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캐리커처Self-Portrait, Caricature)1885, Pen and ink, 30.4 x 12.7 cm,
툴루즈-로트렉 박물관(Musee Toulouse-Lautrec), Albi, France
Toulouse-Rautrec
1883년 하류 계급의 삶에 빠져 살며 풍경화에는 무관심했던 로트렉은 도시 생활과 공연, 창녀촌을 주요 주제로 작업하였으며, 1884년에는 그가 가장 좋아한 거리 몽마르뜨(Montmartre)에 정착해서 회화와 일러스트에 몰두합니다. 그러면서 당시 함께 활동하던
에드가 드가(Hilaire Germain Edgar Degas, 프랑스, 1834-1917)의 영향을 받아 화면을 분할하고 주제의 중심을 이동시키며, 주변 상황을 연상하게 만드는 기법을 적용하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로트렉의 예술이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1887년부터 각종 전시회에 참가하였는데, 부당한 명성에 저항하며 고흐와 함께 전시회를 열기도 하였습니다. 1888년과 1890년, 툴루즈-로트렉은 '브뤼셀 살롱(Brussels Salon, 브뤼셀 미술전)'에 프랑스 작가로 초대를 받아 자신의 창작품들을 전시하게 됩니다. 1889년에는 '앙데팡당전(Salon des Independants, 독립전)'에 쇠라(Georges Pierre Seurat, 프랑스, 신인상주의, 1859-1891), 반 고흐,
루소(Pierre Etienne Theodore Rousseau, 프랑스, 1812-1867) 등과 함께 참여하였으며, 종종 전시회로 기부도 하였습니다.
툴루즈-로트렉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1891년 파리 몽마르트에 붙여진 공연장(cabaret) '물랭루즈(Moulin Rouge)'의 홍보 포스터였습니다. 카바레(공연장) '물랭루즈'의 배경과 연예인들은 로트렉에게 있어서 작품의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원천이었으며, 1891년에는 첫 판화를 창작하였고, 1893년에는 문학과 연극에 관심을 갖고 헌신하면서 1896년에 첫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1894-7년 사이에는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이 때 런던(London)과 스페인의 마드리드(Madrid)와 톨레도(Toledo), 브뤼셀(Brussels), 네덜란드의 할렘(Haarlem)과 암스테르담(Amsterdam) 등을 돌며 고야(Francisco de Goya y Lucientes, 프랑스, 1746-1828),
렘브란트(Harmenszoon van Rijn Rembrandt, 네덜란드, 1606-1669), 브뤠헬(Jan the Elder Brueghel, 네덜란드, 1568-1625), 고갱(Eugène Henri Paul Gauguin, 프랑스, 1848-1903), 고흐 등과 교류하였고, 그 창작품들로 함께 전시회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러던 1897년의 휴가 여행 도중에 정신 착란 증세를 일으키고 1899년에는 알코올 중독과 불규칙하고 문란한 생활로 정신 병원에 입원하기에 이릅니다. 폐쇄된 병동에서도 작업을 지속하였으며, 1901년 9월, 37세의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은 숨을 거둡니다. 회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고귀하기보다는 일상과 현실 속의 쾌락을 화폭에 옮겼으며, 카페와 대중 무도회, 카바레, 서커스 단원 등 속세의 본능과 인간의 애수(哀愁)를 그렸으며 있는 현실 그대로를 자연스럽게 재현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