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정책에 편승한 민주당, 제 발등 찍었다"

[인터뷰②]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펴낸 손낙구씨

등록 2010.02.12 15:24수정 2010.02.12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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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낙구씨의 연구는 강남-강북의 양극화보다 '강남 안의 양극화'가 심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보여준다.
손낙구씨의 연구는 강남-강북의 양극화보다 '강남 안의 양극화'가 심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보여준다.후마니타스

"'계급 배반 투표' 담론은 정치에 면죄부를 준다"

- '자기 존재를 배반한 의식'이란 담론과 현실은 달랐다는 얘기인데.
"물론 그런 사례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의 소유자도 있다. 우리 사회의 언론환경이 그런 것을 조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게 주된 경향이라면 문제는 국민에게 있다. 그런 담론은 정치에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하지만 동네분석은 '책임은 국민이 아니라 정치에 있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 왜 '돈 없는 서민들은 자신의 계급을 배반해 투표한다'는 통념이 나왔다고 보나?
"기존 통념의 근거자료는 주로 여론조사다. 여론조사는 표본이 1000명 정도이기 때문에 근본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또 개인적 경험에는 차이가 있어서 실제보다 과장되거나 축소될 수도 있다. 반면 나는 100% 전수조사를 했다. 기존의 통념과 전수조사가 충돌하고 있으니 좀 더 엄밀한 과학적 분석을 할 필요가 있다."

- 도시의 아파트 건설 붐이 과거의 투표패턴을 바꾸었다고 생각하나? 
"무엇이 투표를 하고 안 하고를 결정하는지와 관련된 연구는 비어 있었다. 대부분 지역문제나 세대문제, 연령, 해당선거의 이슈를 중심으로 한 연구들이다. 특히 투표의 계층적 요인은 미약하거나 없는 것으로 분석됐다. 하지만 난 이런 분석과 상반된 결과를 내놓았다. 언제부터 그렇게 됐는지는 설명하기 어렵다. 민주화 이후에 신자유주의가 몰아쳤다. 신자유주의만 몰아친 게 아니라 부동산 광풍까지 몰아쳤다. 이런 것과 연관이 있지 않을까?

부동산 문제는 부동산 개념을 넘어서는 것이다. 주택은 우리 사회의 부를 대표하는 지표다. 부동산을 중심으로 재산을 증식하는 게 사회적 현상이다. 부동산 자산을 어떻게 굴리느냐에 따라 사회적·경제적 지위가 결정된다. 자신이 대학 다닐 때 어떤 생각을 했든 사회에 나오면 부동산에 발목이 잡혀서 산다. 수도권에서는 더욱 심하다. 집문제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진다. 이 책의 결론은 그런 우리 사회의 흐름과 연관돼 있다."

- 아파트가 늘어날수록, 재개발 정책을 펼수록 민주당 의석이 줄어든다면 아파트는 민주당의 적이란 얘기가 되는데.
"현실은 정말 그렇다. 이것은 부동산 문제가 악화돼서 나타난 비정상적인 현실이다. 집은 재테크 수단이 아니라 거주수단이다. 부동산 문제가 정상적으로 해결되면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이런 현상은 나타나지 않는다. 비정상적인 부동산 상황 때문에 주택을 중심으로 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리는 재개발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그런 현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

뉴타운을 개발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 동네에서 청소당한다. 그들이 (살던 곳이) 중산층 이상(이 사는 곳)으로 교체되는 악순환이 계속되면 야당이 발붙일 데가 줄어든다. 부동산 불패신화가 해결되지 않으면 야당은 어렵다. '민주정부' 기간 동안 민주당이 부동산 문제, 뉴타운, 재개발 등에 명료한 태도를 취하지 못했다. 뉴타운에 편승하는 태도로 제 발등을 찍었다. 당연히 그런 처지에 있는 서민이 자신의 처지를 대변하지 못하는 야당에 투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서민 처지에서 제대로 된 대안을 세우지 않으면 계속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투표하지 않는 것 자체가 아주 강력한 정치적 견해"

- 왜 가난한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은가? 개인의 의지 문제는 없는가?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자기 생활 향상 수단으로 가장 잘 활용한 지지층은 한나라당 지지층이다. 이들이 한나라당을 찍어주면 한나라당은 이들에게 정확하게 부응하는 계층정치를 한다. 그러면서 지지층도 두터워진다. 그런 정치로 한나라당 지지층은 생활 향상을 이루어냈다.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는 생활 향상과 상관없는 것이 되고 있다.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를 이끌어야 할 현실정치세력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통해 가난한 유권자와 만날 수 있는 정치를 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빼고서 서민들의 투표 거부를 개인 의지 문제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유독 그런 동네에서 투표율이 낮은 것을 보면 투표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강력한 정치적 의지 아닌가? (투표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 그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정치적 견해를 표시하는 방법이다. 그들이 투표를 통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나타낼 수 있는 새로운 정치, 민주주의를 만들어내지 않으면 사회발전은 쉽지 않다."

"진보정당, 평생을 같이할 임자를 못 만나고 있어"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저자 손낙구씨.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저자 손낙구씨. 남소연
- '영남 출신이냐, 호남 출신이냐' 하는 지역 변수가 투표율이나 득표율에 끼치는 영향력은 거의 없는 것인가?

"지역 관련 통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원적지별로 몇 명인지 하는 통계 자체가 없다. 소득통계가 없다. 그런 것들까지 같이 봤더라면 좀 더 정교한 분석이 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앞으로 해야 할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주택을 중심으로 자산과 투표, 득표의 상관관계가 뚜렷한 것으로 확인된 이상 계층에 포함된 종속변수거나 계층과 지역이 혼합된 것으로서 지역문제를 들여다봐야 한다."

- 기존의 지역주의 분석에서 벗어나야 하나?
"원래 순수하게 지역으로만 바라보는 것도 맞지 않다. 계층문제를 중요하게 같이 봐야 한다. 왜 호남 사람들은 상대적으로 가난하고, 투표율이 낮고, 민주당을 많이 지지하는가? 호남 사람의 유전자가 그런 것은 아니지 않나."

- 주택정책의 변화가 투표성향을 바꿀 수 있나?
"지금까지의 주택정책은 집을 가진 자에게 이롭거나 혜택을 주는 정책이었다. 집이 없거나 전세금이 적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책이었다. 언술로는 '서민주거정책'이라고 했지만 내용적으로 달랐다. '셋방 사는 사람들이 사는 게 나아졌다', '집 스트레스가 줄었다', '집을 굴려봐도 돈이 안 된다' 등의 변화가 일어나면 다른 기준으로 정치적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 결국 '사회적 양극화가 정치적 양극화를 낳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선후 관계를 따질 문제인지는 모르겠으나 동네분석을 통해 그런 현상이 명확히 드러났다. 자산 양극화가 투표 양극화로, 정당지지의 차이로 나타났다."

- 이번 분석결과가 민주당이나 진보정당들에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이번 분석결과로 보면 한나라당은 잘하고 있다. 지지층에게 혜택을 주는 등 지지층을 잘 대변하고 있다는 얘기다. 지지층과 소통을 제일 잘하고 있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못사는 동네일수록 (투표율이 낮지만) 투표를 하게 되면 민주당을 찍는다. 눈물겹다. 그런데 기대가 실망으로 변해서 투표 자체를 안 한다. 이런 식으로 간다면 투표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투표를 안 하는 쪽은 민주당 지지층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이들이 투표해서 지지하도록 만들어내지 않으면 민주당의 앞날은 밝지 않다. 지지층이 납득할 수 있고, 투표할 마음이 생기도록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진보정당은 성장기여서 결정적으로 얘기하기는 어렵다. 민주노동당이든 진보신당이든 진보정당의 경우 자기 정체성에 맞는 지지층이 불명확하다. 평생을 같이할 임자를 못 만나고 있는 것이다. 임자를 제대로 만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민주당, 한나라당 뉴타운 정책에 편승해 실패했다"

- 그런데도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한나라당의 뉴타운 정책에 편승했다.
"노회찬 대표의 노원구나 김근태 전 의장의 도봉구에서 왜 한나라당이 승리했느냐? 뉴타운정책만으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아파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빨아들이는 힘이 굉장히 섬뜩했다. 뉴타운 정책은 무서운 정책이다. 한마디로 서민대청소 정책이다. 한나라당의 지지기반을 다져주고 끌고 가는 아주 매력적인 정책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뉴타운 정책에 편승해 실패했다."

- 흥미로운 결과 중 하나가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 종교신자가 적고, 한나라당 지지층이 거주하는 동네에서 천주교 신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인데.
"해석은 조심스럽게 해야 하겠지만 이렇게 나타난 것은 무시할 수 없다. 천주교 신자의 비중은 좀 더 부유한 동네, 투표를 많이 하는 동네, 한나라당을 더 많이 찍는 동네에서 높은 게 분명하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종교의 위로조차 못 받고 있는 셈이다. 이런 현실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진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 이걸 두고 천주교가 보수화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
"종교의 경우 학력보다 더 상관관계가 뚜렷하게 나온다. 이 사실만은 존중받아야 한다. 여기에서 출발해서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각 종교의 계층적 차이가 존재하는지를 객관적이고 과학적으로 들여다봐야 한다."

- 진보정당의 경우 동네별 특성과 지지율의 상관관계를 찾아보기 어려운 이유는 신생정당의 한계 때문인가?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의 성장과 민주노총의 성과를 발판으로 다양한 사회운동 영역의 도움을 받아서 출발했다. 이후 탄핵정국이라는 정치적 조건의 혜택을 입으면서 원내에 진출했다. 여러 가지 조건이 맞물려 싹을 틔운 셈이다. 이걸 길게 보고 키우려면 계층정치 활동을 강화했어야 했다. 자신의 지지층인 밑바닥 사람들을 대변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했다는 성찰이 필요하다. 앞으로 외연을 확대하기 이전에 자신의 임자를 제대로 만나는 일을 해야 한다."

- 진보정당의 당원들이 주로 고학력자, 중산층, 대학생 등으로 구성돼 있는데. 
"당원 구성은 이해할 만하다. 문제는 정말 대변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느냐다. 각종 활동이나 당의 주된 관심사, 활동영역 등을 되돌아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 때 집값 폭등으로 서민들의 가슴이 찢어질 때 눈물짓고 한숨 쉬는 집 없는 사람들과 함께했나? 반성할 게 많다. 서민은 우는데 자신은 왜 눈물이 안 나는지 뒤돌아봐야 한다. 그런 것이 달라지지 않으면 임자 만나기 힘들다."

- 앞으로 상당 기간 진보정당이 수도권에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는 셈인가?
"부동산 광품이 이런 식으로 부는 한 쉽지 않다. 이번 작업을 하면서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의 큰 변수라는 걸 다시 느꼈다. 부동산 먹이사슬이 이렇게 굴러가는 한 야당이나 진보정당이 자기의 토양을 제대로 갖기 힘들다. 셋방 떠도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지방선거를 보면 진보정당의 지지율이 5~10% 정도 나온다. 낮지 않은 지지율이다. 뭘 해볼 수 있는 충분한 종잣돈이다. 계층투표를 하고 있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계층정치를 강화하면 민주당의 한계를 뛰어넘어 (민주당 지지층을) 흡수할 수도 있다."

 동네와 선거, 주택, 학력, 종교 사이의 상관관계.
동네와 선거, 주택, 학력, 종교 사이의 상관관계.후마니타스

"'노동'과 '부동산'을 종합해 한국 사회 이해하고파"

- 전작이 <부동산 계급사회>이고 이번 책도 부동산을 주요한 변수로 삼아서 분석했는데 왜 부동산에 주목하나?
"제가 노동운동을 마무리하고 국회에 들어가 진보정치 활동을 하던 시기에 부동산 문제가 심각해졌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도, 진보정당운동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다. 부동산 문제를 파보니 부동산 문제가 한국 사회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번 작업도 부동산을 가지고 동네와 정치를 설명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개인적으로 19년간 노동운동을 했고 몇 년간 부동산을 들여다보면서 한국 사회를 '노동'과 '부동산'이라는 두 가지 축으로 바라보게 됐다. 그 두 가지 축을 종합해서 한국 사회를 이해해보고 싶다."

- 끝으로 어떤 사람들이 이 책을 읽어줬으면 하나?
"그동안 신뢰할 만한 정보가 없었다. 일선 공무원들조차 동네정보가 뚜렷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정을 펴거나 정책을 설계해왔다. 하지만 이 책이 나옴으로써 동네정보가 필요한 일선공무원, 정당인 등에게 유용할 것이다. 아울러 한국 정치를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특히 계층·계급론을 연구하는 분들에겐 좋은 기초자료가 될 것이다. 그분들이 더 전문적인 시각에서 이 책을 보완·발전시켜줬으면 좋겠다. 또 지방선거를 준비하는 분들에게도 필요하다. 아주 미세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 그릴 수 있는 가장 정교한 동네지도이기 때문이다."
#손낙구 #대한민국 정치사회지도 #후마니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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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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