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보이지 않는 손'

[딜레마의 경제학1] '시장'의 창시자, 아담 스미스의 딜레마

등록 2010.03.09 17:05수정 2010.03.09 17:38
0
"위대한 국민이 최선을 다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생산하고자 할 때, 또한 자신의 자본이나 산업을 자기 이익 추구를 위해 사용하고자 할 때 이를 막는 것은 인류의 가장 신성한 권리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이다."(국부론)

"같은 상품 분야에서 장사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만나지 않는다. 어쩌다 만나면 대중을 속이거나 교묘한 담합으로 가격 상승을 유도할 음모로 이들의 대화는 끝이 난다. 그렇게 해서 상당기간 유착관계가 지속되는데, 이때 정부는 어느 정도 대응책을 마련할 책임이 있다."(국부론)

"보이지 않는 손(시장기구)은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일 수 있다."

a  영국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고전경제학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다. 아담 스미스 생존 당시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제학이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은 <국부론>이 발간된 1776년 이후이다.

영국의 작은 항구도시에서 태어난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1790)는 고전경제학의 시조라고 알려져 있다. 아담 스미스 생존 당시에는 경제학이라는 학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경제학이 체계적이고 독자적인 학문으로 자리잡은 것은 <국부론>이 발간된 1776년 이후이다. ⓒ 위키피디아

좌파 이론가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아닙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고 미국 클린턴 행정부 경제자문위원장, 세계은행(IBRD) 수석 부총재 등을 역임한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 대학교 교수가 한 말입니다. 그의 경력을 대충만 살펴보아도 그가 자본주의 경제학에서 가장 권위 있는 주류경제학자 중 한 사람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지난 1월 2일 열렸던 전미경제학회(AEA) 개막연설에서 "기존 경제학의 가정들이 틀렸다"며 '합리적인 경제주체'들의 행위에 근거한 '시장의 효율성, 경쟁성'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아담 스미스 이래 '만고의 진리'로 인식되어 온 자본주의 경제학의 가장 근본적이며 기초적인 명제를 부정한 것입니다. 순간 그 자리에 모였던 수천 명의 쟁쟁한 경제학자, 교수들의 입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고 합니다. "이제 무엇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것인가"하는 답답한 토로와 함께 말입니다.

전미경제학회(AEA)는 1만8천여 명의 경제학자, 교수, 전문가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는 미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단체입니다. 회원들 중에는 역대 노벨상 수상자, 미국 대통령의 경제자문위원, 미국 중앙은행 및 월가는 물론 각종 국제기구의 고문과 전문가들이 다수 포진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미국은 물론 세계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지탱하는 최고의 이론가, 전문가 집단입니다.

매년 개최되는 연례 총회는 새로운 경제이론이나 분석 모델 등을 소개하고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자신들의 학문적 토대, 나아가 부와 명성의 근거가 되고 있는 기본 명제를 부정하는 발언이 터져 나왔을 때, 그 자리에 모인 석학들이 느꼈을 당혹감과 좌절감을 우리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손'의 창시자인 아담 스미스를 소환하여 그에게 직접 해명을 듣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아담 스미스는 살아날 수 없으며, 더욱 유감스럽게도 많은 자본주의 경제학자들이 아담 스미스의 유지를 '일부'만 '왜곡되게' 활용해 왔다는 사실을 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경제학의 물과 기름, 자유경쟁과 독점


경제학에 아담 스미스가 미친 영향은 지대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부론>을 통해 밝힌 '분업화된 효율적인 노동'과 '자유로운 시장경쟁'이 부의 원천이라는 주장이겠지요.

"개인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뿐이며 이러한 이익 추구는 개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손'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저절로 사회의 이익도 추구되는데, 이 경우 처음부터 의도적으로 사회의 이익을 추구하려 노력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국부론)

한번쯤은 들어봤을 이 문장은 아담 스미스의 '시장' 이론의 핵심에 해당합니다. 그의 말대로라면 모든 개인들이 자신의 이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도록 '자유롭게' 보장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것을 막는 것은 인류의 가장 신성한 권리에 대한 명백한 위반 행위"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 지점이 주류경제학에 있어서 가장 골치 아픈 난제의 출발이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를 살펴보기 위해 역시 아담 스미스의 '핀 공장' 이야기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담 스미스는 기계를 갖추지 못한 노동자는 하루에 한 개 밖에 핀을 만들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기계를 갖추고 분업이 이루어지는 현대 공장은 어떨까요.

"한 사람은 철선을 늘리고, 다음 사람은 바르게 펴고, 셋째 사람은 자르고, 넷째 사람은 뾰족하게 만들고, 다섯째 사람은 핀 머리를 붙이기 위해 끝을 간다.…나는 이런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는 겨우 열 명이 일하고 있었고…열 명의 직공은 하루 4만8천 개 이상의 핀을 제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무려 4800배의 차이가 발생합니다.

이 공장에서 생산된 핀은 그렇지 않은 조건에서 생산된 핀보다 훨씬 싼 가격에 판매할 수 있을 것이고 결국 시장경쟁을 통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핀 제조업자들을 시장에서 몰아내게 됩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소수 제조업자들에게 시장이 독점되는 것이 불가피해지고 자유로운 시장경쟁은 사라지게 됩니다.

그렇다면 독점은 시장경쟁의 자연스러운 귀결일까요? 개인의 이익 추구를 보이지 않게 사회적 이익으로 환원시킨다는 시장이 그 자유로운 경쟁의 결과 '자유경쟁' 자체를 왜곡하게 된다는 딜레마를 아담 스미스는 결국 풀지 못했습니다.

자본가를 혐오한 자본가의 스승

그래서 그는 "대중을 속이거나 교묘한 담합으로 가격 상승을 유도할 (자본가들의) 음모"에 대해 정부가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충고했습니다. 흔히 아담 스미스의 이론을 '자유방임주의' '야경국가론'으로 귀결시키지만, 오히려 그는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몇몇 개인의 자유 행사는 정부 법률로 제한되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사회 전체의 안정을 위협하는 주범이 '자본가 계급'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 계급이 제안하는 상업적 법률, 규제들에 대해서는 항상 큰 경계심을 가져야 하며, 오랫동안 신중하게 검토한 뒤 채택해야 한다"는 경고를 잊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과 결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으며, 심지어 사회를 기만하고 억압하는 것이 그들의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시대로 들어와서 대부분의 정부는 아담 스미스의 경고를 귀담아 듣지 않았습니다. 정치인과 정부 관료들의 주머니를 자본가들이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시장 경쟁'이라는 이름하에 자본가들의 노동착취를 보장했으며, 똑같은 명분으로 노동자들의 단결을 억압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시장으로의 자유로운 진입'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며 '아동노동금지법'의 시행을 반대하였습니다.'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라'는 슬로건으로 거대독점자본의 출현을 방기했으며, '시장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며 공기업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

시장 원리에 따라 자유롭게 상품을 생산,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그에 따라 화폐나 기업,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자유롭게 누려야 할 공공의 권리마저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완벽한' 시장이 만들어졌습니다. 자연조차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만들었으며, 부동산대출채권을 금융상품으로 변신시키는 시장 질서를 구축해 왔습니다. 이제 시장은 자본마저도 감당할 수 없는 '리바이어던'으로 변신하였으며 현대 사회의 '초권력'이 되었습니다. '시장'에 대한 '왜곡된' 맹신에 근거해 살아왔던 신자유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시장'의 존재가 21세기 최대의 딜레마가 아닐까요?

가치는 노동에서 나온다

a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성경 욥기에 나오는 강력한 바다괴물이다. 홉스는 동일한 이름의 책을 통해 국가를 이에 비유하였다. 한손에는 절대 권력(칼)을, 또 다른 손에는 종교적 권력(지팡이)을 쥔 강력한 국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사는 시장은 종교와 정치를 압도하는 괴물이 되었다.

리바이어던(Leviathan)은 성경 욥기에 나오는 강력한 바다괴물이다. 홉스는 동일한 이름의 책을 통해 국가를 이에 비유하였다. 한손에는 절대 권력(칼)을, 또 다른 손에는 종교적 권력(지팡이)을 쥔 강력한 국가는 수많은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자본주의 시대에 와서 수많은 사람들의 욕망을 먹고사는 시장은 종교와 정치를 압도하는 괴물이 되었다. ⓒ 리바이어던

<국부론>의 원래 제목은 <국부의 본질과 원인에 대한 연구>입니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국가의 부는 토지(중농주의)나 무역(중상주의)에서 나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아담 스미스는 국가의 부가 토지나 금, 은이 아니라 분업화된 효율적인 노동과 자유로운 시장경쟁 체제에서 나온다고 보았습니다.

노동을 통해 상품의 가치가 만들어진다는 그의 생각은 리카도를 거쳐 맑스에게 전달됩니다. '상품의 가치는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투여된 사회적 노동시간의 양'과 같다는 맑스의 이론은 아담 스미스로부터 이어져 온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다만 아담 스미스가 과학적으로 해명하지 못했던 문제, 이윤이 어디서 나오는가 하는 문제를 맑스는 '잉여가치' 개념을 통해 밝혀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담 스미스와 맑스는 노동의 가치를 가장 중요한 사회적 가치로 인정한 사람들입니다.

시장에서 자유롭게 경쟁하며 경제활동을 하는 아담 스미스의 '이기적인 개인'과 자발적으로 연합을 이루어 공동체를 구성하는 맑스의 '자유로운 개인'은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구성원 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사회는 결코 번영하고 행복할 수 없다."는 아담 스미스의 말을 염두에 둔다면 그의 사상은 '소수만 살아남는 정글'이 아니라 '전체의 행복'을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맑스의 사상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글쓴이 주
신약성경 디도서 1장12절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그레데인 중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이 증언이 참되도다."

사도 바울의 제자였던 디도는 이처럼 '항상 거짓말'만 하는 그레데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여 신의 교회를 세운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레데인 선지자가 한 말에 따르면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인데 그렇다면 그 선지자의 말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그의 말이 참이라면 그 역시 거짓말쟁이가 되어 그가 한 말은 거짓말일 것이고, 그의 말이 거짓이라면 이 역시 거짓말을 한 것이 됩니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역설 또는 이율배반이라고 합니다.

경제학은 물론 인간의 역사에는 수많은 역설과 딜레마들이 등장합니다. 그 자체로 모순적인 가설인 경우도 있지만, 당시 인식(과학)의 한계나 시대적 상황 때문에 해결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또는 이론적 가설만으로 인간의 행동이나 사회현상을 모두 예측하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한편 이러한 역설과 딜레마는 경제학이 직면한 고민과 문제의식을 담고 있기도 하며 '완전한 이론'은 없다는 것을 반증하기도 합니다.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막스 플랑크가 "과학은 과거에 대한 장례식을 하나씩 치르며 발전해간다."고 말한 것도 이런 의미일지 모릅니다.

'딜레마의 경제학'은 경제학의 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또는 명제화된 역설과 딜레마를 소개합니다. 이를 통해 조금은 쉽고 흥미롭게 경제에 접근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복잡한 수식과 난해한 그래프는 경제학자들에게 맡기고 당대를 주름잡았던 경제학자들의 고민의 단편을 즐겨보시기 바랍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2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월간 <노동세상> 2월호(www.laborworld.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딜레마의 경제학 #아담 스미스
댓글

노동자의 눈으로 본 세상, 그 속엔 새로운 미래가 담깁니다. 월간 <노동세상>


AD

AD

AD

인기기사

  1. 1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집 정리 중 저금통 발견, 액수에 놀랐습니다
  2. 2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한전 '몰래 전봇대 150개', 드디어 뽑혔다
  3. 3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저는 경상도 사람들이 참 부럽습니다, 왜냐면
  4. 4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국무총리도 감히 이름을 못 부르는 윤 정권의 2인자
  5. 5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한달이면 하야" 언급한 명태균에 민주당 "탄핵 폭탄 터졌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