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상들의 한이 서린 역사와 저항정신을 함께 느낄 수 있는 ‘동래독진대아문’
조종안
'동래독진대아문'은 부산에 남아 있는 전형적인 관아의 대문으로, 1626년(인조 4년)에 동래부사 정양필이 동래부 청사의 동헌 앞에 대문으로 세운 것으로 추정하며, 망미루 뒤쪽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현재의 금강공원으로 옮겼다고.
1700년(숙종 26년)에 중수하였고, 1870년(고종 7년)에 중건된 '독진대아문'에는 어린 왕자 때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시련을 겪은 효종(1656년)이 북벌을 계획하며 동래부의 군사권이 경상좌병영(慶尙左兵營) 휘하에서 독립한 동래독진임을 알리는 현판이 정면 중앙에 걸려 있다.
'독진대아문' 왼쪽 기둥에는 동래부가 변방을 지키는 병마절제사의 영(營)임을 밝히는 '진변병마절제영'(鎭邊兵馬節制營)이, 오른쪽에는 동래부가 일본과의 외교를 맡아보는 관아라는 뜻의 '교린연향선위사'(交隣宴餉宣慰司)란 현판이 걸려 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소슬 지붕과 홑처마 3칸으로 중앙의 무고주(無高柱) 위에 '삼량 초익공'(三梁 初翼工)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규모는 작지만, 흔하지 않은 3문 형식의 아문 건물 중 하나라고 한다. 1971년 부산시에 의해 해체 복원 공사가 이루어졌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