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출한 외국인 아내 뒤에 브로커가 있다

시골 내려 가자는 말에 가출한 아내, 통화내역 확인해봤더니...

등록 2010.03.31 16:37수정 2010.03.31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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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람이 시골에는 죽어도 가지 않겠다고 하네요. 시골로 내려가면 차라리 집을 나가겠다는데 어쩌면 좋아요?"
"갑자기 시골에는 왜 내려가시려고요? 직장은 어떻게 하고요?'
"그게, 말하자면 기가 막힙니다."


말을 하다말고 목이 막혀 말을 잇지 못하는 박씨의 눈동자는 이미 벌겋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는 다섯 달 전에 베트남 출신 여성과 결혼한 사람입니다. 결혼 이후 적지 않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알콩달콩 잘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가 털어놓는 이야기는 말 못할 어려움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음을 알게 해 주었습니다. 지난 일요일 오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어진 박씨의 이야기는 해답을 얻고자 한 것이 아니라, 어디 가서 하소연이라고 하고 싶은 심정으로, 털어놓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한국에 올 때 여섯 달치 피임약을 싸들고 왔어요. 그걸 저희 어머니께 들키고 나서부터 어머니를 많이 어려워했어요. 집사람이 매일 인터넷만 하고, 제가 일하러 나갈 때도 밥 한 번 차려준 적 없지만, 잘 살아보려고 참고 참았습니다. 다섯 달이 지나면서 그래도 이건 아니다 싶어, 시골에 내려가서 살면 한국 풍습도 알고, 부부관계도 좋아질까 싶어 십년이나 다니던 번듯한 직장도 그만뒀습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제법 규모가 큰 복지관에서 복지사로 십년이나 일한 박씨가 직장을 옮기려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그때 박씨는 자신이 복지사이면서 요리사 자격증을 갖고 있어서 직장을 옮기는 부분에 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했었습니다.

박씨는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과 같이 살면 아내가 어른들로부터 한국풍습도 배우고, 지역사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어교실도 꾸준히 다니면 한국생활에 좀 더 빨리 적응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 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소연을 했던 박씨가 오늘은 두툼하게 둘둘 말린 종이를 가지고 쉼터에 들렀습니다. 그가 가지고 온 것은 아내 명의로 된 전화 통화 내역서였습니다. 자리에 앉으며, 허탈한 듯이 내뱉는 그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가슴이 턱턱 막혀왔습니다.

"나갔어요. 짐 다 싸들고 나갔어요. 여기 전화 통화한 거 보세요. 시외 통화만 해도 하루에 몇 통환가. 그 사람이 시외에 알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브로커들 농간에 짐을 싼 것 같아요. 마음이 떠난 사람이란 걸 이제 알겠네요. 어떻게 찾아서 데리고 온다 한들 제대로 살 수 있겠어요?"


박씨가 내민 통화내역서에는 '망외통화'라고 적힌 부분에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고, 하루에도 십여 회씩 통화한 기록들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사람, 전화통화료가 한 달에 이십만 원이 넘게 나와도 외로워서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었는데, 제가 어리석었어요. 통화를 길게 한 사람이 네 사람인데, 망외통화는 두 사람 밖에 안 돼요. 이 사람들이 수상해요."
"집나간 후로 통화는 해 보셨어요?"
"아뇨, 제가 전화를 해도 말이 통하지 않고, 거짓말할 텐데, 뭐 하러 하겠어요. 경찰에게 부탁해 볼까 해요."
"경찰이 그 사람들이 브로커라는 사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을 텐데요. 그나저나 아주머니가 갈 만한 데나, 알 만한 사람들이 없나요?"
"베트남 여자하고 결혼한 사람들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봤어요. 똑같더라고요. 글쎄, 월요일에 그러더라고요. 시골에 내려간다고. 그렇게 사람을 안심시켜 놓고 어제 짐 싸고 나간 거 보세요. 브로커들이 계획적으로 코치한 거지요."

경찰의 힘을 빌려서라도 집나간 아내의 행방을 찾고자 한다는 박씨는 아내가 집을 나가기까지 브로커의 개입이 있었다고 확신하며 그들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었습니다. 집을 나간 박씨의 아내 H는 매주 일요일 한국어교실에 참여하며, 주위에서 참 성실하다는 평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리고 박씨 역시 경우가 바르고, 아내를 끔찍이 아낀다는 것을 누가 봐도 알 수 있을 만치, 아내에게 다정다감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H가 가출하기 전까지 다른 가정들처럼 두 사람 사이에 갈등이 크게 노출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시골로 내려가는 문제 때문에 가출했다는 사실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박씨에 의하면, 시골 내려가는 문제 때문에 아내가 스트레스가 많은 것 같아서, 마음을 정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까지 했다고 했었답니다. 그러던 H가 쪽지 한 장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간 것입니다.

얼마 되지 않는 수입에 고향을 떠나 직장 생활하던 박씨는 결혼이 늦어지자, 외국 여성과의 결혼을 차선으로 선택하였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그 선택에 대해 후회를 하면서도 아내가 돌아오기를 기대하고 있는 모순된 현실을 보며, 달리 위로할 방법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박씨의 아내는 집으로 돌아올까요? 돌아온다면 그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국적이 다른 박씨와 H가 겪고 있는 문제와 같은 일들이 다반사가 돼 버린 현실은 지켜보는 이마저 가슴을 조이고, 답답하게 만듭니다.
#결혼이주여성 #베트남 #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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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과 편견 없는 세상,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가 가능한 세상, 함께 더불어 잘 사는 세상을 꿈꿉니다. (사) '모두를 위한 이주인권문화센터'(부설 용인이주노동자쉼터) 이사장, 이주인권 저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서 『내 생애 단 한 번,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좋다』, 공저 『다르지만 평등한 이주민 인권 길라잡이, 다문화인권교육 기본교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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