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위건 부두로 가는 길?
한겨레 출판
1936년 영국 탄광 지역 광부들과 실업자들의 삶을 치밀하고 생생하게 묘사했다는 오웰의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을 읽으며 1980년대 강원도 탄광 지역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50여 년 전, 영국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막장에서 탄을 캐내며 삶을 이어갔던 80년대 광부들의 삶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과 함께.
탄광 쓰레기, 잿빛 진흙탕, 지독한 추위, 시커먼 눈 더미, 슬럼가의 회색빛 집들…. 오웰의 눈에 비친 당시 영국의 탄광 지역 모습이다. 80년대 강원도 탄광지역 모습은 어땠을까. 낡은 성냥곽 모양으로 줄지어 있던 광부들의 사택, 아침이면 줄지어 서던 공중 화장실, 산에도 들에도 지붕 위에도 골고루 내려앉던 시커먼 탄가루, 기차를 타고 이 지역을 지나던 어떤 정치인은 줄지어 선 사택을 보면서 저곳이 돼지 기르는 곳이냐고 물었다는 일화도 있었다.
광부들은 다른 직업에 비해 사고율이 워낙 높아서 대단찮은 전쟁만큼이나 사상자가 나는 것을 당연시한다. 매년 광부 900명 중 하나 꼴로 목숨을 잃으며, 여섯 명 중 하나가 상해를 당한다. 물론 상해의 대부분은 심한 정도가 아니나, 적지 않은 부상자는 완전 불구가 된다. (책 속에서)80년대 말 탄광지역 학교에서 근무하던 내게 탄광 사고는 결손가정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탄광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해 아버지를 잃은 아이, 사고로 다쳤거나, 진폐증에 걸려 노동력을 완전히 상실한 채 사는 아버지를 둔 아이, 그런 환경을 견디다 못해 어머니까지 집을 나가버려 새벽에는 신문 배달하고, 저녁에는 식당 일을 하며 학교 다니는 아이….
아무 연락도 없이 결석을 하는 아이가 있어 집을 찾아간 적이 있다. 아이는 가출해서 없고 진폐증에 걸려 누워 있는 아버지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말로만 듣던 진폐증 환자를 그때 처음 보았다. 탄광에서 일하다 얻은 진폐증. 코로 입으로 들어온 석탄가루가 몸 속에 쌓여 생긴 병.
아이 아버지는 조금만 가파른 언덕도 숨이 차 올라갈 수 없다고 했다. 이렇게 망가진 몸으로 생활하다보니 아이가 집을 나갔다며 내 손 붙잡고 애원을 했다. 마음 같아선 어디 있는지 찾아가서 잡아오고 싶은데 몸이 망가져 그럴 수 없어 죄송하다고,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강원도 탄광마을에서 5년 동안 살면서 많은 걸 보고 겪었지만, 막장에 들어간 적은 없다. 다만 내가 머물던 집 주인 아저씨도, 옆집 아저씨 또 그 옆집 아저씨도 막장에서 일을 했고, 어쩌다 술자리에서 만나면 술 따라 잔 부딪치며 간접적으로 막장 얘기를 가끔 들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