이 바로 내가 찾던 방사탑이었다. 하나, 둘, 갯수도 두 개이니 딱 들어 맞았다. 탑은 단독 건물의 마당과 접해 있었다. 차를 한 켠에 세우고 의기양양하게 걸어갔다. 그리고 다가가서 보았더니, 너무 망가져 있었다. '세상에나~' 속으로 한탄하며 마당 한 켠에 있는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방사탑이 맞다고 하며, 이 부근에 다른 것은 못 보았다고 한다.
허탈한 심정, 말하자면 '내가 너무 늦게 찾아왔구나' 하는 마음으로 일단 사진을 찍었다.
보니 더욱 심각하다. 하얀 페인트를 숫제 부어놓기까지 하였으니.
어쨌든 사진을 여러 장 찍고 인사하며 빠져나와 차 앞에 섰다. 그러고는 유난히 푸른 하늘이며 삐죽히 솟은 공항의 망루며 그 곁에 있는 밭담을 차례대로 훑어 보았다. 그런데 그 밭담의 사이에 봉긋하게 솟은 검은 물체가 보였다. 열었던 문을 닫고 가로막은 잡풀이 무성한 공터 언덕을 올라 걸어 갔다. 가까이 갈수록 형체를 드러내는 검은 탑의 모습에 속이 시원해졌다.
그래도 확인해보자는 생각으로 길을 되돌아와 인근 횟집 뒷마당에 나와있던 아저씨에게 물었다.
"방사탑? 그게 뭐야?"
"흐음."
몇 마디 소통 안되는 말들이 오가고 난 뒤
"암튼 저기로 가려면 조오기 난 길로 가면 됩니까?"
"그래. 저게 옛길이지. 올레길, 허허허"
방사탑은 모르고 올레는 아는 이 아저씨는 사실 제주도 사람이 아니었다. 앞서 만났던 아주머니도 마찬가지였는데, 올레길(?)을 따라 걷고 무너진 밭담을 넘어 찾아간 곳에서 만난 아저씨도 역시 육지 말을 쓰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방사탑 좀 보러 왔습니다."
아저씨는 탑의 앞에 빈 터를 텃밭삼아 채소를 키우고 있었다. 음식찌꺼기를 들고 나와 거름으로 놓으려는지 여러 번 밟아대고 있었다.
"아, 네. 그러세요."
하고는 텃밭 구석에 있는 닭장 옆 조그만 길을 따라 수돗가로 갔다.
방사탑은 밭을 가르는 돌담을 어깨에 끼고 동과 서쪽에 줄지어 놓여 있었다. 큰 몸집과 쌓아 놓은 돌사이의 탄탄한 긴장이 온몸에 전해져 오는 순간, 좀 전에 보았던 방사탑이 가짜임을 확신하였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진짜 탑을 올려다본다. 오후 햇살을 받아 경사진 그림자를 품은 거대하고 육중한 탑이 내게 다가온다.
먼저 마주한 여기, 서쪽 탑은 밭에 이미 있던 커다란 바위를 기반삼아 자연스럽게 돌을 쌓아올린 형태다. 새의 형상을 닮은 머릿돌을 얹어놓아 탑이 완성되는데 이 탑은 머릿돌이 2개인 점이 특이했다. 그런데 군데군데 움푹한 곳을 메우기 위해 쌓아놓은 자갈무지들이 맘에 걸렸다.
"혹시 이것 최근에 새로 만든 탑 아닙니까?"
일손을 멈추고 나를 멀뚱히 본다.
"요새에 사람들이 새로 쌓거나 한 것 아닌가요?"
같은 말을 조금 달리하여 물었다. 시간을 번 것이다. 그 사이에 무슨 말인지 알아낸 아저씨는 그런 일이 없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이 자갈들도요?"
역시 절대 그런 적 없다는 단호한 모습을 보였다.
"문화재인데요, 어떻게…."
동쪽 탑 역시 흙을 뚫고 나온 돌이 받침이 되긴 하였으나 그 녀석들이 차지하는 공간은 많지 않았다.
온전히 사람들이 쌓아올렸다고 할 만한 탑이었다. 이 탑은 서쪽 것보다 더욱 탄탄해 보여서, 최근에 보수 작업을 한 게 아닐까하고 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 탑의 머릿돌 역시 2개 놓였는데 둘이서 얼굴을 맞대고 있는 퍽 인상적인 모습이었다.
강정효가 낸 <제주거욱대>(2008.각)를 살펴보니 머릿돌이 90년대에는 서쪽 탑에서처럼 그저 꼿꼿이 서 있는 모습이다. 나머지 탑 몸체의 보수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 다른 자료를 더 뒤적여보거나 거주했던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봐야 의문이 풀릴 일이다.
해안도로를 따라 늘어선 이 부근의 건물들은 대부분 펜션, 횟집,스쿠버다이버숍, 카페 따위의 관광 관련 계통이며 지어진 지 오래되지 않은 것이다. 방사탑은 본래 안 좋은 일이 있거나 하면 허한 지형에 쌓아 그것을 방지하고자 하는 이른바, 마을 단위의 액막이 행사에 따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주거 지역으로 자리하던 옛 몰래물 마을은 두 번의 공항확장, 4·3사건 등으로 말미암아 그 자취를 감추다시피하고 오늘 만난 또다른 이주민들에게 그 자리를 내준 것이다.
탑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다만 닭장 속에서 재잘대는 닭들과 조그맣게 일군 텃밭, 세상에 갓 나와 호기심으로 무장한 강아지와 가짜 방사탑까지, 그리고 새로 터전을 일구며 오늘을 사는 이 사람들까지 품어 안으라는 뜻으로 아무도 안 보는 한밤중에 스스로 기울여 얼굴을 맞대는 조화를 부렸는지도 모를 일이다.
2010.02.03 16:01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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