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만 사랑이라는 포장으로 피 섞고 살 섞어가며 하나가 되는 줄 알았더니 나무 중에도 그런 나무가 있습니다. 인간들처럼 음탐하지 않고, 호색꾼들처럼 나부대지 않고 있으니 둘이 붙어 하나가 되어 있는 모습은 지고지순한 몸놀림이며 '나 혼자만의 사랑'입니다.
뿌리를 달리하는 두 나무가 둥치를 나누고 가지를 섞으며 하나가 되어 있는 연리지는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에 조성되어 있는 '산막이 가는 옛길' 초입에서 자라고 있었습니다.
산막이 가는 옛길을 찾아온 모든 연인들이 사랑이 이루어지기를 약속하고 맹세하면 사랑도 소망도 모두 이루어 줄 거라는 것을 약속하듯이 사랑을 나누고 있는 짜릿한 모습, 사랑을 이루어낸 늠름한 모습으로 그렇게 초입에 있었습니다.
둘이 붙어 하나가 되어 있는 알몸을 그대로를 드러내놓고 있는 연리지 앞에 멈추어 서서 보는 사람이 민망할 정도도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연리지를 느껴보았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서로 비비고, 얼마나 오랫동안 부닥뜨리며 서로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했을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물기가 오르기 시작하는 봄날에는 피고름 같은 수액을 흘려야 했고, 가을 햇살이 영글어가는 늦가을에는 딱지가 되어있는 껍질을 떨어트리며 아주 조금씩 서로의 속살을 헤집고 들어가거나 양보하며 하나가 되었을 겁니다.
나무들도 이렇듯 하나가 되어 있으면 부르르하고 몸부림을 칠만큼 짜릿하고, 사리분별력을 잃어버릴 만큼 들뜨게 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인간의 머리로 상상하는 감정은 짜릿한 나눔입니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불어오면 '아야~아야~' 하고 신음하다, 한여름의 소나기는 후드득 거리며 쏟아지면 뚝뚝 눈물 흘리며 하나가 되었을 겁니다.
이 가지는 뉘 가지인고?
처음에야 이것은 네 뿌리고, 이것은 내 뿌리, 이것은 내 가지이고 이것은 네 가지라며 몫을 나누기도 했겠지만 미운 정 같은 그늘, 고운 정 같은 수액까지 나누다 보니 네 뿌리가 내 뿌리 되고, 내 뿌리가 네 뿌리 되어야만 될 수 있는 연리지, 네 가지가 내 가지 되고, 내 가지가 네 가지가 되어야만 될 수 있는 연리지가 될 수 있었을 겁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다 부닥뜨리는 가지들처럼 흔들리는 감정에 부닥뜨리다 몸뚱이 끼리 뒤엉키는 걸 사랑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그런 시절을 경험한 나무 가지 같은 인생이기에 두 나무가 하나로 되어 있는 연리지 앞에서 몸도 마음도 머뭇거릴 뿐입니다.
둘이 하나로 되기까지 비비고 부닥뜨렸던 세월은 어느덧 지나간 세월이 되었고, 그렇게 지나간 세월은 사랑을 이루지게 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의 상징, 사랑의 메신저인 연리지가 되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된 연리지는 네 뿌리 내 뿌리를 구분하지 않고, 네 가지 내 가지를 분별하지 않으며 더불어 살아가는데, 바람에 부닥뜨리는 나뭇가지처럼 내 뿌리와 내 가지로 다가왔던 인목들은 어느 곳에서 어느 누구의 연리지가 되어 있을까가 궁금합니다.
덧붙이는 글 | 연리지는 까치설날인 2009년 2월 13일, 충북 괴산군 칠성면 사은리 산막이 가는 옛길 초입에서 보았습니다.
2010.02.15 19:08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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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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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뿌리는 뉘 뿌리고, 이 가지는 뉘 가지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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