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전문 사설 수리업체인 아이프리모 임용준 실장
김시연
"2주 전 터치패널이 산산조각 나 그동안 투명 테이프로 돌돌 말고 다녔어요. 자기 과실이라 무상 '리퍼'(리퍼비시: 재생산품 교환)도 안 돼 29만 원 정도 내야 한다는데 살림 거덜 낼 일 있나요."
3일 오후 용산전자상가 부근에 있는 한 아이폰 '사설 수리점'을 찾은 30대 남성 A씨의 하소연이다. 그 외에도 취재진이 수리점에 머문 30여 분 동안 손님 2명이 파손된 아이폰을 들고 직접 찾아왔고 전화도 수시로 걸려왔다. 대부분 아이폰 수리 문의였다.
"하루 일감 40~50건... 아이폰 출시 후 두 배 늘어""요즘 아침에 퇴근합니다."아이폰/아이팟 전문 수리업체 '아이프리모' 임용준(39) 실장은 요즘 밀려드는 일감 때문에 밤새기 일쑤다.
"지난 연말 아이폰 출시 뒤 수리 의뢰가 두 배로 늘어 요즘 하루 40~50건씩 들어와 감당이 안 됩니다. 지금 찾아온 손님도 오늘 밤까지 기다리셔야 하죠."사설 수리업체들이 갑자기 바빠진 건 애플의 독특한(?) A/S(애프터서비스) 정책 때문이다. 애플은 제품에 이상이 있거나 파손됐을 때 직접 고쳐주는 대신 재생산품(리퍼비시)으로 바꿔준다. 세계 곳곳에 수리 전문 기술자를 두기보다 고장 제품을 한꺼번에 수거한 뒤 공장에서 부품, 케이스 등만 바꿔 재생산하는 방식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미국에도 아이픽스잇(
www.ifixit.com)처럼 아이폰 분해부터 수리까지 친절히 알려주는 부품 쇼핑몰이나 사설 수리점이 많다.
외국에선 흔한 방식이지만 삼성전자나 LG전자처럼 직영 A/S센터에서 직접 수리해주는 방식에 익숙한 한국 소비자들에겐 낯설다. 제품보증기한(1년) 안에는 한 번까지 무상 리퍼가 가능하지만 보증기한을 넘기거나 침수, 액정 파손 등 소비자 과실이 명백한 경우 파손 정도에 관계없이 '리퍼비시' 비용 수십만 원을 고스란히 물어야 한다. 또 리퍼비시 제품을 '중고품'처럼 여기는 선입견과 아이폰에 남아 있던 데이터를 모두 날려야 한다는 불안감 때문에 사설 수리점을 찾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날 천안에서 2시간 걸려 용산 수리점을 찾은 김종민(19)씨는 "아이폰 케이스도 바꾸고 전원(슬립) 버튼이 함몰돼 고치러 왔다"면서 "사실 이 정도는 애플에서 리퍼비시를 제공하지만 경미한 고장 때문에 무상 리퍼를 받기는 아까워 사설 수리점에 들렀다"고 말했다. 김씨가 이날 함몰된 버튼을 고치고 케이스를 바꾸는 데 든 돈은 5~6만 원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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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폰 속 들여다보기 고장난 아이폰 분해하는 데 1분이면 끝! ⓒ 김시연
"리퍼 비용 따지면 사설 수리점이 나아"사설 수리 자체가 불법은 아니지만 애플에선 고객이 임의로 제품을 분해하거나 사설 수리를 맡긴 제품은 '무상 리퍼비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상도동에서 왔다는 A씨 역시 "사설 수리점을 한 번이라도 이용하면 무상 리퍼를 받을 수 없다고 들어서 고민이 많이 됐지만 계속 리퍼 받으며 29만 원씩 깨지는 것보다 이곳을 이용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덕분에 사설 수리업체들은 '호황'을 맞고 있다. 임용준 실장은 "아이폰 수리업체는 현재 용산과 구로에 각각 2군데씩 있다고 알고 있는데 주변에서 이쪽(아이폰 수리) 생각을 많이 한다는 소문은 무성하다"고 말했다. 10년 동안 전자제품 수리업을 해온 임 실장은 3년 전부터 아이팟 등 애플 제품만 전문으로 취급하고 있다.
임 실장 책상에는 수리 의뢰가 들어온 아이폰과 아이팟 제품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터치패널에 금이 갔거나 아예 산산조각 난 아이폰도 있었다. 임 실장은 즉석에서 아이폰 분해 과정을 직접 보여줬다. 파손된 아이폰을 분해하는 데 1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이곳에선 파손된 부품을 수입 부품들로 교체해주고 수리비를 받는데, 아이폰 터치패널은 7만5천~8만5천 원, 액정(LCD)은 15만~18만 원, 배터리나 스피커 커넥터, 오디오 단자 교체는 3만~4만 원 정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