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나이가 들며, 누구든 세상을 떠난다

유영미 아나운서가 쓴 노년 이야기 <두 번째 청춘>

등록 2010.03.30 15:52수정 2010.03.30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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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책 <두번째 청춘>

책 <두번째 청춘> ⓒ 시공사

"인생의 각 계절은 이렇게 모두 가치 있고 의미 있는데, 유난히 우리 사회는 젊음만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노년을 폄하하는 것 같아 늘 불만이었습니다. 젊다는 것이 무슨 권력이라도 되는지 너도 나도 젊음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 같아 안타까웠습니다."

15년간 라디오에서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을 진행해 온 유 아나운서는 책의 서문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노인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대학원에서 노인학을 전공한 그녀는 젊음만을 칭송하는 우리 사회에 노년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효를 강조하는 유교적 문화 풍토 속에 있으면서도 실제 삶에서 우리는 얼마나 노인을 생각하고 노년을 계획하며 살고 있을까? 노인을 공경한답시고 그들을 멀게만 여기다 보니 우리에게 '노년 문화'는 너무도 낯선 단어가 되었다.

피카소와 카잘스, 그리고 미켈란젤로는 80대와 90대에도 여전히 작품 활동을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 나이가 되면 '뒷방 늙은이'가 되어 퇴물 취급을 당하고 만다. 저자는 노인 스스로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길을 찾아보길 권한다. 파워 시니어가 되어 자신의 인생을 사랑하고 '여생'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 노년을 충실하게 살게 되면 삶의 기쁨도 절로 찾아온다.

저자가 제안하는 노년 우울증 극복 방법은 참 다양하다. 우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 한 번쯤 도전해 보는 것도 좋다. 커피 바리스타 자격증을 딴 할머니, 손자 돌보는 재미에 푹 빠진 할아버지도 멋지다. 돈이 좀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라면 어려운 노인을 돕기 위해 기부를 하는 것도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나이가 들수록 위축되는 마음을 회복하기 위한 황혼의 재혼이나 동거도 바람직하다. 사람이 평생 함께하던 제 짝을 잃고 홀로 지내게 되면 그 외로움의 깊이가 매우 크다고 한다. 자식들도 어르신들을 부모로만 보는 시각에서 벗어나 한 사람의 인간, 인생으로 바라보자.

저자는 '90세에도 이성을 보면 설레는 마음을 갖는 로맨스 그레이'를 외친다. 서구에서는 황혼의 결혼을 '12월의 결혼(December-marriage)'라고 부르며 축복해 주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외로움은 더 깊어지기에 남은 인생의 반려자를 다시 만나 사는 것도 행복한 일일 것이다.


"노년의 무료함은 절망이란 친구와 손잡고 온다. 노인의 70퍼센트가 앓고 있다고 하는 우울증도 역시 무료함과 무관심에서 오는 정신적인 질병이다. 자신이 무가치하게 느껴질 때, 그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을 때, 모든 기쁨이 추억 속에만 갇혀 있을 때, 노년들은 절망한다. 누군가에게 잘 보이고 싶고, 그 어떤 사람에게 특별한 존재로 인식될 때 느끼는 생동감과 활력이 얼마나 소중한가?"

저자는 노년의 생활 중에서 죽음에 대한 대비도 강조한다. 웰빙 열풍이 있지만 아름답게 죽는 것, 웰 다잉도 중요하단 얘기다. 그녀는 "인간은 누구나 품위 있게 죽을 권리가 있고 아름다운 임종 문화의 정착이 필요하다"며 "모든 병원에 임종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중환자실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 암 환자가 의식을 잃은 뒤 숨질 때까지 그 힘겹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여과 없이 지켜봐야 하는 다른 환자와 가족의 고통은 극심하다. 이럴 때 임종실이 있다면 죽음을 맞이하는 환자와 가족의 마음이 더 편안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 노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노후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고 심리적으로도 그렇다. 바쁜 직장 생활과 자녀들에게 '올인'하여 한평생을 바쁘게 살다가 갑자기 노년의 퇴직을 맞이한 어르신들은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된다. 다행히도 국민연금제도가 안정되면서 현재 40대들이 맞이하는 노년은 지금보다는 나아질 전망이다.

그런 점을 보면 노인 문제 측면에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훨씬 앞서 나가는 것 같다. 연금 제도도 그렇고 요양원 시설도 그렇다. 일본 도쿄에 있는 '고토엔'이라는 시설은 양로원과 어린이집을 합친 복지 모델이라고 한다. 이곳에는 돌을 갓 지난 유아에서 90세 노인들까지 서로 다른 세대들이 함께 모여 지내는데, 노인들은 아이들이 자라는 모습을 보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노인들과 함께 생활한 고토엔의 아이들은 노인에 대한 거부감을 갖지 않게 되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인식하게 된다. 고토엔과 꼭 같지는 않지만 우리 아이가 다니는 구립 어린이집도 노인정과 공간을 함께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오가는 길에 노인과 아이들이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는 광경은 참 정겹다. 이런 시설이 많을수록 노인 문제는 점점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이 된다.

저자는 국가적 조치와 사회 분위기, 젊은 세대들의 가치관 변화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노인 자신의 노력이 가장 절실하다고 강조한다. 가만히 앉아 자녀들이나 젊은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맞춰 나가기를 기대하지 말고 노인 스스로 행복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60세에 독립된 삶을 살 수 있으려면 우선 마음가짐과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한 가지 이상의 취미를 가져 몰입의 즐거움을 배우면 좋겠다. 취미를 가지면 자녀가 언제 오는지 살피며 심심해할 시간이 없다. 또한 좋은 친구를 가지는 것도 중요하다. (중략) 노년의 쓸쓸함에서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신뿐임을 잊지 말자."

주변에 활력 있게 생활하시는 노인을 보면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누구나 나이가 들며 누구나 세상을 떠나는 게 인생의 본모습이다. 나이 드는 것을 한탄하며 제자리에 멈추기보다 멋진 노년을 꾸리는 일. 지금 노년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준비해야 할 중요한 문제가 아닐까 싶다.

두번째 청춘 - 나이 들수록 더 행복하고 더 우아하게 사는 법

유영미 지음,
시공사, 2010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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