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왜성 앞의 이순신 장군 영정은 다르다는데

[바이크올레꾼 길 따라 마을여행 17] 순천시 해룡면 충무사와 순천왜성

등록 2010.02.17 09:52수정 2010.02.17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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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의 충무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아쉽게도 초기에 그려진 것은 일본인에 의해 지난 1944년에 태워져버렸고 지금의 모습은 이후에 다시 그려진 모습이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의 충무사에 있는 이순신 장군 영정, 아쉽게도 초기에 그려진 것은 일본인에 의해 지난 1944년에 태워져버렸고 지금의 모습은 이후에 다시 그려진 모습이다서정일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얘기할 때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545년에 태어나 1598년 노량해전에서 전사할 때까지 조국을 위해 바다를 지켰다. 그러나 그는 바다만 지킨 게 아니다. 전남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의 이순신 장군은 왜구들의 악귀로부터 주민들까지 지켜냈다.


충무사가 지어진 것은 1690년의 일이다. 이는 정유재란이 끝난 지 약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마을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던 초기의 일이다. 그런데 왜 주민들은 마을이 제대로 자리도 잡기 전에 충무사를 짓고 이순신 장군 위패와 영정부터 모셨을까? 그것은 충무사와 약 1km 떨어진 순천왜성과 깊은 관련이 있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순천왜성의 모습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순천왜성의 모습서정일

사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는 충무사로 유명한 곳이 아니다. 시도 기념물 제171호인 '순천왜성'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1597년 소서행장(고니시유키나가)이 쌓고 약 1년 이상 왜군이 주둔했던 곳으로 호남공략을 위한 전진기지로 또, 최후의 방어기지로 삼기 위해 축성한 곳이다.

이곳에서는 1598년 9월부터 11월까지 2개월간, 조선과 명나라의 연합군과 왜군 사이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마지막 남은 패잔병 격인 왜군들이 육, 해상에서 포위하며 조여든 연합군을 맞아 독 안에 든 쥐처럼 날뛰면서 물어뜯었을 것은 불을 보듯 뻔 한 일, 그래서 전투는 그 어느 곳보다 치열했다고 한다.

지난 16일, 애마를 타고 순천왜성으로 향했다. 400여 년 전 말을 타고 순천왜성을 점령하던 그 어떤 장군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성곽은 우리의 그것과 확연이 차이가 났다. 모서리는 각이 져 있고 내성과 외성으로 확실한 구분이 있었으며 망루도 자리 잡고 있었다. 하지만 치열한 전투와 세월의 흐름으로 대부분 파손된 모습이었다.

성곽 중앙부에 자리한 망루 성격의 천수기단까지 올라가는데는 불과 10여분 밖에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만약 제대로 성이 갖춰져 있었다면 돌아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와 이순신 장군 영정. 하단 우측은 순천왜성에서 바라 본 충무사의 모습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공단의 모습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 있는 충무사와 이순신 장군 영정. 하단 우측은 순천왜성에서 바라 본 충무사의 모습과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는 공단의 모습서정일

천수기단에 올라 내려다 본 주변 모습은 가까운 바다 쪽은 매립돼 공장들이 들어서 있고 먼 바다 쪽은 간간히 섬들이 자리하고 있다. 육지 쪽은 산등성이 아래로 올망졸망 집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그곳이 100여 가구의 신성리 마을이다. 그리고 그 우측 편에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진 충무사가 있다. 

정유재란 말미에 치열한 전투로 수많은 왜군들이 목이 잘리고 불타 죽었을 순천왜성, 더구나 자신들의 나라도 아닌 바다건너 타국에서의 주검이었기에 구천을 떠돌았을 원혼들……. 이후 1세기가 지나도록 그 자리를 지키다가 100년 후 그곳에서 1km 정도 떨어진 곳에 마을이 생기자, 밤이면 밤마다 나타나 주민들을 괴롭히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원귀를 쫓기 위해 노력했지만 허사가 돼 마지막 방법으로 왜군들이 가장 무서워할 이순신 장군을 모시자는데 의견 통일을 보고 1690년 사당(충무사)을 짓고 위패와 영정을 모셨다고 한다. 이후, 신기하게도 마을에는 왜군들의 원귀가 침범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그래서 마을의 모습을 채 갖추기도 전에 충무사가 세워진 것이다.

하지만 약 300여 년이 지나기도 전인 1944년, 일제강점기 때 이곳은 일본인들에 의해 불태워졌다고 한다. 분개한 순천향교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곧바로 다시 지었던 것은 다행스런 일이며 이후 이순신 장군의 탄생일과 귀천일에 제향을 모시면서 극진히 모시고 있다.

그런데 왜군들의 악귀를 쫓기 위해 무섭게 그려놓았다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일본인들이 불태워 버린 이순신 장군의 영정은 어떤 능력을 가졌기에 그들이 패망을 앞두고 부리나케 태워버렸을까? 새롭게 그린 영정 앞에서 문득 그 모습이 보고 싶은 것은 어인 일인가?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바이크올레꾼 #순천시 #순천왜성 #충무사 #이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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