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 동성애자를 연기하는 송창의와 이상우.
SBS
<인생은 아름다워>에는 바로 이런 클리셰가 없다. 극의 초반 병태네 가족의 갈등의 축은 결혼하지 않는 장남 태섭(송창의 분)과 어머니 민재다. 태섭은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밝힐 수 없어 매번 사귀던 여자와 헤어지고, 그를 보며 민재는 속이 탄다. 혹시 자신이 계모라서, 친아들이 아닌 의붓아들이기 때문에 신경을 덜 쓰는 게 아닌가 싶어 더 유난을 떨고 걱정한다. 하지만 태섭은 오히려 그런 민재가 부담스럽다.
나날이 이혼율이 급증하고 그에 따라 재혼가정이 늘어나면서 계모, 계부와 의붓자식 간의 소통의 문제는 작금 우리 사회의 가족이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갈등의 하나다. 김수현은 이미 전작 <엄마가 뿔났다>에서 어린 딸 가진 이혼남(류진 분)과 결혼한 장녀(신은경 분)의 이야기를 통해 그들의 갈등을 그려낸 바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말하자면 <엄마가 뿔났다>의 20년 후 이야기인 셈이다.
태섭이 동성애자라는 설정은 김수현이 가족 드라마라는 상투적이고 전형적인 울타리 안에서도 얼마든지 신선하고 새로운 갈등과 고민을 그릴 수 있다는 걸 말해주는 가장 확실한 증거다. 형식에서 다소 자유롭고 시청자 층이 어느 정도 정해진 미니시리즈도 아닌, 말 그대로 온가족이 시청하는 주말 가족 드라마에서 조연급도 아닌 주연 캐릭터가 동성애자라는 설정은 그야말로 파격이다.
영화 <왕의 남자>와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이 성공을 거두면서 미디어가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것을 다루는 방법에도 조그마한 변화가 있었다. 금기시되고 터부시되던 이전과는 달리 조금은 자유롭고 개방적이 됐다. 하지만 그 어느 가족 드라마도 현실 세계의 동성애자가 짊어지고 있는 실존적인 문제와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려는 시도를 하진 못했다.
타고나길 내성적인 것인지, 동성애자라는 것을 숨겨온 세월 탓에 내성적이 되어버린 것인지, 자기 생각을 도통 바깥으로 드러내지 않고 꽁꽁 싸매는 성격 탓에 태섭의 본심은 민재뿐만 아니라 가족 그 누구도 모른다. 심지어 친아버지마저도. 민재는 태섭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것이 서운하고, "네가 낳은 자식이 아니라서 그런다"고 하는 시어머니의 말에 상처 입는다.
결혼을 하느냐 안 하느냐로 갈등을 빚고 있는 이 모자 사이는 앞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태섭이 동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뒤 또 새로운 갈등의 국면에 접어들고 이 문제는 가족 전체의 것으로 확대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그들이 겪는 갈등은 평범하진 않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어떤 가정에선 현재진행형일 수 있는 문제다. 누구도 주목하지 않으려 했던, 조심스럽고 민감한 문제를 노련한 노작가는 어떻게 그려낼 것인가.
앞서 막장 드라마를 쓰는 작가들의 상상력 빈곤을 지적한 바 있다. 이 상상력의 빈곤은 자기복제로 이어지기 쉽다. 막장 가족 드라마의 내용이 어디서 봤던 것 같고, 왠지 눈에 익은 것은 출연 배우들이 '아무개 사단' 출신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명색이 가족 드라마를 쓴다면서 진짜 가족의 모습은 보려 하지 않는 몇몇 막장 드라마 작가들에게 김수현이 내준 숙제다. 부디 잘 보고 배우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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