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볼수록 재주가 좋으시다. 어쩌면 이렇게도 신선하고 참신한 방식으로 옷을 벗을 수도 있을까
김수복
지난 번 다녀간 옥천의 누이가 사다준 오리털 조끼였다. 재질이 폴리에스텔인데다가 새 것이라서 움직이면 절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사물이나 사람에 대한 식별력이 거의 사라져 버린 와중에도 어머니는 그것이 '딸년'의 선물이라는 것을 명료하게 인식하는 것 같았다. 낮이나 밤이나 당신의 몸에서 떼어놓으려 하지를 않았다. 잘 때도 입은 채로 누웠고, 어쩌다 무심히 벗었다가도 이내 도로 껴입고는 했다.
문제는 다른 옷에 비해 단추 구조가 복잡하다는 점이었다. 한 번에 쓱 채울 수 있는 지퍼가 있고, 지퍼 사이로도 바람이 못 들어가게 여밀 수 있는 똑딱단추가 또 있는데 이 단추는 일단 채웠다 하면 여간한 힘으로는 잘 풀리지가 않았다. 게다가 주머니마다 또 하나씩의 지퍼가 달려 있었다. 어머니는 뭐랄까 결벽증이라고나 할까. 어떤 옷이든 입었다 하면 단추를 반드시 채워야만 직성이 풀리는 쪽이었다.
그래서 평소에는 내 손으로 이 모든 지퍼와 똑딱단추를 채워드리곤 했지만, 잠이 자고 싶어서 안달이 난 나는 도무지 손끝 하나 움직이고 싶지가 않아서 누운 채로 그저 보고만 있었다. 조끼를 벗어다가 입었다가 도로 벗어놓고 엎었다가 뒤집었다가 아주 신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어머니를 한참이나 보고 있던 내 속에서 뭔가가 꿈틀꿈틀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잠을 포기한 채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슬그머니 일어나서 어머니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하고 있었다.
"아니 그것을 왜 꼭 채우려고 해? 어디 가? 아들 두고 여행 떠나려고?""아니 그것이 아니라,""그러면 추워? 추워서 그래? 하나도 안 춥고만.""아따 요놈의 잡것이 참말로, 으째서 이렇게도 말을 안 들을까? 요것이 나를 시삐로 본 모양이여, 잉? 그러냐. 참말로 그런 것이여?"어머니에게 조끼는 이제 하나의 인격체가 되어 있었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그러지 말라고 달래보고, 아따 이 잡것아, 짜증스럽게 나무라기도 하면서 어머니는 똑딱 단추 하나를 간신히 어떻게 채워놓고는 지퍼를 올리려고 하는데 그것이 도무지 올라가지를 않는다. 게다가 오른쪽 1번 수컷 똑딱이를 왼쪽 3번 암컷 똑딱이에 맞춰버린 탓으로 행동마저 불편해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아주 이상하다는 듯이, 세상이 왜 이렇게 갈수록 꼬이고 어려워지느냐는 듯이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해 보고 오른쪽으로 갸웃해 보고, 왼팔을 높이 들어보기도 하고 오른팔을 앞뒤로 내저어보기도 하고, 한참을 그러다가 마침내 중요한 것을 발견했다는 듯 조끼를 머리 위로 올려서 훌렁 벗어놓고는 맞춰보기 시작한다. 방바닥에 조끼를 편편하게 펴놓고 이것을 이렇게 맞춰보고, 저것을 저렇게 맞춰보고, 그러다가 이윽고 똑딱이 단추의 짝이 서로 어긋났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오호라 이놈, 소리도 경쾌하고 신나게 잘못 맞춰진 똑딱이 단추를 확 풀어낸다.
"오빠? 한동안 그 소리 안 하더니 또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