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마주하며선생은 무슨 생각에 잠기셨을까?
박주현
일제 강점기인 1930~1940년대 조선의 유서 깊은 가문 '매안 이씨' 문중에서 무너져가는 종가를 지키는 종부(宗婦) 3대와 이씨 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 사람들의 평평한 삶을 그린 소설이 그토록 많이 읽힌 이유를 새삼 깨닫게 된다.
몰락해 가는 한 양반가의 며느리 3대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힘겨웠던 삶의 모습과 보편적인 인간의 정신세계를 탁월하게 그려냈던 그 방대한 <혼불> 작업의 힘이 어디서 솟아났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처음 소설을 읽다 보면 혼례와 상례의식, 정월대보름 등의 전래풍속을 너무 세밀하게 소개해 놓아갈수록 흥미를 돋운다. 또 지역의 방언을 풍부하게 구사하여 민속학·국어학·역사학·판소리 분야까지 두루 섭렵할 수 있다.
"우리가 인간의 본원적 고향으로 돌아갔으면 한다"는 작가의 말이 고스란히 표출된 <혼불>에는 특히 호남지방의 세시풍속, 관혼상제, 노래, 음식 등을 생생한 우리 언어로 복원해내 '우리 풍속의 보고, 모국어의 보고'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통적인 소재, 유교적인 이데올로기, 지역민속지적 기록 그리고 가문사 등이 어울린 민족학적 서사물 또는 자연서사물'로, 소설가 이청준은 '찬란하도록 아름다운 소설'로, 유종호는 '일제 식민지의 외래문화를 거부하는 토착적인 서민생활 풍속사를 정확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으로 평가하는 등 1990년대 한국문학사 최고의 걸작으로 꼽힌 소설이다.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봄 향기 가득한 연분홍 꽃들.
박주현
"쓰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나는 때때로 엎드려 울었다. 그리고 갚을 길도 없는 큰 빚을 지고 도망 다니는 사람처럼 항상 불안하고 외로웠다."
선생이 생전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고뇌를 표현한 글이다. 덧붙여 "나는 일필휘지(一筆揮之)란 걸 믿지 않는다. 원고지 한 칸마다 나 자신을 조금씩 덜어 넣듯이 글을 써내려갔다"고 한 대목에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려는 아름다운 정신과 숨결이 읽힌다. 또 소설 <혼불>을 쓴 이유에 대해서도 선생은 이렇게 적시했다.
"그것은 근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그 윗대로 이어지는 분들은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가를 캐고 싶었다. 웬일인지 나는 원고를 쓸 때면, 손가락으로 바위를 뚫어 글씨를 새기는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그것은 얼마나 어리석고도 간절한 일이랴. 날렵한 끌이나 기능 좋은 쇠붙이를 가지지 못한 나는, 그저 온 마음을 사무치게 갈아서 손끝에 모으고, 생애를 기울여 한 마디 한 마디, 파나가는 것이다."선생의 글을 잃다보면 역사 속 삶의 고통의 무게가 절로 느껴온다. 오죽했으면 선생은 <혼불> 완간 4개월을 앞두고 난소암에 걸렸으나 주변에 알리지도 않은 채 오로지 집필에만 매달린 끝에 1996년 12월 완간, 2년 뒤인 1998년 12월에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후에도 이 작품으로 단재상 문학부문, 세종문화상, 여성동아 대상, 호암상 예술상 등을 받았다.
선생은 <혼불>을 통해 한국인의 역사와 정신을 생생하게 표현함으로써 한국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몌별(袂別)>, <만종(晩鐘)>, <정옥이>, <주소> 등의 단편도 썼지만, <혼불>에 쓰기 시작한 이후로는 다른 작품을 쓰지 않았다.
이러한 선생의 뜻을 기리기 위해 1997년 7월, 각계 인사들이 모여 작가 '최명희와 혼불을 사랑하는 사람들 모임'이 결성되었고, 1999년에는 전북 남원시 사매면 노봉마을에 작가를 기리는 문학마을인 '혼불마을'이 조성됐다.
"지하의 뿌리한테는, 꽃 피고 새 운다는 지상이 오히려 흙 속"
▲혼불 전주시 덕진동 한국소리문화의전당과 덕진공원 사이에 있는 최명희의 '혼불문학공원'.
박주현
소설의 배경인 남원에 이어 선생의 생가가 있는 전주시는 혼불기념사업회와 함께 2000년 이곳 전주시 덕진동 선생의 묘역에 작고 아름다운 '혼불문학공원'을 조성했다. 산책로 바닥재는 크고 작은 통나무를 빽빽이 심어 걷기에 좋을 뿐 아니라 미감이 뛰어나다.
주변에는 반원형으로 10개의 안내석이 <혼불>에 나오는 중요 흔적들을 담았다. 후배작가들이 <혼불>과 선생의 어록 중에 가려 뽑아 새긴 것이라고 한다. 평소 작가의 뜻대로 조촐하되 누구나 편안히 쉬어갈 수 있는 예쁜 공간이다.
▲돌 or 책?돌에 새겨진 최명희 선생의 <혼불> 내용들.
박주현
또 이곳에서 가까운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 선생의 생가 주변에 지난 2006년 4월 지어진 '최명희문학관'에는 선생의 생전 활동모습과 작품 등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다양한 자료들이 보관돼 있다. '혼불 읽기', '혼불 세미나' 등의 행사도 주기적으로 열리는 곳이다.
"들판은 아득한 연두 물빛이다. 거기다 막 씻어 헹군 듯한 햇살이 여린 모의 갈피에 숨느라고 여기저기서 그 물빛이 찰랑거린다." <혼불> 1권 '사월령'에 나오는 구절을 새기며 발길을 되돌려 재촉하려니 마음을 옥죄는 구절이 담긴 안내석이 다시 눈에 가득 들어온다.
"지하의 뿌리한테는, 꽃 피고 새 운다는 지상이 오히려 흙 속일 것이요, 거기 우람하게 서 있는 나무의 무성한 가지는 거꾸로 뿌리라 여겨질 것이다. 그래서 뿌리는 어둠이 휘황하고, 햇빛은 캄캄할 것이다." -<혼불> 4권 '박모(薄暮)' 중에서
<혼불> 작가 최명희 선생은 |
1947년 전주에서 태어나 전북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전주 기전여자고등학교와 서울 보성여자고등학교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했다. 선생은 198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쓰러지는 빛>이 당선되어 등단한데 이어, 이듬해 동아일보 창간 60주년 기념 장편소설 공모전에서 <혼불>(제1부)이 당선되어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88년부터 1995년까지 월간 <신동아>에 제2∼제5부를 연재했으며, 1996년 12월 제1∼5부를 전10권으로 묶어 <혼불>을 완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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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에 난만한 꽃 피어나 독하게도 휘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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