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2010.04.02 10:41수정 2010.04.02 11:47
올해가 벌써 5월항쟁 30주년이다. 80년에 고등학생이었던 필자가 이제 나이 50을 바라보는 중년이 되었지만 오월은 변한 게 없다. 5월의 살육을 지휘했던 대통령은 여전히 같은 땅에 살고 있고, 5월의 진상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안타까운 점은 이렇듯 5월은 변한 게 없는데 우리의 뇌리에선 5월이 잊혀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신명의 마당극 <언젠가 봄날에...>는 이렇듯 잊혀지고 있는 5월을 재생해 보였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겠다.
작품은 지난 3월 26일(금)~27일(토) 이틀 간 광주 5·18기념문화관 대동홀에서 올려졌다. 5월 영령들이 탈을 쓰고 등장하여 국밥과 막걸리를 나누어 먹었던 '해방광주'를 신명나게 재현하면서 마당극은 시작되었다. 신명 특유의 흥겨운 타악과 군무가 어우러지면서 관객의 어깨춤을 이끌었다. 특히 인물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탈과 안무가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했다.
이렇듯 작품의 인물들은 시종일관 관객의 웃음보를 터트렸지만 사실 이들은 모두 80년 5월에 죽어 암매장된 귀신들이다. 군인들이 죽인 후에 암매장한 탓에 실종자로 처리된 오월 영령들인 것이다. 이들은 모두가 억울한 생각을 하며 이승을 떠도는 처지이지만, 우리 가면극의 말뚝이가 그렇듯이 체념보다는 웃음으로 당차게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MB정권의 4대강 건설을 조롱하거나 풍자하는 춤을 추며 관객을 선동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만행진압군이 소녀를 폭행하고 있는 장면 놀이패 신명
▲ 만행 진압군이 소녀를 폭행하고 있는 장면
ⓒ 놀이패 신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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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에 실종된 아들을 잊지못해 날마다 도청을 찾는 무당 박조금과 귀신들을 저승으로 데려가려고 애쓰는 저승사자가 작품에 활력을 불어 넣는다. 특히 박조금 역을 맡은 지정남은 오랫동안 방송에서 익힌 전라도 사투리를 감칠맛나게 구사하여 공연장을 웃음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신명'의 많은 배우들이 20여 년을 함께해 온 찰떡 호흡으로 관객에게 감동을 주었고, 여기에 지정남의 애드리브를 곁들인 연기가 조미료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저승사자가 쫓는 세 귀신은 제비족과 시민군, 여고생인데 각각 안타까운 사연 때문에 저승에 가지 않으려고 저승사자를 피하고 있다. 시민군이었던 청년은 군인들이 도청을 진압하기 직전에 도망쳤다는 죄책감 때문에 저승길을 피하고, 여고생은 자신의 가족을 만날 때까지 저승길을 못 간다고 우긴다.
이 두 귀신에 비해 저승길에 우호적인 제비족은 두 사람을 설득해 저승사자를 만나도록 주선한다. 저승사자는 두 귀신을 저승으로 데려갈 의도로 가족을 만나게 해 주고, 원(怨)을 푼 영령들이 저승길을 준비하면서 막이 내린다.
해마다 5월이면 빛고을 광주에선 5월극이 무대에 오르지만 30년을 기념해서인지 이번 신명의 공연은 감회가 남달랐다. 무엇보다 암매장된 영령들을 관객과 조우시켜 여운을 남긴 점이 좋았다. 다만, 영령들이 가족을 만난 후에 저승길을 가는 결말은 조급해보여 아쉬웠다. 조금 더 긴 호흡으로 영령과 가족의 상처를 어루만져주고 저승길을 가게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80년 5월 시위 상황과 현재 노동자들의 시위 상황을 율동과 몸짓으로 재현해보였는데 작품과의 유기성이 떨어져 아쉬웠다. 마당극이 주로 에피소드식 구성을 취하므로 서구 연극과 비교했을 때 장면 간 유기성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더라도 군더더기로 보이면 곤란하다. 그런 장면이 작품에 아쉬움을 남기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앞으로 공연을 계속하면서 보완하리라 기대한다. 오늘도 5월이 가고 있다.
2010.04.02 10:41 | ⓒ 2010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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