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30대 엄마들 "셋째 만드는 건 죄"

[10대 어젠다④- 보육] "아이 많이 낳아라"는 말 너무 싫어

등록 2010.03.03 09:53수정 2010.03.08 1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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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일하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 어린이집 끝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아이를 키우는 일은 쉽지 않다. 당장 어린이집 끝나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습니다.)남소연

"예전엔 '제 먹을 것은 갖고 태어난다'고 했지만, 요즘 세상에 돈 없이 애 낳는 것은 죄짓는 일 같다. 정책 믿고 셋째 낳는 사람 아무도 없다. (김애숙씨)"
"어린이집 끝나면 애들 맡길 데가 없다. '아이돌보미'라는 (베이비시터) 프로그램이 있는데 신청했더니 '당일에 오면 어떻게 하냐'고 하더라."
"티 안 내고 깎을 게 급식밖에 없다. 급식비리 터지고 우리가 촛불시위하니까 원장이 '이렇게 협조 안 되면 올 하반기 행사 안한다'고 하더라. 그게 할 소리냐? (김소영씨)"

2월 25일 낮 서울 동작구 상도동 언덕배기의 작은 가정집. 미취학 어린이를 기르는 이 동네 30대인 또래 엄마 3명이 모였다.

7살 두 쌍둥이를 지난 2월 어린이집에서 졸업시킨 김소영씨, 3살·7살 아이를 구립어린이집에 보내는 김수현씨, 4살·6살 아이를 민간 어린이집에 보내는 김애숙씨. 기자가 "보육시설은 어떻게 이용하고 있냐"고 첫 질문을 꺼내자 기다렸다는 듯 엄마들은 목소리가 높아졌다.

국가 지원받아도 3월 보육료는 85만 원

요즘 가장 고민이 많은 사람은 민간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김애숙씨. 국가가 지정한 기본 보육료는 6살인 큰 아이의 경우 약 17만 원. 국공립 시설과 큰 차이가 없다. 문제는 추가비용이다.

올해 들어 어린이집이 오후반을 영어수업으로 운영하기로 하면서 특별비용으로 22만 원 가량 추가되며 기본보육료는 약 40만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여기에 체육·수학·영어 등 특별활동비가 10만 원 추가된다. 한달에 들어가는 돈만 50만 원이 나온다. 다행히 작은아이는 소득별 지원과 두자녀 지원을 중복으로 받기 때문에 기본 보육료를 전액 국가에서 받을 수 있었고, 특별활동비만 8만 원을 낸다. 하지만 3월에는 김애숙씨 허리가 휜다. 차량운행비(형제 대상으로 9만 원)와 교재비(큰아이 18만 원) 등이 학기별로 청구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달에 김애숙씨가 어린이집에 내는 돈은 약 85만 원이다.

특별활동은 강제가 아니지만, 수업 도중 아이 혼자 남아있을 수 없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선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김애숙씨는 지난해 어린이집 앨범도 신청하지 못했다. 1년 동안의 모습을 틈틈이 찍어 만든 앨범은 27만 원이나 했다.


마침 집 바로 앞에 있는 구립 어린이집 6세반에 티오가 생겼다. 3년째 대기한 결과다. 그러나 김씨의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큰아이가 정든 선생님, 친구들과 헤어져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 아이가 "왜 전학가야 하냐"고 물어보면 할 말이 없다. 게다가 황금돼지해인 2007년에 태어난 둘째의 경우 티오가 나지 않아 형제가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아이들도 고생이지만, 아침저녁마다 두 어린이집을 오가야 하는 부모도 힘들다.


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사교육비가 있다. 엄마들은 "영재교육을 하려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스스로 배우고 싶어한다"고 강조했다.

김수현씨네 큰애는 특히 욕심이 많아서 태권도장을 다니고 영어·한문·주산·종이접기까지 한다. 발품을 팔아서 저렴한 문화센터를 이용해도 한 달에 17만 원이다. 그는 "애가 '미술도 하면 안 되냐'고 조르는데 '시간이 없다'고 설명했지만 사실 비용이 부담스러웠다,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소영씨네 쌍둥이는 한문 학습지 하나를 같이 푼다. 물론 학습지 교사는 "서로 배우는 속도가 다르다"고 난색을 표하지만 "(좀더 진도가 빠른 아이가) 반복 학습하면 된다"고 우겼다. 김애숙씨는 "작은애가 할 프로그램도 있는데 돈이 없어서 못 보낸다, 요즘엔 큰애에게 교육비가 몰리다보니 동생들은 바보 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한 복지관에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수업 중인 장면(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
경기도 군포에 위치한 한 복지관에서 영유아를 대상으로 한 수업 중인 장면(이 사진은 기사 내용과 특정 관련이 없습니다.)최은경

왜 아이 똥에 나오는 게 없을까

"엄마들 사이에서 '좋은 어린이집'의 기준은 뭐냐"고 묻자, 이들은 "일단 급식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마음 놓고 아이 보내기가 겁난다는 것이다. 김수현씨가 들려준 친구의 사례는 '꿀꿀이죽' 사건만큼은 아니지만 충격적이었다.

"먹는 게 똥에도 나오잖아요. 그런데 애가 어린이집 갈 때마다 똥에 나오는 것 없이 허옇더래요. 식단엔 당근·카레가 적혀있는데, 하도 이상해서 불시에 어린이집에 4번 찾아갔더니 그 때마다 반찬도 안 주고 건더기도 별로 없는 국물에 밥만 말아 먹였다는 거예요. 결국 선생님들 반찬을 싱크대에 버리고 화낸 다음에 어린이집 옮겼대요."

남 얘기가 아니다. 바로 이 동네에서도 어린이집 급식비리가 터졌다. 재작년 감사결과 음식의 질과 양을 낮춰서 예산을 남긴 시설 3곳이 적발된 것이다. 부모들이 촛불집회에 나섰고 원장은 결국 어린이집을 떠났다.

자식 맡긴 부모 입장에서 시설과 맞서기는 쉽지 않았다. 궁지에 몰린 원장은 "이런 식으로 협조가 안 되면 올 하반기 행사는 아무것도 없다"고 엄포를 놓았고, 실제로 크리스마스 잔치도 열지 않았다. 불안해진 아이들은 "원장님 어디 갔어? 선생님들 왜 울어?"라고 묻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아프셔서 그래"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래도 공휴일이나 저녁에 급한 사정이 생기면 보육시설이 절실해진다. 아이돌보미 프로그램은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한다. 갑자기 일이 생겨서 이웃의 도움을 요청할 수 없는 비상상황에서는 속수무책이다.

김수현씨는 2년 전, 둘째아이가 병원에 입원했을 때가 가장 큰 고비였다. 하루 종일 4개월짜리 갓난아기를 돌봐야하는데 큰애를 맡길 데가 없었다.

당시 김씨는 일부러 아기를 밤늦게까지 재우지 않았고, 오후에 어린이집이 끝날 때쯤 아기를 재운 뒤 큰애를 병원에 데려왔다. 마음이 급한 엄마는 "숨차서 못 가겠다"는 아이를 질질 끌고다니면서 매일 어린이집과 병원 사이를 뛰었다. 일주일 뒤 그는 의사에게 "여기 더 있으면 나랑 큰애가 죽을 것 같다"고 말하고 서둘러 작은아이를 퇴원시켰다.

"엄마, 원장님은 어디 갔어?"

이래저래 불만 많고 할 말 많은 엄마들이 오는 6월 지방선거에게 출마하는 후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김애숙씨는 "어린이집을 감시할 기관이 있어서 정규적으로 관리해주면 더 믿음이 갈 것"이라고 말했고, 김소영씨는 "여성 정치인이라야 이런 현실을 더 제대로 알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아무도 지방선거에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선거 때마다 공약은 나오지만 실제로 좋아진 것은 없다는 것이다.

김애숙씨는 "요즘 세상에 돈 없이 애 낳는 것은 죄 같다"고 잘라 말했다. 김수현씨는 "셋째아이 보육료는 전액 지원한다고 알았는데, (소득에 따라 지원액수가 달라서) 셋째 낳은 내 친구는 지금 50%만 지원받고 있다"면서 "'애 많이 낳아라' 하는 말 너무 싫다, 나라가 해주는 게 뭐가 있냐"면서 덧붙였다.

여성단체 활동가들도 보육 문제로 고민... "활동 그만둬야 하나"

올해 3.8여성대회의 주요 슬로건은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사회'다. 오는 6일 대회 현장에서는 '출산파업선언' 퍼포먼스도 한다. 상징적 수준의 행사가 아니라 가임기 여성들이 실제로 출산파업을 다짐하는 행사다.

그러나 여성단체 활동가조차 육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여성단체에서 임신과 출산으로 인한 불이익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출퇴근 시간이나 육아휴직도 자유롭다. 그러나 보육시설은 단체 차원에서 해결해줄 수 없는 문제다.

박차옥경 한국여성단체연합 사회권국장은 "보육 문제로 고민하는 회원들을 만나고 싶다"는 기자의 요청에 "바로 내가 당사자다"면서 쓰게 웃었다. 그는 매일 30분 거리의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긴 뒤 출근을 하고 있다.

유일영 활동가는 최근 이사한 경기도 고양시에서 운 좋게 구립 보육시설에 당첨됐다. 여기에 7살짜리 딸을 맡기면 종일반 기본보육료가 12만 원이고 급식비도 4만 원으로 저렴했다. 문제는 종일반조차 오후 4시면 끝난다는 것이다. 심지어 3월 적응기간에는 오전 11시 반에 일찍 프로그램을 마친다.

유 활동가는 "아무리 일찍 집으로 날아가도 저녁 7시인데, 보통 그보다 훨씬 늦게까지 일한다"고 말했다. 여성대회를 앞둔 요즘은 퇴근시간이 밤 10~11시다. 남편도 아이를 돌볼 수 없는 날에는 결국 친정엄마에게 SOS를 칠 수밖에 없다.

결국 그는 '로또 됐는데 당첨금 못 받는 기분'으로 구립 시설을 포기하기로 했다. 민간 보육시설은 기본 보육비(25만 원)에 특별활동 등이 추가돼 45만~50만 원이 들어간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방과 후나 방학 동안 갈 곳이 학원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휴직도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에서도 "네가 그만두는 게 낫다, 남편이 일 그만두면 단체에서 주는 월급으로 먹고살 수 있냐"고 조언한다고 했다.

직장을 그만두고 아이를 기르다가 우연히 여성단체를 알게 됐다는 그는 "지금 일이 너무 행복하고 우리 딸에게도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기하기 싫다"고 말했다.
#보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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