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둥이 손 한 번 스쳐 지나가면 17만원

등록 2010.03.26 10:27수정 2010.03.2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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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집이나 집 안에 있는 가전제품을 망가뜨리는 대장이 있습니다. 우리 집은 막둥이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망가뜨릴 가전제품도 없습니다. 지난 14일 막둥이는 우리 집에서 컴퓨터만 빼고 가장 값나가는 디지털카메라를 신나고, 재미있게 망가뜨렸습니다. 창틀에 빗물새는 바람에 실리콘으로 아빠가 메우는 모습을 엄마가 사진으로 찍었는데 그것을 참지 못하고 자기도 찍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사진을 찍기보다는 렌즈 돌리는 것을 더 좋아했는지 그냥 돌려버린 것입니다. 결국 '렌즈에러'문구만 선명한 LCD화면을 보면서 막둥이를 제외한 우리 가족은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정말 그날은 얼마나 화가났는지 모릅니다. 컴퓨터와 TV 보기를 금지시켰습니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로 찍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렌즈 에러, 카메라 재시작'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지털 카메라. 휴대전화로 찍어 글자가 잘 보이지 않지만, '렌즈 에러, 카메라 재시작'이라는 글씨가 보인다. 김동수

지난 2008년 9월쯤에 구입해 이제 1년 6개월 밖에 사용하지 않은 디카를 망가뜨렸으니 새로 구입할 수도 없었습니다. 결국 A/S를 신청하기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렌즈에러라 수리 비용이 얼마 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22일 서비스센터에서 전화가 왔는데 수리비가 17만 원쯤 든다는 것입니다. 어디어디가 고장났다면서 부품 전체를 교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렌즈를 누가 돌렸나요?"
"예 우리 집 막둥이가 렌즈를 돌려버렸습니다."

"그렇군요. 렌즈를 돌려주는 기어만 고장난 것이 아니라 전체가 다 고장났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수리비가 얼마 정도 듭니까."
"17만 7천원입니다."
"예! 17만 7천원이나 들어요."

"예 부품을 통째로 다 교체해야 합니다."
"10만원쯤 보태면 새제품을 구입할 수 있겠네요. 아내와 한 번 상의하고 결정하겠습니다."

4~5만원만 들이면 수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17만 7천원이나 든다는 말에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아내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깜짝 놀라는 것입니다.

"여보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카 수리비가 17만 7천원이래요."
"예, 17만원 7천원이나요."

"어떻게 하지. 10만원 정도 보태면 새로 살 수 있는데."
"디카 산 지 1년 6개월 밖에 안 되었는데. 그냥 고쳐 쓸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요. 고쳐 쓸 수밖에."


17만 7천원이면 우리 집 한 달 생활비 절반입니다. 막둥이는 단 한 번에 우리 집 생활비 절반을 하늘에, 아니 디지털 카메라 회사에 갖다 바쳤습니다. 수리비 명세서를 보면서 마음이 씁쓸했습니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카 수리비가 17만 7천원이 선명합니다.
막둥이가 망가뜨린 디카 수리비가 17만 7천원이 선명합니다. 김동수

4년 전에 냉장고 문을 타고 놀다가 망가뜨려 문 자체를 교환했습니다. 그 때 가격이 17만원이었습니다. 이렇게 막둥이 손을 한 번 스쳐 지나간 가전제품은 수리비만 17만원입니다. 망가진 지 11일만에 디카가 우리 집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디카가 우리 집에 다시 돌아왔다는 말에 막둥이는 좋아라고 합니다.


"김 막둥이 디카가 병원 다녀왔다."
"디카가 병원을 다녀왔다구요."
"막둥이가 망가뜨렸잖아. 사람도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디카가 네가 망가뜨려 아프니까 병원에 갔다 온 것이지. 병원비 얼마 들었는지 알아."

"잘 모르겠어요."
"17만 7천원 들었다.
이제 어떻게 할래?"
"아빠 말씀 잘 들을게요."

"디카 뿐만 아니라 다른 것 제발 망가뜨리지 말아라. 알겠어."
"예 알았어요."


하지만 이 말을 얼마나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형과 누나는 아무리 만져도 망가뜨리지 않는데 막둥이는 아닙니다.

막둥아 아빠가 정말 부탁한다. 앞으로는 제발 가전제품 망가뜨리지 말아다오.
#막둥이 #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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