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마을이장입니다. 잠시 후 10시 30분부터 마을 공동세배가 있겠습니다. 세배를 받으실 어르신이나 세배를 할 젊은이들은 모두 마을회관으로 나와 주십시오."
동면 운농리1구(이장 권정주, 운곡부락) 마을회관에서 설날 아침 마을 공동세배가 진행됐다. 마을공동세배는 말 그대로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하는 세배다. 마을 공동세배는 1960년대 초반 정부에서 명절을 간소하게 보내기 운동을 정책적으로 추진하면서 시작됐다.
설날 한 자리에 모여 세배를 함으로써 세배를 하기 위해 이 집 저 집을 찾아다니는 번거로움을 없애자는 취지였고 얼마 전까지만해도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었던 우리네 세시풍속 중의 하나였다. 하지만 지금은 갈수록 사라져가고 있는 우리네 세시풍속 중의 하나가 되어가고 있다.
운곡마을에서의 공동세배는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들과 출향주민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서로의 안부도 듣고 고향 소식도 챙기는 신년 정기총회나 다름없다. 새해 첫날 마을 주민들은 마을회관에 모여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드리고 덕담을 듣는다.
사실 70여호가 넘는 운곡마을에서 설날 마을 젊은이들이 동네어르신들을 일일이 찾아뵙고 세배를 드리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명절 후 며느리의 친정나들이가 당연시되는 요즘에는 명절 상차림 후 처가를 다녀와야하는데다 이번 설 명절같이 연휴가 짧을 때면 마음은 있어도 일일이 찾아 뵙고 인사드리기가 어렵다.
이는 운곡마을 뿐만은 아닐 터. 하지만 운곡마을에서는 마을공동세배가 있기에 간촐하나마 마을어르신들 모두에게 안부도 전하고 훈훈한 덕담도 배부르게 들을 수 있어 젊은이들에게는 반갑다. 마을 어르신들도 코흘리개때부터 봤던 동네 젊은이들의 소식도 한 자리에서 듣고 사랑 담긴 덕담을 건네줄 수 있어 좋다. 운곡마을에서 공동세배를 계속 지켜오고 있는 이유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공동세배가 있는 날이면 마을에서 제법 여유가 있거나 회갑이나 결혼 등의 경사를 치른 집에서 한 상씩 걸게 장만해 마을회관으로 내오곤 했다. 그렇게 모아진 음식으로 어르신들에게 세배 후 식사를 대접했던 것. 하지만 지금은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에서 상을 장만해 어르신들을 대접한다. 공동세배가 서로의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되겠기에 젊은이들이 나선 것이다.
올해 공동세배에는 예상치 못한 귀한 손님도 오셨다. 몇 십년을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는 운곡마을 공동세배를 함께 하기 위해 전완준 화순군수가 특별히 마을을 방문한 것. 이날 전완준 군수는 운곡마을이 고향인 권석주 화순군청 재무과장을 비롯해 안영순 동면장 등 공직자들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에게 세배를 올렸다.
특히 전완준 군수는 운곡마을에서 먼 일가 어르신을 만나면서 감격에 겨워하기도 했다. 운곡마을에서 전완준 군수의 고모인 남면 다산마을의 시동댁과 사돈관계인 89세의 사수댁을 만나게 된 것. 전완준 군수는 "의외의 장소에서 일가 어르신을 만나 더욱 반갑다"며 항상 건강하고 늘 좋은 일만 가득하길 기원했다.
전완준 군수는 "운곡마을은 관내에서도 젊은이들이 많은 몇 안 되는 곳이어서 보기가 좋다"며 "현재 농업과 농촌이 어렵지만 위기가 곧 기회라고 생각하고 농촌을 지키는 젊은이들이 살맛나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고향을 찾은 출향인사들에게도 "앞으로는 고향을 찾지 않아도 고향의 소식을 자주 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주민들은 물론 출향인들도 고향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모두가 자랑스러워하는 화순을 만들기 위해 모든 공직자들과 함께 최선을 다 하겠다"고 말했다.
권정주 운곡마을이장은 "설 전날 갑자기 군수가 마을을 방문해 공동세배를 함께 하겠다는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운곡마을의 자랑 중의 하나인 마을공동세배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한편 동면 운곡마을은 해마다 설날이면 마을공동세배를 통해 '효'를 실천하고 추석이면 마을 청년회가 주축이 돼 마을 주민들이 함께 하는 노래자랑 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마을체육대회도 준비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디지탈화순뉴스, sbs유포터, 다음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0.02.16 13:2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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