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꽂이스승의 마음 같은 선물.
박성필
(급하게 글을 쓸 때를 제외하곤) 비교적 잘 정리되어 있는 제 책상 위에 단아하게 놓여있는 물건이 있습니다. 바로 나무로 만들어진 '연필꽂이'입니다. 그리 오래된 물건도, 값나가는 물건도 아닙니다. 그저 깔끔하게 정리된 나뭇결에, 흐릿하게 난초 그림이 보일 뿐입니다. 아마 5년 전쯤에 받은 선물로 짐작됩니다.
학부 시절, 저는 어느 교수님의 방에서 잠깐 더부살이를 한 적이 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어딘가를 다녀오시면서 연필꽂이를 두 개 사오셨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먼 길에서 사온 연필꽂이 중에 하나에 금이 가있는 겁니다. 나무로 만들어진 까닭에, 나뭇결을 타고 금이 쫙 갔던 것이지요.
선생님께서도 속상한 마음을 숨기지 않으셨지만, 금이 가지 않은 온전한 연필꽂이를 제게 주시며 쓰라고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순간, "그냥 망가진 것 주셔도 되는데"라고 생각했습니다만,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것이 '스승의 마음'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연필꽂이, 사실 이제는 별로 쓸모없는 물건일 수도 있습니다. 거의 모든 글은 노트북을 사용하여 집필하다 보니 연필․볼펜은 크게 사용할 일이 없죠. 그래서 제 연필꽂이 역시 그 자체로 불필요해진 존재이며, 불필요한 존재들이 흩어지지 않게 역할만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만, 저는 이 존재가 '스승의 마음'으로 보입니다. 당신은 금이 간 걸 가지시면서, 제자에게는 온전한 물건을 주고 싶으셨던 그 마음. 아마 그 마음이 있어 부족한 사람이 이만큼이라도 공부할 수 있었던 게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또 다른 선물 하나―새벽기도 같은 선물가끔 왜 그런 친구 있지 않습니까? 자주 만나지는 않아도 반가운 친구. 1년만에 문득 전화해서는 '뭐하냐?'고 태연히 묻는 그런 친구 말입니다. 제게는 그런 친구 같은 물건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책갈피입니다. 책 읽는 습관이 유달라 저는 책갈피를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저 메모가 필요하면 연필로 쭉 밑줄을 치면 그만이고, 다시 봐야 할 부분이면 책장을 꾹 접어놓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책갈피라는 게 책에 꽂혀 있으면 발견하기 어렵고(?), 책을 읽는 동안은 거치적거리는 게 영 불편합니다. 그런데 유독 아끼는 책갈피가 하나 있습니다. 어머니 후배분이 7~8년 전, 일본에 다녀오시면서 사다주신 책갈피입니다. 이제는 부분적으로 녹도 슬고,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책갈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