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일암 불탄 자리에는…
봄. 입춘이 지나고 한참. 남도의 봄은 빨리 온다. 아침 날씨가 흐리다. 버스를 타고 돌산도 향일암으로 향한다. 구불구불 섬 도로를 따라 가면 시원한 바다가 펼쳐지고 끝자락에서 버스는 멈춘다. 향일암으로 오른다. 많은 관광객들이 북적거린다. 봄기운을 받아 즐거운 표정이다.
향일암 바위틈을 지나 대웅전으로 오른다. 아! 대웅전은 얼마 전 불타버렸지. 노란 합판으로 벽을 친 임시 건물이 어색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다. 향일암은 슬프다. 불탄 흔적을 서둘러 없애려고 합판으로 벽을 치고, 함석으로 지붕을 얻었다. 이름도 대웅전 대신 원통보전으로 걸었다.
불에 타버린 절집을 단장하던 푸른 동백은 줄기만 앙상하게 남기고 팔들이 잘린 채 서있다. 백년 이상을 살았을 송악은 바위에 줄기만 남긴 채 붙어있다. 어떤 나무는 관음전 올라가는 발판으로 변신을 했다. 죽어서도 사람들의 편리를 위해 재활용되는 나무.
관음전으로 올랐다. 원효대사 수행 터가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아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이 아름다운 바다 앞에서 수행이 됐을까? 어느 관광객이 원효대사가 설총을 낳지 않았느냐고 이야기를 나눈다. 관음전 옆 해수관음상 앞에는 비구니 한분이 열심히 불공을 드린다. 나도 관음전에 합장을 하고 소원을 빌어 본다.
금오산 넘어 성두마을로 가는 길
금오산으로 오른다. 기암괴석. 바다와 어울려서 더욱 멋있다. 바위가 고독을 즐기듯 바다를 보고 서있다. 고적한 아름다움이 있다. 바다를 보고 선 바위. 바위사이로 바다가 아스라이 하늘과 맞닿아 있다. 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었으면 더 좋았을 걸…. 동백은 한 두 송이가 빨간 점을 찍어 놓듯 피어있다.
바위사이로 난 철 계단을 따라 올라간 작은 금오산 정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거나 앉아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좁은 바위 정상. 경치가 너무 좋아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산길을 내려오다 보면 삼거리가 나오고 금오산으로 오르는 길과 성두마을로 가는 길로 나뉜다. 봄 햇살을 잔뜩 받아 바스락거리는 길이 유혹을 한다. 왼편으로 산허리를 타고 난 길로 들어선다. 성두마을로 가는 길이다.
가파르게 깎아지른 산허리를 타고 가는 길은 바다를 옆에 끼고 오솔길을 따라가는 기분이다. 길과 어우러진 다도해 풍광이 너무 좋다. 비록 짧은 길이지만 얼마 전 인기리에 방영된 차마고도를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구르면 바다로 떨어질 것 같은 길. 협곡은 아니지만 바다를 보면서 가는 길이 너무나 좋다.
햇살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다를 보면서 상념에 잠긴다. 해무(海霧)가 아스라이 피어나는 바다. 봄날 햇살이 따뜻하다. 꿈결 같은 바다 풍경에 멀미가 난다. 바다는 웅웅거린다. 작은 어선들의 엔진소리는 은빛으로 반짝이는 봄날 햇살을 가른다.
갈매기가 교수형 당하는 방파제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성두마을이다. 성두마을은 돌산도 끝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포구를 낀 바닷가 마을 풍경이 다 그렇듯 비탈을 타고 자리 잡고 있다. 포구로 내려선다. 방파제가 크다. 방파제 위에는 새우와 작은 고기를 말리고 있다.
방파제 위를 걸어가다 섬뜩한 풍경을 본다. 갈매기가 교수형을 당했다. 긴 장대에 목을 묵인 채 다리를 쭉 뻗었다. 왜 그랬을까? 방파제 끝에서 말린 고기를 손질하는 할머니에게 물었다.
"갈매기 왜 걸어 놨어요?"
"저거 안 해노면 여기 널어 논거 천신도 못해. 저렇게 걸어놓으면 지 종족이 죽을 줄 알고 빙빙 돌기만 하지 내려오지를 않아."
먹고 사는 문제가 갈매기에게는 죽고 사는 문제가 되었다. 바닷가 사람들의 간절함이 느껴진다. 마을을 가로질러 도로로 올라선다. 골목길에 차부라고 쓴 글씨가 작은 웃음을 준다. 버스를 기다린다. 조용한 봄날. 밭두렁에 노란 민들레가 환하게 웃는다.
덧붙이는 글 | 2월 21일 풍경입니다. 성두마을은 향일암 뒷 마을입니다. 따뜻한 봄햇살 받으며 걸어가는 길이 너무나 좋습니다. 향일암이나 성두마을 가는 시내버스는 수시로 운행합니다.
2010.02.26 11:37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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